광기와 우연의 역사
스테판 츠바이크
역사를 선으로 본다면 선의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점이 있다. 이 점을 하나의 위대한 사건이라 부른다. 물론 위대한 사건들이 있지만 늘 위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론 광기에 차거나 우연이 빚어낸 일들도 많다. 그렇게 역사는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인류를 이끌어 간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그러한 점들을 서술한다.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을 보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재구성하고 그 사건에 담긴 인간 군상들의 심리를 생동감 있게 드러낸다. 역사의 한 장면에 함께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탁월한 묘사다.
그가 제시하는 역사의 점들은 치밀한 계획이나 준비에 의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우연적인 사건, 실수, 잊혀진 사람의 작은 시도를 통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동로마 제국의 최후”는 서양 전체가 간과 하고 있던 순간에 산을 타고 넘어온 술탄 마호메트 2세의 배들로 인해, 그리고 밤낮 없는 수성의 치열함 속에 잠시 방치된 하나의 작은 문을 통해 이뤄지고 만다. “워털루의 세계 시간”은 나폴레옹 군의 무난한 부관이었던 그뤼시의 한 박자 늦은 판단으로 인해 프랑스 군에게 패배를 안기게 된다.
츠바이크는 이런 식으로 역사의 한 점, 그리고 그 점 중에서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주 중대한 흔적에 집중한다.
그 중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한 순간을 그린 장면은 신적 광기(혹은 임재)가 어떻게 예술적인 흐름으로 세상에 나타났는지를 그려낸다. 이 장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메시아”를 몰라도 그 곡을 찾게 만든다. 그 장면들을 소개한다.
1737년 헨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목숨은 건졌지만 오른쪽 신체가 마비된다. 작가는 이것을 헨델의 육체적 죽음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 마비를 고치려 온천으로 간다. 당시에는 온천의 치유적 힘을 꾀나 신봉했던 것 같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헨델이 육체적으로는 죽어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살아 있었음을 묘사한다.
“땅 밑에 있는 신비스러운 온천수에 힘이 살아 있듯이, 이 단단하게 마비된 살껍질 아래에도 이해할 수 없는 힘이 살아 있었다. 바로 헨델의 의지력이다. 의지력만큼은 파괴적인 발작에도 손상을 입지 않았다. 그러한 원천적인 힘은 죽어야 할 육체 속에 들어 있는 불멸의 힘이 완전히 몰락하도록 버려두지 않았다”
이 의지력의 힘으로 헨델은 정상적인 몸을 되찾는다. 그러나 이후 그가 내놓는 작품, <사울>, <이집트의 이스라엘> 등이 실패한다. 극장이 텅텅비고 헨델은 빚더미에 앉게 된다. 이 과정에서 헨델은 좌절하게 된다. 작가는 이를 헨델이 정신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그린다. 육체적 죽음과 정신적 죽음을 경험한 헨델, 그 바닥에서 위대한 작품을 열어제낀 것이다. 그것은 은총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1741년 8월 21일 그는 여전히 지친 몸과 혼을 이끌고 돌아다니다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그냥 다 버리고 잠이나 자고 싶었지만, 산책 중에 생각난 악상이 있어서 책상에 앉았다. 그는 생각난 악상이 달아나지 않도록 자기 전에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편지를 발견한다. 그 편지는 제닌스(사울과 이집트의 이스라엘을 쓴 작사가)가 보낸 편지였다. “새로운 시를 보내니 위대한 음악의 정령께서 자신의 보잘것없는 글을 불쌍히 여겨 음악의 날개에 태워서 불멸의 에테르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편지를 읽은 헨델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자신에게 음악의 정령이라니.. 치욕적이었다. 분노에 차서 편지를 구겨서 내동댕이 치고 발로 밟았다.
침대에 누웠는데, 이상하게 편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호기심에 대항할 수 없어서 편지를 주워 읽었다.
“첫 마디에 벌써 소스라칠 듯 놀랐다. ‘Comfort ye'하고 텍스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위안받으라‘- 이말은 마법과도 같았다. 그것은 신이 주는 대답이었다. ‘Comfort ye' - 이것은 어떤 울림을 가진 말이던가. 창작하는, 아니 창조하는 이 한 마디는 겁 많은 영혼을 내면으로부터 얼마나 뒤흔들어 놓았던가. 읽고 느끼기 무섭게 헨델은 그것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 한 장 한 장 넘기는 사이 손이 떨려왔다. 그렇다, 그는 부름받고 있었다. 이리 오라! 한 마디 한 마디가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되어 그의 내면으로 파고 들었다. ‘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Thus saith the Lord)'. - 이것은 자기에게 주는 말이 아니더가.
‘그분이 너를 정화하시리(And he shall purify) - 그렇다, 바로 그런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 아직도 어둠이 세상을 뒤덮고 있으니’... ‘경이롭고 전능한 신이시여’...‘주께 영광을 돌리세’...‘기뻐하라’.. ‘진정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
제닌스의 시는 구구절절이 헨델의 가슴을 쳤고 음악의 언어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헨델은 감격에 찼다.
“숨이 멎는 듯했다. 여기 우연한 존재인 인간의 입술을 통해 진리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주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셨다. 말씀은 위로부터 그에게로 온 것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 그렇다 이 지상의 모든 음성을 이 구절 안에 합치자. 밝은 음과 어두운 음, 남자의 지속적인 음성과 여자의 유연한 음성, 그 모든 음성들을 가득 채워서 상승시키고 변화시키자. 그것들을 율동적인 코러스 안에서 죄기도 하고 풀기도 하자. 음으로 만들어진 야곱의 사다리처럼 목소리들이 올라가고 내려가게 하자. 바이올린의 달콤한 현으로 약하게 했다가는 팡파르가 터져 나오면서 울려 퍼지게 하자. 천둥 같은 오르간 소리 속에 울려 나오게 하자.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 이 말씀, 감사의 말씀으로부터 환희를 만들어 내자. 이 지상을 울리고 천지의 창조주께로 올라가도록!”
헨델은 3주 동안 자리에 앉아서 곡을 쓴다. 멈출 수가 없었다. 정확히 9월14일 곡은 완성됐다. 사람들은 마침대 이 곡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초연이 이뤄진 더블린, 헨델 앞에 몇몇의 사람이 찾아 왔다. 그들은 자선 단체로 공연 수익금 일부를 후원받기 위해 헨델을 찾은 것이다. 헨델은 그들에게 말한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어떤 돈도 나는 받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돈을 받지 않겠어요. 나는 다른 분께 빚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수익금은 언제나 환자와 죄수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나 자신이 환자였는데 이제 건강해졌습니다. 나는 죄수였으나 이 음악이 나를 해방시켰습니다.”
헨델의 “메시야”가 초연되자 사람들을 폭발적인 반응으로 화답한다. 그러나 그 열광은 경건에 가까웠다.
“‘할렐루야’하는 음이 우렁차게 울리자마자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그 힘에 휩쓸려 도저히 땅에 붙어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신께 1인치라도 더 가까이 가서 자신들의 경외심을 바치기 위해 그 곳을 나섰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글은 사건으로의 몰입을 경험하게 해준다. 이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마치 내가 그 장소에 있었던 것처럼 역사의 흐름이 꺾이는 순간 을 목도 하게 한다. 혹자는 그 순간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에 동감하는 자에겐 운명의 시간이 된다. 그 운명의 시간을 비춰준 작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