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 쉽게 분노하거나 노여움에 상하는 사람들, 쉽게 포기하거나 지쳐버리는 사람들, 쉽게 절망하고 슬픔에 빠져버리는 사람들.

마음을 닫아 버린채 안으로 안으로만 침잠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굳이 사람들이라 하지 않아도 내 안에서 이미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편이다.

마음이라는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언제나 그런 상심들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 되고야 만다.

많은 책을 읽지 못했지만 늘 책을 읽을 때 만큼은 상심들로 부터 벗어나 있을 수 있어서 많은 위로가 된 적이 많다.

 

내게 책읽기란 무료함을 달래주는 놀이 친구요, 그저 지리멸렬한 생이 잠시나마 상상의 날개를 달아 완벽해지는 순간들이었다.

또한 알지못한 나라의 알지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을때면 언제 가볼 수 있으리라 확신도 없는 나라들을 떠올리며 여행하는 꿈을 꾸기도 했고 사회비판이 강한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그의 어조에 동화되어 신랄한 비판을 하고 어느새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나를 보기도 했었다지.

사랑하는 연인들의 극적이지만 완벽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들과 세상이 끝이 난다면 이런 모습일꺼라는 괴로운 생각마저 드는 절망적이고도 심란한 이야기들 그런 책읽기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알게되고 깨닫고 달라졌는지 알 수는 없지만 책읽기는 얼마되지 않는 유일한 지적 과시이기도 했고 상상의 장이기도 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끔은 나를 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사회성의 소통창구 역할도 해주었다.

 언젠가는 책읽기를 즐기는 친구가 권해주는 외국 작가의 책을 한보따리 받으면서 넓지 못한 내 책읽기의 폭을 한탄하면서, 그런 한탄을 부끄러워하며 감추면서 친구의 책 선택을 조소하기도 했으니, 과연 궁벽하고 편협하기 짝이 없는 나의 책읽기는 한걸음 더 나가지 못하고 언제나 초라한 살림에 초라하니 무너져가는 초가의 모습이었다.

늘 목말라 있던 책읽기였으나 위로는 받을지언정 정작에 그를 통해 변화되거나 나은 모습으로 좋아지는 경우를 본 적이 없으니 정말 나의 책읽기는 쓸데없는 시간 때우기 였을까.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살인자의 건강법. 아멜리에 노통브)

사실 살인자의 건강법을 읽으면서 가장 뜨끔한 순간이었고 찔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알지못했던 공범들을 찾아낸 것 같은 안도감 마저들었었다. 늘 책읽기를 즐긴다는 허영심 가득한 말을 내뱉으면서도 속으로는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혹시나 이 사람들이 내가 책을 읽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어쩌지 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퍽이나 많이 들기도 하였더랬다.

누군가 내게 꼭 맞는 책을 권해주고 내 상황에 꼭 들어맞는 책, 내 무식에 일침을 가하며 나를 똑똑하게(?) 만들어줄 책을 권해준다면 나는 그저 읽고 느끼고 생각하면 되는 편한 책읽기는 어떨까.

 내가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한 것이라 믿는 지라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내게로 온 책에 나는 무수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완벽하게.

마녀는 으레 그러하리라 하는 좋은 책이나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책뿐만 아니라 다양하고도 폭 넓은 독서의 처방을 내리는데 사람이 늘 좋은 생각 같은 좋은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만 보면서 살 수 없듯이 마녀의 독서처방은 역시나 독하다.

 어쩌면 나를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마녀의 독서처방은 생경한 무수히 많은 책들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녀의 의도를 짐작할만한 강한 마녀의 어조에서도 아마도 마녀의 처방을 따라 하지 않을 수는 없을 듯 하다.

 

빗자루 타는 마녀가 아닌 책 읽는 마녀의 처방을 부지런히 따라가도 가랑이가 찢어질지도 몰라.서둘러, 어서.

 

 

군더더기 없이, 기껏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더하거나 모자람이 없는 그대로가 최고의 표현이자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소현. 하고자하는 말이 하고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마는 김인숙의 소현은 그가 죽어 남긴 이름 소현으로 그 모든 말들을 대신하고 있는 듯 하다.

미디어나 문화계에서도 어김없이 언제나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흘러넘친다. 시각이 다른 책들과 방송들 그리고 드라마들.

역사적 해석이 한결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가려서 듣고 가려서 알지 않으면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이 현 시점에서의 역사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개인과 개인들이 살아 낸 지난 이야기들이 모여 역사가 되듯이 많은 개인들의 이야기들 가운데 그저 비운의 세자라고 하기에는 애통함이 더 부피가 느껴지는 소현세자의 이야기.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아들이자 왕이 적장에게 무릎을 꿇은 삼전도에서의 굴욕과 함께 청나라의 볼모 생활을 8년이나 했고 볼모에서 풀려나 귀국 후 두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는  소현세자.

또한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소현세자의 아들이었던 세손과 빈궁마저 죽음과 유배등을 면치 못했다는 기록을 볼 때 소현세자의 죽음에 관한 의문이 커질 수 밖에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인조 역시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이기에 늘 왕위에 대한 불안감이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한 집안에 구대가 정승을 하는 것보다, 아들이 왕을 하는 것보다 내 스스로가 왕인 것이 더 좋다는 말을 들어본 것도 같은데 어쩌면 인조 당시의 능멸의 역사와 소현세자의 삶은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되기도 한다.

 

김인숙 작가의 이야기로 만나는 소현의 이야기는 더 없이 춥고 서글펐다.

작가의 문체가 그러했고 소현의 모습이 그러했다. 그래서 문장을 읽어내는 내내 마음이 시리기만 했더랬다.

당연한 일인양 소현을 읽으며 김훈의 남한산성이 떠오르는 건 무슨 연유일까. 언땅 얼음을 밟고 선듯한 문체가 그러해서 일까 울음을 삼키던 소현을 만나던 이야기라 그러한 걸까.

김인숙 작가의 소현인지 김훈의 소현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말과 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기만 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눈이 다르고 시각이 다르건만, 둘 다 소설일 뿐이라 새기며 읽건만 묘하게도 물 흐르듯이 연결되는 듯한 이야기들이 얼마나 마음을 아리게 만드는지.

 

청으로 부터 갇힌 자 되고 자신의 나라 조선으로 부터도 갇힌 자 된 그저 암흑과 깊은 고독이었을 소현세자의 이야기와 홍타이지의 죽음으로 왕위를 둘러싼 청나라 왕족들의 숨막히는 이야기가 서사적으로 어울리는 중에 조선으로 부터 미천한 신분의 조선인이었다가 말 하는 재주로 역관이된, 그러나 여전히 미천하기만 한 만상, 조선 종실의 딸로 적국에서 그나라의 여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흔과 그녀의 종 막금의 이야기가 더해져 참담함은 읽을 수록에 배가 되고 만다.

이들이 치욕의 삶을 버텨내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정복한 자와 정복당한 자. 그럼에도 정복당하지 않았다 믿고 싶은 자들의 삶의 이야기인가.

 

말이란 것이 글로 쓰여진 말이란 것이 이토록이나 힘겹게 읽히며 마음을 할퀴는 가.

왕이 되지 못한 채, 적국의 땅에서 보고 깨달은 것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죽은 비운의 소현세자의 처한 현실과 참담한 그의 내면이 눈앞에 촤르륵 펼쳐지고는 잿더미 위에 맨발로 선 듯 그 속에서 참담함이 전해져 오는듯 했다.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되었다면, 인조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면, 광해군이 반정으로 폐주가 되지 않았다면, 선조가 광해가 아닌 임해군을 세자로 삼았다면 소현의 역사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인가.

만약이라는 가정이 무의미 하다는 것은 비단 이 역사에서 뿐만은 아니겠지만 만약에 만약에 하는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것은 역사로만 존재하는 역사의 삶이어서 그런것일까.

 

"울거라. 네 몸에 울음이 가득할 것이다"

그랬다. 소현을 읽으며 소현을 마주하며 내내 울음이 가득할 뿐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