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라느니 하는
소리는 당치 않다. - 최인훈
"광장에 이르기까지 누구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가당치 않은' 것처럼, 특정한 어느 한 비평 방법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가당치 않다. 어떤 길을 밟아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가 '문제될' 것이 없듯이, 어떤 비평 방법을 사용하여 이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였는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광장에 이르는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사랑하였느냐에 달려 있듯이, 비평가가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읽었느냐에 달려 있기 따름이다.
이 책의 몇몇 군데에서는 조금 무리가 따르는 해석도 없지 않을 줄로 안다. 특정한 비평 방법을 적용하려는 나머지 억지로 끼워 맞추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 있을 터이다. …
다만 이 책이 문학 연구 방법론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광장』을 좀더 잘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길잡이 노릇을 할 수만 있다면 저자로서는 그보다 더 바랄 일이 없을 것이다." (김욱동,『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문학과지성사,1996), 12쪽)
심리학 전문 교재와 다양한 단행본을 내는 학지사에서 나온『카우치에 누운 시인들의 삶과 노래』는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정신치료와 정신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이병욱 교수의 신간이다. 전작『프로이트와 함께하는 세계문학일주』를 읽어본 적이 있는데 이번 책도 비슷한 컨셉이다.
저자는 이전 작품들로『마음의 상처, 영화로 힐링하기』, 『정신분석을 통해 본 욕망과 환상의 세계』, 『정신분석으로 본 한국인과 한국문화』등 정신분석을 통해 작가에 대해 살펴보고 작품을 감상하는 책들을 냈는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이 인간의 무의식 발견 등 큰 성과를 이루었지만 후에 따른 여러 비평과 재발견 새로운 이론들의 등장으로 이전과는 위상이 많이 달라졌음에도 영화, 문학 작품을 다룰때 꾸준히 등장하기에 이번 책도 일반독자들에게 흥미를 줄 듯 하다.
이번 책은 세계의 다양한 시인을 다루고 있다. 소설보다는 시가 더 어렵게 느껴지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쉽게 다가가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도 저자가 언급했듯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가장 날카롭고 예리했던 예술가는 시인들"이라는 생각은 막연히 가지고 있었고, 어떻게 그런 표현들이 나올 수 있는지 항상 궁금했다.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시인 자신도 잘 모를 것이다. 다만 뭔가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떠오르는 시상과 감흥을 글로 옮길 것이라는 추측을 한번 해 볼 뿐이다. 정신분석은 그런 시인의 심리적 배경에 관심을 기울인다."
저자는 "역사적으로나 통계적으로 보더라도 정신적으로 고통 받은 예술가들 중 절대다수는 시인들이었다.(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라며 미국의 문예비평가 수전 손택은 모든 해석은 작품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동반한 중립적이고도 적절한 해석이야말로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시인을 이해하여야 그가 낳은 시를 이해할 수 있고, 특히 모든 문학 장르 중에서도 가장 압축적이고 상징적 작업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시 분야이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
"신경증은 예술을 만들고, 예술은 신경증을 낫게 한다." -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루아(Andre Maurois)
제목에 나온 '카우치'는 일반설명으로는 소파와 침대의 중간기능을 하는 의자라고 나오는데, 정신분석에서의 핵심 치료방법 가운데 하나인 자유연상(free association)에서 환자가 카우치에 누워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그 어떤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할 때 활용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책에서 시인들의 삶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주로 출생신분에 따른 탄압, 성장시기의 불안, 아버지에 대한 증오, 모성애에 대한 갈증, 가족들의 죽음, 자책감, 죄의식, 일탈적인 삶의 행각, 정신적 불안적, 배신감, 자존심의 상처, 종교적 방황, 정신적 방황, 애정편력, 사회와의 갈등 등인데 그러고보면 평범한 삶이 아닌 힘든 삶을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가 문학비평가가 아니어서 내용들이 전문적인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들고, 문학을 보는 많은 이론 중 심리주의비평, 정신분석비평 분야를 통해 저자의 생각을 이야기 하기때문에 그런지, 관심이 있어 찾아본 저자의 다른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중에서 '다소 피상적이다.', '논리의 추론에 약간의 억지가 보인다,'를 이 책에서도 또한 생각해볼 수 있었지만 따로 찾아보기 쉽지 않은 다양한 작가들의 생애를 알 수 있고, 내면세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셰익스피어, 워즈워드, 바이런, 괴테, 푸시킨, 헤세, 단테, 보들레르, 에드거 앨런 포, 이백과 두보, 김삿갓, 김소월, 이상 등 유명한 작가들부터 크리스티나 로세티, D.H. 로렌스, 고트프리트 벤, 브로드스키, 구르몽, 아폴리네르, 엠마 라자러스, 미야자와 겐지 등 개인적으로 생소한 작가들의 삶과 고통, 슬픔, 아픔들과 거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혼이 담긴 시들이 실려 있다.
또한 거세공포, 구원환상, 나르시시즘, 대치, 반동형성, 분리불안, 애정결핍,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등 정신분석 이론과 용어들이 그들의 삶과 행동, 작품과 연관되어 독자들에게 어렵지 않게 다루어지고 있다.
작가들이 언급했거나 기존에 알려진 작가나 작품 설명에 더해 저자의 분석에서 나온 생각들도 담겨 있다.
"그(푸시킨)는 오히려 자신의 흑인 혈통을 부정하기 위해 백인 미녀를 배우자로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뿌리 깊은 열등감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기 쉽다. 그것은 마치 셰익스피어의 극에 나오는 흑인 오셀로가 아름다운 백인 미녀 데스데모나를 아내로 선택한 동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푸시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라고 노래했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지은 시의 교훈을 따르지 못한 셈이었다."(110쪽)
"다른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정상적인 띄어쓰기를 과감히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중략) 왜 이상은 굳이 그런 기이한 시도로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어야만 했던 것일까. (중략)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상은 그런 시도를 통해 자신의 근원적인 불안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그건은 분리와 헤어짐을 상징하는 모든 현상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띄어쓰기에 대한 거부의 몸짓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활자는 서로 떨어지지 말고 서로 붙어 있어야 했다. 어머니로부터,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일찍 떨어져 살아야 했던 이상 자신의 근원적인 불안을 드러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323~324쪽)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가장 날카롭고 예리했기에, 시대적 아품과 슬픔을 공유하고자 몸부리쳤던 시인들의 마음에 공감을 느꼈던" 저자가 시인들의 정신세계를 정신분석적 안목에서 살펴본 이 책은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그렇지 못한 독자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킬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작품보다는 시인들의 생애를 매우 인상적으로 접할 수 있었다.
[학지사 서평도서]
☆
"우리 시대의 한 사람이 저 자신의 야만성을 다 끄집어내어 우리가 눈감은 채 떠받들고 있는 이 삶의 밑바닥을 휘저어 고발하려 하는데, 그 처절한 분투를 모른체하며 최소한의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범죄행위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황현산,『밤이 선생이다』「김기덕 감독의 한」,90쪽)
☆☆ 연관 영화
<토탈 이클립스>(1995)
동성애적 사랑으로 화제가 된 프랑스 시인 랭보와 베를렌에 대한 영화.
<일 포스티노>(1994)
칠레의 민중 시인이며 사회주의 정치가로 191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파블로 네루다(1904~1973). 이탈리아의 살리나 섬에 은신 중이었던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청년 사이에 시로 맺어진 우정을 그린 영화.
<실비아>(2003)
충격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국의 여류 시인 실비아 플라스(1932~1963)를 다룬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