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무지근하게 아려오는 단편 ‘금취학령’

깡추위로 바깥출입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신년벽두부터 새로 나온 소설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묵직한 단편을 만났다. 유경숙 소설집 『청어남자』에 들어있는 「금취학령(禁醉鶴翎)」이란 제목의 단편소설이다. ‘연평도 사건’으로 연말 시국이 불안했던 터라 이 작품이 전해오는 무게가 만만찮았다.

이 책의 평설을 쓴 정현기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를 휩쓸고 지나간 공산주의 이름을 빌린 악령! 이 믿음 틀 이름으로 지상에서 벌였던 모든 악행은 그냥 더러운 악행이었을 뿐이다. …… 이 믿음 틀이 미워하였던 또하나의 믿음 틀인 기독교 또한 광기에 빠지면 삶을 녹이는 곰팡이 실처럼 번져간다. 황석영이 2000년대에 「손님」에서 그려보였던 그런 두 광기 이야기는 유경숙의 소설에 오면, 그 휘날리던 날뜀의 남은 그림자가 내려 깔린 채 차분하게 그려지고 있다. 1970년대 작가들의 거센 숨결과 퍽 다른 이야기 방식이다.”

그랬다, 이 작가는 분명 다른 방식으로 숨결을 누그러뜨려 얘기를 전달했다. 6. 25의 그 핏물어린 동족상잔의 상처가 이런 식으로도 아물려가는 구나, 생각하니 화염에 휩싸였던 연평도 보도 사진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이 소설 줄거리를 대충 꿰자면, 빨치산 장교출신이었던 한 포로병이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두메산골 성당으로 찾아든다. 자기가 불을 질렀던 역사 깊은 성당. 그는 그곳의 종지기가 되어 침묵으로 일관하며 늙은 프랑스 신부님(엥베르)을 보필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뜻밖에 소창에 둘둘 말린 핏덩이 하나를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 들게 된다. 두 남자는 이 어린 생명을 정성껏 키워내 신부로 만든다. 양아들의 출생 비밀을 꼭꼭 숨긴 채 종지기였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다. 아들 신부가 전방에서 군종신부로 근무할 때. 이 책에 실린 단편 들은 쉽게 읽어 낼 수가 없다. 가슴이 먹먹해서….

오랜만에 가슴이 무지근하게 아려오는 단편을 읽고 정초부터 생각이 깊어졌다, 남북문제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