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표지만 봤을 때는 요리책인 줄 알았다.
하긴 몇가지 요리 레시피도 나와있고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평범한 요리책은 결코 아니다.
책 날개에 적혀있는
"도쿄에서 만난 우아하게 나이 드는 7인의 소박한 주방 풍경"이라는 설명처럼
이 책은 수필가, 식당 주인, 요리 연구가, 스타일리스트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부엌을 들여다보고
인생2막을 살고있는 그들이
현재 어떤 식사를 하면서 살고있는지에 대해 인터뷰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직업적으로 혹은 일상의 한 부분으로
평생동안 요리를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노년에는 어떤 식품들을, 어떤 방법으로 조리해서 먹을까?
처음에는 그런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었다.
스타일리스트, 요리연구가 등 요리와 연관된 직업을 가진 이들이 특히 내 관심을 끌었는데
화려한 이력과는 달리
의외로 그들이 들려준 식생활 혹은 식습관 이야기는
매우 소박하고 실용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모든 진리는 단순한 것처럼
뭔가 특별한 음식을 해먹을 것 같았던 그들의 식생활은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제철 재료로 만드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특별한 레시피 없이 자유롭게 '이름없는 요리'를 만든다든지
요리할 시간이 없을 때를 대비해 밑재료를 미리 준비해둔다든지
아침밥은 이렇게 저녁밥은 저렇게 하는 식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융통성있게 먹을 것을 결정한다든지 하는 것들처럼 말이다.
세부적으로보면 제각각 조금씩 다른 식생활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원칙은 바로,
일정한 틀에 얽매이는 정해진 레시피나 규칙이 아니라
융통성과 자유로움에 대한 강조였다.
그런 그들의 원칙은 궁극적으로는 노년에 가져야할 삶에 대한 태도나 가치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식습관이나 식생활에 대한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이 책에 나오는 한 요리 연구가의 신념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녀는 먹는 행위가 사회 운동으로 이어진다는 가치관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식재료를 선택하는 일은 아주 작은 행동이지만,
사회에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흔히 사회 운동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들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책에 인용된 "우리에게는 하루 3번 사회를 바꿀 기회가 있다'는 말처럼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주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돌아보게 했다.
이 책이 단순히 노년기의 식생활이나 요리에 관한 책으로만 규정될 수 없는 이유 또한
이처럼 부엌을 통해 들여다보는 바람직한 노년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하기때문이다.
이 밖에도 이책에는
인생2막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한 기본적인 실천에 대한 내용도 있는데
그건 바로 마지막에 특별부록으로 수록되어있는
"영양사가 말하는 60세부터 필요한 요리 10계명"이다.
1. 국 하나, 반찬 3개를 기본으로(여러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2. 식단은 채소부터 정하기(냉동하기 쉬운 고기나 생선보다 신선도가 중요한 채소부터 사용하기)
3. 진짜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소금간이 아니라 맛과 향(요리의 간이 진해지는 것은 금물)
4. 요리는 기운찬 아침 시간에
5. 간단한 손질은 미리미리(다음 요리가 쉬워지도록 밑손질은 자르거나 삶기만)
6. 통조림은 비상 식품이 아니라 일상 재료
7.요리는 다름 아닌 나를 위한 것(언제까지나 즐겁게 부엌에 설 수 있도록)
8. 간단한 육수는 늘 부엌에
9. 단백질은 적극적으로(60대는 채소보다 고기나 생선 섭취량에 주의해야 한다)
10. 반찬은 적당히 변형하여(가정식에 가까운 맛을 내려면 간을 연하게 한다)
우리 사회 역시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건강한 노년을 위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요즈음,
이 책은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식습관에 관한 조언은 물론
건강한 노년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샘터,
이름없는요리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