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일본 소설의 붐을 일으키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한밤중에 행진>을 읽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전작인 <인 더 풀>과 <공중 그네>가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에 별로 주목하는 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게 된 작품은 완전히 다르다 느낄 정도로 좋았다. 비슷한 내용이 이어지는 단편 형식의 작품보다 하나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장편에서 느껴지는 오쿠다 히데오의 글재주는 훨씬 빛난다.

  ‘공중 그네’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들은 특유의 해학성이 전면에 나타나면서 잘 읽히는 ‘쉬운’ 책이었다. 쉬우면서도 그 안에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웃고 끝나는 허무함이 아니라고 생각한 독자들에게 어필하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무언가는 사회 풍자를 비롯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일부분을 자연스럽게 들춰 보이기 때문에 분명 의미를 갖는다. 그런 그의 작품이 대중성 측면에서 뛰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맘에 들지 않았다. 다른 방식으로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풀어낼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반복해서 독특한 캐릭터와 상황을 만들어내며 재미를 추구하는 점 등이 억지스럽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책을 또 읽게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그렇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그를 폄하하진 않았다. 다만 그가 고집한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을 뿐.

  결국은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예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은 무척 좋았다. 전작을 통해 다져진 그의 이미지 덕분에 더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독립적인 작품으로 평가해도 분명 괜찮은 책이다. 앞서 말한 작가에 대한 아쉬운 부분들이 거의 사라지거나 장점으로 바뀌어서 나타났다고 느껴졌다.

  감상 후에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장편이면서 아기자기한 부분이 많고, 짜임새가 있는 점들이 이사카 코타로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읽으면서 빠져드는 흡입력과 마지막 부분의 긴박감은 이 책만의 특징이자 대단한 부분이었다. 쉽게 읽혀서 이야기 자체가 쉬워 보일 수 있는 그의 문체를 장점화 시켰다는 생각이 들었고, 긴 호흡의 이야기도 충분히 잘 다뤄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오쿠다 히데오가 주목했던 인간의 내면에 대한 탐구, 즉 캐릭터적인 부분을 다루는 방식이 무척 맘에 들었다. 전체 이야기를 3개의 파트로 나누어 각기 다른 주인공의 입장에서 그려내는데, 단순히 그 인물들을 세밀하게 표현한 것에 그치지 않고 각기 개성에 맞게 이야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한 점은 작가가 바라보는 캐릭터의 모습이었다. 이야기나 캐릭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아가며 작가 스스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한 점이 보였고 그것은 적절했다. 그 균형감이 이 책의 안정감을 만들어냈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캐릭터가 더욱 부각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작가 특유의 해학성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애써 참아왔다는 듯 가끔씩 튀어나오는 웃지 못 할 상황을 해석하는 부분이나 독특한 캐릭터를 통해 만들어내는 상황들은 유난히 빛을 발한다. 특히 마지막에 가서 후루야와 중국인 2인조를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장면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그들의 캐릭터를 유지하는 것에 신경 쓰는 부분도 인상적이었고. 독특한 캐릭터에 대한 집착도 미타 조지를 통해 나타났는데, 적당한 수준이어서 튀지 않고 이야기 진행에 녹아들었다. 오히려 그의 독특함을 이 책의 대표적인 분위기로 만들어내면서 그가 적은 편지로 이 책의 엔딩을 대신하는 부분을 통해 작가의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작가는 점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잘 이용해 전달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같았다.

  사실 이 작품이 언제 나왔고 어떤 의미로 평가받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인 의미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인식됐음은 분명하다. 이제야 오쿠다 히데오, 그만이 펼칠 수 있는 이야기를 선보이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장점으로 무장하고 있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방법마저 알게 된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짜임새를 갖춘 재미있는 책, <한밤중에 행진>이다.

 

★★★★

 작가 매튜 펄의 전작인 <단테 클럽>의 호평을 기억해 읽게 된 그의 후속 작품 <포의 그림자>다. 전작과 비슷한 방식으로 실존했던 인물에 관한 미스테리를 그만의 방법으로 재연해낸다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작품 세계와 포에 대한 이야기를 음미해 보려고 했으나 글쎄.

 작가가 재창조해낸 그 당시의 시대상과 주인공 퀜틴 클라크란 캐릭터 창조, 그리고 그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건의 진실에 대한 궁금증 등 끌릴만한 요소가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해 큰 재미를 얻었고 미스테리가 주는 특유의 긴장감을 동반한 이 책만의 무언가를 느꼈다고 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시대나 거리상으로 멀리 떨어져있긴 해도 작가의 필력이 만들어낸 이 책의 매력과 몰입될 만한 요소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화가 치밀 정도로 어색하고 성의 없는 번역체와 형식적인 이야기들이 많음에도 쉽게 책에 빠져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의심할 수 있듯, 나 또한 이 작가가 너무 실제 이야기에 연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분명 실화를 근거로 책을 쓰기 위해 조사를 통한 상당한 양의 문서들이 내용에 완전히 겹쳐져 있고,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실제 이야기의 차이가 극히 적다는 부분은 인정해야한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실화를 있는 그대로 들려주는 차원을 넘어서 긴장감 넘치는 미스테리 소설로의 변주를 꿈꾼다. 그를 위해 개성있는 캐릭터를 3명이나 창조해냈고 그들이 살아 움직이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 실화를 재미나게 들려주기 위해 노력했다는 측면을 엿볼 수 있는데, 그 노력이 조금 욕심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긴 분량을 통해 당시의 정황과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들을 세세하게 그리며 상당한 디테일을 구현해내지만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의 지루함과 결과의 허무함은 극복하기 힘든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포에 너무도 빠져있는 퀜틴이 중심을 잡아주지 못하면서 정작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포에 대한 이야기가 뒷전으로 밀리면서 사건에 대한 관심과 긴장의 끈을 유지하는데 실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가 특유의 방식, 또는 이런 류의 외국추리소설에서 나타나는 특징일지는 모르지만 이야기의 전달 방식이 답답했다. 단순히 말을 번역하면서 오는 답답함에 대한 아쉬움 보단, 조금씩 진실을 벗겨나가는 그 순간에 대한 집중력이 약했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캐릭터의 문제라고도 생각하는데, 새롭게 창조한 캐릭터와 실제로 존재했던 주변 인물들의 어울림이 생각만큼 자연스럽지 못 했던 이유도 있겠다. 남작과 뒤퐁트라는 대단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에 주목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행동보단 퀜틴의 행적에 더 관심을 가지면서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낳았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퀜틴 클라크란 캐릭터 자체가 갖는 정체성이 가장 의문스러웠다. 중간에 나왔던 글귀처럼 천재의 주변엔 항상 누군가가 있었던 것과 같은 존재로 생각되지만, 무언가 어정쩡한 느낌이다.

 뒤퐁트의 기괴한 모습들 하나씩 알려주는 것은 흥미로웠다. 마치 포의 소설에서 뒤팽의 모습을 읽는 것과 비슷한 클리셰를 느낀 기분이랄까. 봉주르란 캐릭터는 무척 맘에 들었다. 퀜틴과 정말 이 작품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묘한 로맨스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에 적당히 처리해버린 느낌의 그녀의 뒷이야기는 정말 억지스러웠지만. 그리고 맨 마지막 엔딩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갑작스럽게 너무도 무난한 해피엔딩으로 흘러갔지만 ‘당신도 주인공’이라는 헤이티의 대사를 잊기 힘들 것 같다. 그 문장만큼 퀜틴의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는 부분은 없었다.

 만족하는 부분과 아쉬운 부분이 공존하고 있지만, 차마 다른 이에게 추천을 권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혹시 앞으로 읽을 생각을 갖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생각보다 잘 읽히니 망설이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 지루하더라도 잘 읽히는 매력을 갖고 있는 책이라면 읽을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에드가 포의 죽음을 둘러싼 며칠간의 미스테리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그린 추리 소설 <포의 그림자>다.

 

★★★

릴리 프랭키의 자전적 소설 ‘도쿄 타워’를 읽었다. 이 책을 얘기하려면 먼저 릴리 프랭키라는 작가의 프로필과 제3회 서점대상 수상작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봐야한다. 미대 출신으로 전업 작가가 아닌 일러스트레이터와 방송계에서 다양하면서 개성 있는 활동을 하고 있는 릴리 프랭키가 쓴 책이 이토록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은 조금 신기했다. 전문적으로 소설을 쓰지 않는 작가의 책이 이렇게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여타 소설가들과 다른 방향의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또 뛰어난 대중성과 따뜻함이 있는 작품이 주로 선정되는 서점대상을 수여했다는 것도 책을 읽기 전 기대를 부풀게 만들기 충분했다.

미리 밝히지만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기억이 없다. 이 책이 그만큼 감동적이고 사람의 감성을 자극한다는 틀에 박힌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너무 와 닿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하나의 책을 읽고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모두 제각각이라 내가 느낀 감정을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감정을 자극하는 소설이지만 함부로 최고의 소설이라 극찬한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고 그래서 조심스러워 진다. 하지만 분명 나처럼 강하게 감정의 자극을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홍보 문구에는 ‘웃다가 울게 만드는’ 소설이란 수식어가 붙어있다. 너무 진부한 문구라 오해하기 쉽지만 이 책은 쓰게 된 근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론 웃음과 감동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런데 그 웃음과 감동이 다른 소설들과 조금 다르다. 그것은 자전적 소설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너무도 뛰어난 현실성과 객관과 주관을 넘나들며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작가의 여유로운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서두에 밝혀두듯 작가의 기억력이 정말 뛰어난 것인지, 또 그 기억력을 토대로 사실만을 적어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책에 나타난 그의 과거 이야기는 억지스러움이 전혀 없는 삶 그 자체다. 소설의 감정 굴곡을 위해 아무리 자전 소설이어도 일부러 사건의 배치를 조절하는 다른 책들과 다르게 그냥 있는 그대로를 적어 놓은 것처럼 보이고 그 부분이 이 책의 최대 강점이다. 너무 솔직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겪고 생각한 일들을 적나라하게 적어 놓았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고 재미있다. 마지막의 감동은 앞부분에서 축적된 현실성이 강한 감정 이입을 도왔기 때문에 이뤄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감동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작가는 자신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주로 가족과의 관계를 주목하고 있는데, 그 당시 느꼈던 가족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을 지금의 그가 바라보는 시선은 무척 인상적이다. 어떤 후회나 아쉬움 없이 담담히 자신과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은 독자들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에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식이기 때문에 돈을 쓰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게 만들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머니가 아닌 한 사람의 어른으로 보이는 대목에서 많은 공감을 하고 지금과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자신의 삶을 소재로 잔잔히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런 책은 참 좋다. 일본의 문학평론가들이 ‘문학의 미래’를 보았다고 극찬하는 것은 그의 뛰어난 문장력과 표현 방법 때문이 아니라 책이 바라본 방향과 성격에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어떤 감정을 불어넣어주거나 재미를 위해 억지로 쥐어짠 이야기를 소재로 책을 써내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점점 변해가는 지금 시대에 독자들의 높아져가는 눈높이와 책을 거부하는 흐름 속에서 대중의 지갑을 열고 문학의 활발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선 작가의 변화와 발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굉장히 뛰어나고 완벽한 작품이라기보다는 지금의 대중에게 통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또 무엇을 원하는지를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어머니에 대해 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