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에 참 관심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친구들과 도대체 왜 이런 그림이 대단하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투덜거렸을 정도로 무지했다. 그 수준이 나이들어서도 나아지지는 않았다. 미술관에 잘 갈 일도 없었지만 가게 되면 그림을 한 번 주욱 훑어보고 나오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야,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자"라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을 읽으면서 뭔가 눈 앞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이 그냥 그림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책 속에는 책을 쓸 때 작가가 그 이야기를 쓴 의도가 들어 있듯이 그림 속에는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의도가 담겨 있고, 그 그림이 그려진 시대를 대변하는 가치가 들어있다. 또한 그림에서 향기로운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옥수숫대가 폭풍에 흔들리며 부딪혀내는 서걱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물동이를 지고 산길을 가는 스님의 뒷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깊은 산 속에 절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도 있고, 툇마루에 마주 놓인 방석과 댓돌 위에 나란히 놓여진 가죽신과 꽃신을 보고 방 안에 남녀가 있음을 알 수도 있다. 또한 자화상이나 초상화에 그려진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짐작해 낼 수 있고, 그림 속에 있는 소품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렇게 그림이란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다양한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재미있는 퍼즐판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 준 책이 "야,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자"라는 책이다. 이 책을 계기로 자세히 보면 그림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가를 알게 되어, 그 이후에 "느낌있는 그림 이야기", "세상 모든 화가들의 그림 이야기", "명화 속에 담긴 의미를 찾아라" 등의 그림에 관한 책을 차례로 찾아 읽게 되었고 이제는 미술 전시회에 가면 반나절을 그 속에서 나오지 않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정도의 아이를 둔 엄마라면 아이와 함께 읽어보기 딱 좋은 책이다. 아이에게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도록 함께 읽는다면 아이의 그림보는 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장애우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책들 중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오카 슈조의 '우리 누나'는 작가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만큼 사실적인 이야기가 많다.

흔히 장애인들에 관한 책을 읽으면 내가 장애인의 입장에서 그 책을 보게 된다. 그래서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무시하고 못 살게 구는 인물들을 보면 분개를 하고 비난을 했.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꼭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마음이 따끔따끔했다. 허구의 이야기에서는 내가 주인공과 동일시되는 느낌을 쉽게 가질 수 있어, 대개 주인공인 장애인의 입장에 서게 되지만, 이 책은 허구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처럼 장애인의 현실을 각색없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어 장애인보다 가해자인 주변인물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쉽게 장애인의 고통을 이해하자고 말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 뿐이지 우리와 다를 바 없다고 편견 없이 보자고 한다. 육체적인 고통을 가진 그들을 위해 우리가 조금 더 손해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장애인 형제나 가족이 있다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있지만 속으로는 동정하고, 무언가 사고가 났을 때는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을 먼저 의심하게 되고, 나보다 약한 그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친구가 되었을 때 내가 힘들까봐 적당히 거리를 둔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장애인이 등장하는 책에서 장애인들을 대놓고 괴롭히는 인물이 내가 아니었을 뿐,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과 우리 사이에 견고한 벽을 치고 넘어오지 못하게 했던 것은 바로 나라는 것을 이 책은 참으로 담담한 필체로 얘기한다.

누구나 잠재적인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위험이 가득찬 현대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친절은 고사하고 차가운 시선이라도 거두어졌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이 가슴에 사무친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다. 게다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어떤 책인지 호기심이 생기게 한다. 그래서 한 번 쯤 읽어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그래도 믿을 만한 출판사인 민음사를 선택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속담이 이런 것일까. 내가 읽은 책 중에 최악의 번역본이었다. 몇 년 전에도 내용은 꽤 신선하고 좋았는데 번역이 이상해 짜증을 내며 읽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이 번에 다시 민음사의 "파리대왕"을 읽으면서 짜증이 아니라 분노를 느꼈다. 최근 몇 년 새 책을 더 꼼꼼히 읽는 습관이 생긴지라 번역적인 서투름뿐만 아니라 오타 하나하나가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이 몇 년 전 책이라 지금은 많이 수정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5년 전에 산 이 책은 대충 초벌 번역해서 넘긴 것을 그대로 인쇄한 듯한 느낌을 준다.

번역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 것을 뺀다면 한 번 쯤 읽어봐야 할 명작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은 "15소년 표류기"의 성인용 판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15소년 표류기를 10번 쯤 읽은 나로써는 어른이 된 후에 읽은 파리대왕은 살짝 충격이었다. 같은 어린이지만 두 작품에서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쥘베른이 빛이 비추는 밝은 쪽만을 바라보았다면 윌리엄 골딩은 어둠이 지배하는 그림자만을 바라보았다. 15소년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 힘을 모아 아름답게 무인도에서 협동하며 살아가지만, 파리대왕에 나오는 소년들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권력과 욕망을 위해 서로 싸우며 살인을 행한다.

15소년이 했던 것처럼 모든 일들이 생각하는 대로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파리대왕의 소년들처럼 환경이 바뀌었다고 야만적인 포악함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모습도 수긍하긴 어려웠다. '파리대왕'이 아름다운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산호섬"이라는 작품을 패러디했다는 작품평도 있지만 작가는 인간 본성을 너무 어둡고 악하게만 인식하고 있는 듯해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특히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식인 행위를 하는 등 평화로운 시기에는 상상도 못할 일들을 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의 숨겨진 치부를 들켜버린 것처럼 이 책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극한 상황에 던져졌을 때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랠프처럼 끝까지 이성을 잃지 않은 합리인 사람으로 남아 있을까 잭처럼 주변 상황에 적응하며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야만인의 모습으로 변할까.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면 내가 작품을 너무 단순하게 파악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