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장편소설”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설로 받아들이기에는, 인간에 대한 절망감과 보안부에서 일주일간 작가가 겪었을 육체적, 정신적 고통들이 너무 생생했다.
한수산 작가는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유명 작가였다.
감성적인 그의 문장과 문체 때문에 나는 “부초” 와 “바다로 간 목마” “이별 없는 아침” 등 그의 작품 속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지면을 통해 “한수산 필화사건”을 읽은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곧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 후 20여년이 지나서 다시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80년대 그 시대가 얼마나 잔혹한 시대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 글은 작가가 김수환 추기경의 자취를 찾아 나서는 여정과 또 제주도에서 집필하면서 무고하게 연행되어 일주일간 고문을 당한 그 시간들, 또 중앙일보에 연재된 소설 “욕망의 거리”와 관련되어 함께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이 용서를 위한 고통의 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님 선종 이후 그분에 관한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순교자 집안이었던 가정 환경과 형 김동환 신부님, 어려운 환경에서도 두 분의 사제를 키워내신 어머님의 이야기는 조금 알고 있었다.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다는 추기경님의 말씀은 그 사건을 잊을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주인공에게는 크나큰 상처이며 아픔이요 절망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국가기관이라는 곳으로부터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의 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으니 차라리 잊으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생각해 본다.
「잊어야 하는데 잊히지도 않고, 용서해야 하는데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평생 이 고통, 용서하지 못하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도록 저를 처박았다는 것, 이걸 더욱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더군다나 용서할 수 없는 걸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사람의 이 고통을 추기경은 모르시는 겁니다.틀에 박힌 말,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라는 걸 좀 더 깊이 생각하셨다면, 아니 저 같은 사람의 그것까지도 좀 더 깊이 헤아리신다면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수는 없으실 겁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자의 이 고통을 말입니다.」
용서하라는 말은 주인공에게는 족쇄였다.
그러나 아픈 상처를 가진 채 오랜 방황속에서 그는 용서의 길을 찾았다.
한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는 개인이 겪은 고통을 넘어서 우리 모두가 지켜봐야 했던 아픔의 역사이기에 먹먹함과 함께 진한 감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