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들의 책에 대한 애착은 물어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소년들이 장난감 가게에 가서 로봇과 레고 앞에서 기웃거리거나 소녀들이 인형 앞에서 어떤 인형을 고를지 고민하는 것처럼 독서가들 또한 서점이라던지 도서관, 혹은 책들이 많이 있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둘러본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을 기웃거리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라는 책을 보았고 당연히 독자로써 서재라는 그 단어에 꽂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는 누구인가, 그의 이력을 살펴보자면 1940년 생으로 1964년에 도쿄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잠깐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67년에 다시 도쿄대 철학과에 재입학, 재학 중에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974년에 문예춘추(文藝春秋) 11월 호에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 금맥과 인맥>으로 다나카 수상의 비리 사건을 폭로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가 일본에서 유명한 또 다른 이야기로 고양이 빌딩을 들 수 있는데 바로 이 책의 탄생의 비밀이 그 빌딩 속에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자면 좁은 부지의 검은색 외관에 흑묘의 얼굴이 그려져 있다. 고양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애정을 생각해보면 충분하면서도 조금 특이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그 사람의 외모를 보지 말고 그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라" 이 말을 살짝 변형시켜 "그 빌딩의 겉모습을 보지 말고 그 빌딩의 속을 들여다보라"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제목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한 인물의 서재를 소개하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의 서재가 조금 전에 언급한 이 고양이 빌딩과 관련이 있다.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 하면 사실상 고양이 빌딩 전체가 그의 서재이다. 그래서 그 빌딩의 속을 들여다보라고 유머스러운 얘기를 잠시 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도 부족해 산초메와 릿쿄 대학에도 그의 서재가 있다. 그러면 "도대체 그의 서재에 있는 책들은 몇 권인가?"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자신도 자세히 모르는 책의 권 수는 이 책의 작업을 위해서 찍은 카메라의 셔터 수로 대략 가늠해 보자면 10만 권에서 20만 권이 된다고 한다. 입이 쩍 벌어진다. 보통 애서가들의 평균 보유량이 2~3만 권에 달하고 5만 권 정도면 정말 많은 것인데 이 할아버지는 많은 정도에서 최소 2배에서 많게는 4배 정도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지의 거성'이다.
책의 겉표지에는 검은색 바탕에 그의 서재를 찍은 직사각형 모양의 기다란 사진이 중앙에 박혀 있다. 그리고 새로운 물건의 두근거림처럼 포장을 벗기듯이 겉표지를 들춰내면 책장의 사진을 전체적으로 디자인한 양장의 속표지가 보인다. 보는 순간 한 마디로 "멋지다"라는 감탄사와 함께 이 책의 목적과 제목의 느낌을 물씬 반영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650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속내에는 단면의 서재 사진들과 함께 그 서재에 대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풀어져 있다.
그의 이력과 어떤 책인가에 꽤나 많은 글을 할애한 것은 서재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을 소개한 책으로써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것과 그와 이 책의 구성과 편집, 디자인을 하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책에 대한 애정으로 이 책을 독자들에게 선보였는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면 이제 독자로써 그의 서재 속을 마음껏 샅샅이 보는 것이 도리라 생각된다.
책의 권 수만큼 그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책의 목차를 보면 또 한 번 입이 벌어진다. 속으로 '이 할아버지 누가 책 좋아하는 사람 아니랄까 봐 다양한 주제들이 숲을 이루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차만 읽어보더라도 지의 거성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다방면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할아버지가 책을 섭렵하는 방식을 보면 한 가지 주제를 정한 다음 그 주제뿐만이 아니라 그 주제에서 파생되는 거의 모든 것의 책과 자료를 모으며 조사를 한다. 물론 저작이나 기고를 위한 주제도 이러한 성향 때문인지 사실과 정확성에 대해서 철두철미하게 분석을 하신다.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지만 이 할아버지의 지(知)에 대한 목적은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낫다'라는 말을 반영하듯이 지식에 대한 탐구 정신은 저 깊은 심해까지, 또는 저 멀리 우주까지 지식의 끝에 도달해서 지의 궁극을 이루려는 느낌이다. 아마도 어마어마한 장서를 보유하게 된 원인의 발단은 모든 것들에 대한 탐구심일 것이다.
한 권씩 짚어가며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그의 말투에서 비록 한글로 번역된 책으로 읽어보지만 책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느껴진다. 흩어져 있는 책들을 한 권씩 자신의 품으로 들이며 그것을 읽고 생각하며 그렇게 책의 권수가 늘어갈수록 시간적으로 나이도 한 살, 한 살 늘어가며 인생과 세월의 변고를 책과 함께 생활한 노년의 독서가의 기분이란 아직 20대 후반인 나에게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책으로 쌓인 지(知)의 관록일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책의 도입부 부분에서 "우선 서가를 보면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가 보인다"라고 말한다.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또 하나의 도구라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서재에 꽂힌 책으로 그 사람의 지적 편력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도 같은 맥락의 의미라 생각된다. 자신의 서재를 둘러보며 한 권씩, 한 권씩 꽂혀 있는 책을 보면 각각의 그 책들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의 서재를 들여다보며 비록 나의 서재는 없지만 방 한편에 위치한 책장을 보고 있노라면 각각의 책들에 묻어있는 나의 기억과 추억이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 녀석들을 집어 들었을 때의 촉감, 책에서 나는 나무 냄새,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면서 나는 스르륵 소리, 그리고 읽으면서 느꼈을 생각과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책은 인생을 한 걸음씩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나의 동반자이자 또 다른 나 자신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책이라는 존재를 물질적으로 보자면 언어를 종이에 문자화 한 을 제본해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지만 책은 글자들의 단순한 집합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주체로써 자신의 저 깊은 곳에 숨어있는 정신을 모두 쏟아낸 결과물이자 그 사람의 또 다른 모습이다. 또한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인간(저자)과 인간(독자)을 가장 돈독하게 연결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인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읽고, 쓰고, 사유하면서 가치관과 사고,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넓어지며 그로 인해 지(知)가 성장하는 과정은 참으로 다채로우면서 신비롭다.
그의 서재를 다 들여다보고 두꺼운 그의 이야기를 다시 손으로 만지며 이 할아버지도 벌써 칠순이 넘어 팔순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이렇게 자신의 서재를 돌아보며 어떤 생각과 감정들이 느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서재를 들여다본 한 독자로써 앞으로도 많은 저작 활동으로 독자들의 사고를 넓혀주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일 뿐이다. 또한 책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끊임없이 알아가고자 하는 이 할아버지가 참으로 멋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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