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게 된 계기)
- 나는 얼마 전까지 소설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소설나부랭이(?)를 읽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여겼던 시절이 있었던 거 같다.
4-5년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히트했을 때 내 주위사람들이 많이 읽어서 약간의 위기의식을 느끼긴 했었지만, 굳이 일본작가의 작품까지 읽고 싶지는 않았다.
- 유럽서점에서 무라카미 번역소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고 실제로 상당수 유럽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읽고 있는 것을 신선하게 목격한 적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담을 쌓고 있던 나에게 올 가을 그가 노벨문학상 후보 하마평에 올랐다는 기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 도대체 어떤 작가이기에 한국의 2013년 출판시장 판매고가 2위(1위는 조정래 작가의 정글만리 세트)나 되는가 하는 놀라움과, 그리고 국수주의적 시각에서 문화적·정신적인 측면의 일본종속에 대한 나의 우려를 넘어, 세계속으로 일본문화를 전파하는 첨병이라는 부러움이 생겼다.
- 아무튼 이번 기회에 그의 출세작인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국내 출판명은 ‘상실의 시대’)에 도전해보기로 하였다.
(좋았던 점)
- 과연 세간의 평가대로 젊은이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우울, 고독, 방황, 깨끗함, 음악, 커피와 차, 이태리음식, 전철, 기차, 도시의 향락(신쥬쿠), 술, 담배, 섹스, 대학생활, 기숙사·자취의 낭만, 여행 등등 젊은이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요소가 소설 속에 녹아있다.
- 그의 문체는 미국 소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아주 여러군데서 모던한 감성이 묻어나서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 ‘문학소년’이 된 듯한 기분을 여러 번 느꼈다.
- 내가 아는 지인으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 왈 '위대한 개츠비'를 3번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 피츠제럴드와 그의 작품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책 속에 인용된 ‘위대한 개츠비’ 장면을 읽으면서 무라카미는 정말 피츠제럴드의 엄청난 팬인 걸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느낀 특기사항)
- 와, 이 책은 정말 변태소설이다.
미국소설에서도 이런 질펀한 내용은 거의 보지 못한거 같은데, 어떻게 이런 내용이 나오는지.... 일본의 섹스산업이 변태적인거로 유명하지만, 이 소설속에서도 여과없이 그대로 등장하니 무라카미 하루키를 우상시하는 국내 청소년들을 생각할 때 기가 막힌다.
(* 내가 변태소설이라고 잘라 말하니, 먼저 책을 읽었던 다른 사람이 선뜻 동의를 안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해주니 그런 내용이 있었느냐고 깜짝 놀란다. - 예) 레이코의 고백: 13세 여중생이 침대에서 31세 아줌마인 자기의 브래지어를 벗기면서 유혹을 하는 장면. 또, 미도리의 섹스 판타지 등등)
섹스가 빈번히 등장하는 미국에서도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섹스이야기는 금기인데 어떻게 이런 내용이 버젓이 나올수 있을까? ㅠㅠ
성인인 내 입장에서 보더라도 마지막까지 변태적인 모습으로 가는 것은 정도가 너무 지나친 듯 싶다.
- “응답하라 1994”와 overlap되는 소설이다.
어제 응사(케이블방송으로 시청률 14.3%로 종영)가 마지막으로 종영했다. 마지막 회의 나레이션에서 회고 멘트가 나올 때 가슴이 뭉클하고 살짝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 책에서도 과거 대학시절을 떠올리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1969-1970인데, 일본 대학생활이 한국보다는 한 세대 먼저가는 기분이 들어서인지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
가령 이런거:
주인공인 토루는 라테커피를 시켜 마시거나 피스타치오를 까먹으며, 이태리 안초비피자를 주문한다. 또 비가 오는 우울한 날 계속 오토 재생기능을 이용해서 레코드 음악을 듣는다. (내 경험상 이러한 것들은 모두 1990년 이후에나 해본거 같다. 물론 아직까지 안초비<멸치>피자는 먹어보지도 못했고....)
- 영문 표현이 함축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Jay Rubin이 영역한 소설을 읽었는데, 책 분량이 일문판의 65%수준이다.
영문판: Norwegian Wood, Vintage출판사, Jay Rubin 번역, 총 386쪽
일문판: 노르웨이의 숲, 강단사, 상권(302쪽) 및 하권(293쪽)
영문에 비해, 일차적으로 일문은 그 구조가 지극히 만연체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령, 영문: they will probably have to transfer 일문: 이동시키지 않을 수 없다라는 것을 하게 되지 않을 수 없게 되겠지요)
영문에서 이해가 안되는 말은 일문을 찾아서 읽었는데, 영문만으로도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가령, 책속에서 I don't wind the spring on Sundays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한참 생각했는데, '태엽을 감는다'는 뜻이란걸 나중에 깨달았다.
아, 그 당시는 시계태엽을 돌려놓고 잠자리에 들었지... (이 부분을 다시 읽으면서, 응사의 마지막처럼, 과거를 회상하노라니 갑자기 아련함이 확 밀려왔다.)
영문판의 한 가지 특징은 각주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약간 의역한 점도 있다. (가령, ‘토루는 이 날 “운수좋은 날”을 읽었다’ 하면, ‘토루는 이 날 “현진건”을 읽었다 하는 식이다.)
- 무라카미는 여러모로 대단한 작가인거 같다. 일본에서만 영어공부를 했음에도 몇 권의 어려운 영어소설을 번역한 적이 있고, 장가도 스물서넛경에 일찍 갔으니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더 대단한 것이 아직까지 배우자와 잘 살고 있는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작가로 유명세를 타서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 것임에도 계속해서 신작을 발표한다는 것이 존경스럽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내 평점)
- 아직 한 권밖에 안 읽어서 평가는 이른거 같다.
- 감성적인 문체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므로 5점/5점, 정상적인 섹스가 아니라, 변태섹스가 너무 많아서 대한민국 청소년에 악영향을 끼치므로 크게 마이너스, 결국 3.7점/5점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