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고 유쾌한 삶의 중얼거림
형 문 창
소야 신천희의 산문집 「중얼중얼」을 읽으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조영남이 부른 노래 ‘화개장터’를 떠올렸다.
“구경 한번 와 보시라.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 오시면 모두 모두 이웃사촌, 고운 정 미운 정 주고받는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개장터.”
대충 그런 가사를 떠올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설픈 연상이 아니라 이 책에서 내가 읽고, 생각하고, 얻은 모든 것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은이가 경상도에서 태어나 전라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도 노래와 전혀 관련이 없다 할 수는 없으나 그런 지역적 인식을 얘깃거리로 삼으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있어야 할 것이 다 있다거나, 이웃사촌이라거나, 미운 정 고운 정이라거나 이런 것들이 한결같이「중얼중얼」의 성격을 말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조건처럼 여겨진 탓이었다.
책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구수한 입담까지도 장터 국밥 한 그릇씩 나누며 이웃사촌들이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화려한 수식을 하지 않고서도 정감이 넘치는 문체라든가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면서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는 진솔한 내용들로 넘쳐나는 「중얼중얼」이 바로 시골 장터가 아닌가. 시골 장터라 정작 없는 게 많을 것 같으면서도 있을 것이 다 있지 않은가.
가난하고 소외된 소중한 이웃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사랑의 메시지가 있고,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 모리배들에게 놓는 따끔한 일침, 정작 중요한 것은 외면하고 지엽적인 일로 꼬투리나 잡으며 남의 흉이나 보기 좋아하는 중생들을 향한 귀여운 욕지거리가 있다. 도덕불감증의 세태에 들이대는 날카로운 메스, 삼라만상과 더불어 사는 포근한 인정, 불의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해 외치는 양심의 소리가 있다.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닦아서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 불교의 본질이라는, 불자로서의 깊은 성찰 등이 빼곡히 들어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있을 건 다 있는 셈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소재도 아주 다양하다. 동거하자고 달려드는 보살(도마뱀), 허벅지를 깨물고 역모자로 체포된 개미, 뒷산에 숨어 살다 체포된 빨치산(가재), 보현이, 호법이, 거지발싸개, 무학이, 묘법이(소야와 인연이 닿은 강아지들의 이름)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많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소야의 친구나 가족으로 등장하여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다. 하찮은 미물도 그에게 가면 동지가 되고 가족이 되고 따뜻한 이웃이 되어 훌륭한 비유로 탄생한다.
정작 소야 본인은 오두막이나 토굴, 암자, 재실 등을 전전하며, 새벽에 갑자기 쏟아지는 장대비로 지붕이 새어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자, “방안에서 우산을 쓴 채 술을 먹으며 낭만을 만끽할 것인가, 세숫대야를 받쳐 놓고 빗방울이 들려주는 연주를 즐길 것인가.”하며‘행복한 고민’에 빠진다는, 어찌 보면 참으로 한심한 인사다. 아니면 자기 말마따나 조금은 덜떨어진 땡초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냥 지금처럼 땡초로, 푼수로 조금 모자란 듯이 사는 게 어울린다.”고 말하는 그를 좋아한다. 성철 스님도 스스로 땡초라 불리기를 좋아했다는데 소야 또한 땡초를 자초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보살님들의 주선으로, 막걸리 골목으로 유명한 삼천동 어느 대폿집에서 그를 처음 만났지만 사실 나는 그에 대하여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갖고 있었다. 수인사를 하고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때부터 그의 인간됨과 그의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때, 그가 내게 준 시집「새의 그림자는 날지 않는다」를 집에 가지고 와서 비록 술김이지만 우선 일독을 했고 이튿날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아하, 이렇게 쉽고 소박하고 진솔하게 시를 써도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구나 싶어 몇 번이나 무릎을 쳤다. 그래서 나는 그에 관한 시(시가 본업이 아니니, 월권을 행한 셈이지만) 한 편을 써서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그 시가 지금도 인터넷을 돌고 있으니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내 깜냥으로는 그에 대한 예우라고 자위하며 지낸다.
시집「새의 그림자는 날지 않는다」가 그랬듯이 이번 산문집 「중얼중얼」 또한 나를 매료시켰다. 단편적으로는「산골소년의 옹달샘 편지」(소야가 많은 지인들에게 메일로 보내주는 시와 산문)를 통해 이미 읽은 글이 대부분이었으나 한 권의 책으로 대하고 보니 우선 그 느낌이 새로웠고, 다시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멋진 독후감을 한 편 써서 친필 서명한 책을 선뜻 내어준 은혜를 갚으리라 생각했는데 워낙 둔필이다 보니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만은 어떤 찬사라도 아끼고 싶지 않다.
혹자는 그에게 “글은 좋은데 사람도 그만큼 맑은지 모르겠다.”고 했다는데 마음이 바르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글을 쓸 수 있으랴 하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이고, 또 내가 아는 소야는 가식 없고 청징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 그 문학’이라는 이야기다.
툭하면 자살을 생각하는 세대를 향하여, 글자의 순서만 바꾸면 ‘살자’라는 재치 있는 훈수를 둘 줄 아는 사람이 바로 소야고, 그래서 소야의 글은 편편이 적절한 비유와 익살과 위트가 넘친다. 정치인들에게서 배웠다는 통증클리닉이나, 수컷이 돼 가지고 엉거주춤 쪼그리고 앉아서 오줌을 누는 개에게 가정교육을 시키려고 무학이 앞에 가서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싸야 하는 개 팔자가 되었다는 익살에 배꼽을 잡고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들면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분명 그는 사소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사소한 글감들로 주옥같은 이야기를 빚어내는 특별한 재주를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지 않다. 웬만큼 유명세를 탔는데도 허공을 날다가 유리창에 부딪혀 머리가 깨진 참새를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마음을 닦아 부처가 되는 길이 어리석고 미련한 중생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요, 설사 오랜 수행 끝에 운이 좋아 ‘부처 근처에 가 닿게’된다고 해도 때가 늦어 부처의 도리를 행하기 어려우니 그저 부처 흉내라도 좀 내며 살고자 한다. 그래서 부처를 자처하고 살겠으니 자기를 부처라 불러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언뜻 들으면 엄청난 교만이요 허무맹랑한 궤변 같으나, 자신을 발끝까지 낮추고,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고, 순간순간의 깨우침에 따라 행하는 것이 바로 불도로 알고 안분지족하며 살겠다는 속 눈앞에 보이는 산을 마당에 들여놓고 살다 보니 마음이 안을 살피지 못하고 자꾸 밖으로 달려 나간다. 그래서 싸리 울타리를 치고 크고 무겁던 산을 번쩍 들어 마당 바깥으로 내놓으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고 그는 말한다. 이렇듯 그는 자주 안을 들여다본다. 「중얼중얼」전편에 흐르는 사려 깊은 통찰은 바로 이런 그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것일 게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는 것이 꽤 많고 정말 부처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지지만 그는 전혀 뽐내지 않고 너무 쉽고 소탈하게 말을 한다. 「중얼중얼」에서도 그렇다. 시치미 딱 떼고 중얼중얼 그런다. 자기 할 말만 하는 것이다. 그래도 아는 이는 다 안다. 즐겁고 유쾌한, 그래서 행복하고 가슴 뿌듯한 삶이 진국으로 녹아 행간에 철철 넘치고 있음을.
참고로 내가 그의 시집 「새의 그림자는 날지 않는다」를 읽고 쓴 졸시 「해우」를 사족으로 붙인다.
해후
-笑野 신천희 님에게-
형 문 창
어느 들녘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삼천동 포석정에 웬 ‘중이’ 앉아
웃음 보시를 하고 있습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여 갸웃갸웃
아무리 생각을 굴려 봐도 닿는 데가 없는 걸 보니
아마도 가까운 곳은 아닌 성싶고
천지가 몇 번 개벽을 하기 전에
천사가 사는 어느 별이었던가
그 별 모퉁이 어느 대폿집이었던가
아마도 거기서 그를 만난게지,
갑자기 술맛이 땡기는 것을 보니 영락없습니다
그는 천사 누나 옷을 들고 나와 술을 샀고
나는 신성한 별에 오줌을 갈긴 죄로
지구에 와서 다시 술잔을 나누고 보니
좋아라, 너무 좋아서 잠도 쫒고
‘그늘 도둑’을 욕하다가 ‘똥값’을 계산해 보다가
‘새를 보’다가 피식피식 웃다가
가만, 웃고 말 일 아니네
내 머리에 앉은 파리를 들킬까 봐
몸을 낮추고 또 낮추어서 살살 기어들어가
이불을 덮고 숨어서 키들키들 웃다가
날이 새는 걸 몰랐는데
그새 먼 바다를 건너온 아침은 푸르기도 해라,
’등대’ 하나 거기 서 있습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