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자신의 내면과 깊이 만나는 시간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에게 “꽃길만 걸으세요!”라고 축복한다. 누구나 걷고 싶은 길, 그 길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길이 꽃길이다. 인생의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있어 꽃길로 안내하면 좋으련만 인생길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길을 걷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며, 선택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더 좋은 길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다]를 쓴 손미나 작가가 그렇다. 나는 그녀를 뉴스 앵커와 <도전 골든벨>을 진행한 아나운서로만 기억하는데, 알고 보니 소설과 여행기를 여러 권 쓴 베스트셀러 여행 작가, 소설가, 스타트업 CEO, 편집인, 인생학교 교장까지 지낸 천상 모험가다. 이러한 다채로움은 자기만의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명확한 데서 오는 법이다.

그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아나운서라는 안정적이고 폼 나는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갈등했다. 깊은 고민 끝에 호기롭게 떠난 1년간의 스페인 유학과 복귀. 하지만 유학에서 돌아온 후에도 고민은 계속 되었다. ‘과연 이 길을 계속 가야할까?’ 그리곤 주변의 만류에도 KBS를 떠난다.

나는 유달리 용감한 사람도, 불안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도전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감내하기로 마음먹었을뿐이다. 그렇다 행복의 비결은 많은 것, 좋은 것을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것을 확실히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미 잘 가꿔진 꽃길을 찾아 걷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길에 꽃씨를 뿌리고, 가꾸고, 이따금 우연히 발견하는 꽃들에 감사하는 것, 바로 그것일 테다. p173-175

그녀는 갈림길을 마주할 때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도전한다. 검증된 성공이나 주변 시선에 떠밀려 선택하지 않고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방향을 정한다. 그곳에 행복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선호하는 길을 따라가기보다 조금 두렵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아닌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믿어서다.

책을 읽으며 그녀만의 특징을 발견했다. 갈림길 앞에서 반드시 쉬어가는 것. 낯선 세계로 여행을 떠나서 낯선 이들을 만나며 몸과 마음에 확실하게 쉼표를 찍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뒤 미지의 길로 뛰어들어 마침내 그 길을 꽃길로 만들고야 만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러한 토양을 제공해주신 분이다.

그녀가 고3 때, 아버지는 고3이야말로 쉬어야 한다며 여름방학에 위험천만해 보이는 휴가를 감행하신다. 당시 청주대 교수로 재직 중이셨던 아버지는 그녀를 자신의 연구실에서 한 달간 쉬게 했다. 무모해 보일 수 있겠으나 그녀는 휴가에서 돌아온 뒤 최상의 컨디션 속에서 가장 신나게 공부하고 즐겁게 생활하며 고3 마지막 지옥의 레이스를 거뜬히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공부해야 할 고3이 보충수업을 빼먹고 한 달간 휴가를 보낸 건 분명 상식 밖이다. 하지만 그 휴가로 인해 고3 시절을 무사히 완주하는 큰 힘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아버지로부터 쉼표 찍는 묘미와 인생을 멀리 보는 법을 배운 저자는 갈래 길을 만나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다. 스페인, 하와이, 호주, 이탈리아, 파리, 아르헨티나, 칠레, 필리핀, 심지어 무인도까지.

살다 보면 잠시 쉬어가야 하는 때가 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데, 대개 용기가 부족하거나 욕심이 과해서이다. 멈추었을 때 잃게 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는 반드시 쉼표가 필요하다. 미처 보지 못했던 길도, 예전에 몰랐던 내 안의 슈퍼파워도 잠시 쉬어가는 순간 비로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p41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아름답고 유쾌하다. 빈민가 출신의 영화배우 집을 방문해 음식을 대접받은 이야기, 포르투갈 아주머니 로사의 기상천외한 여행 가이드, 푸에르토 몬트의 괴짜 마부 아저씨, 태양 아래서 하늘의 변화만을 운명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말라파스쿠아의 아이들에게 하모니카를 선물한 이야기, 아버지와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인품을 지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다.

그 중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로맨티스트인데다가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자상하기까지 하다니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버지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다 큰 딸자식과 스스럼없이 포옹하고 볼에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다니! 아버지가 무섭고 어렵기만 했던 내 젊은 날과 비교되어 부러웠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 부러움이 떠나지 않았다. 인생의 난제 앞에서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여건, 경제력, 용기가 내겐 없었다. 인생의 고비마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사치였으니까.

그녀에게 여행은 그저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맛난 음식을 먹으며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다. 삶의 터닝 포인트를 발견하고 용기와 도전정신을 무장하는 통과의례로 보인다. 그 결과 평범하지 않은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꽃길로 만드는 게 그녀의 체질로 변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는 길이 남들과 좀 달라도 괜찮다고, 넘어지거나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인생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자신의 것이니까 자신의 인생을 살아보라는 당부로 들린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다]를 선물 받고서 퇴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읽었다. 앉은자리에서 뚝딱 읽는 평소와 달리 몇 달에 걸쳐 천천히 읽었다. 서평을 쓰려고 보니 앞부분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생각나는 것만 썼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고 심지 있게 자신의 길을 걸으며 늘 변화를 추구하는 친구가 왜 이 책을 선물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여행을 즐겨하고 책을 좋아하며 누구보다 도전정신이 강한 친구에게 늦었지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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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목사님과 동역했다는 이유만으로 이 책에 관심이 갔고, 얕은 물에서 다이빙을 하는 바람에 목뼈가 부러진 목사님의 책이어서 더 읽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스캇 솔즈 목사님이 팀 켈러 목사님과 리디머교회에서  동역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진 않았다. 다이빙 사고로 목뼈가 부러진 분은 스캇 솔즈 목사님의 친구이며, 그분이 쓰신 추천사를 내가 잘못 이해한 거였다.  

 

장애를 가진 팀 켈러 목사님의 동역자가 쓴 책이라는 오해로 읽게 된 <리더의 눈물>은 책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었다. 자꾸만 움츠러드는 나를 격려하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는 은혜를 경험했다. 연약함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 확인하며, 고린도전서 말씀을 인생 말씀으로 붙들기로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누가 봐도 부러운 리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세 안다. 깊은 만족이 아닌 허무함과 외로움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를. 질투와 고독, 불안과 상처,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세상의 비판은 낯선 것도 아닌데 참  적응이 어렵다. 

 

"상처 받은 성도를 오랫동안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었더니 교회가 자신에게 너무 무관심하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린다. 완벽한 설교를 위해 밤을 새워 연구하고 준비했건만 월요일 아침부터 실망스럽다니 기분이 나쁘다니 신학적으로 오류가 많다느니 하는 이메일이 세 통이나 날아와 있다. 성도들을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이끌기 위해 공들여 예배를 준비해도 매번 비난만 쏟아진다. 예배가 너무 딱딱하다고 해서 조금 부드럽게 하면 너무 경망스럽다는 말이 들린다. 신 나는 음악이 예배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잔잔한 음악으로 대체했더니 하품이 난다는 항의가 들어온다. 찬양이 너무 현대적이라고 해서 전통적인 찬양을 자주 했더니 여기저기서 고리타분하다고 투덜거린다. 교인들을

환대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다가갔더니 이번에는 부담스럽다고 한다."(152)

 

어쩌라고? 도대체 어쩌라고?  잘해야 본전인 게 리더의 자리인가 싶다. 가장 완벽한 리더이신 예수님도 실망스러운 일을 겪으시긴 매한가지다. 꼬박 3년 동안 제자들에게 전부 쏟으셨는데 가룟 유다는 동전 몇 푼에 예수님을 팔았고,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했고, 가장 가까웠던 세 명의 제자들은 기도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외면한 채 잠에 빠졌다. 가장 필요한 순간 그들은 모두 뿔뿔이 도망쳐 예수님을 혼자 죽게 놔 두었으니 얼마나 실망스러우셨을까?

 

 사도 바울에겐 가시가 있었고, 모세에겐 끝없이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있었고, 이사야는 모두에게 거절을 당했다. 스캇 솔즈 목사님도 세 명의 담임목사 선정에서 탈락되면서 화가 치밀어올라 체중이 무려 10킬로그램 이상  빠졌다. 평생의 꿈을 잃은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파 3개월 넘게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이후 그는 뉴욕의 리디머교회를 사임하고  내슈빌 그리스도장로교회의 담임목사로 섬기게 되었는데, 불과 5년 만에 그가 꿈꾸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교회로 만들었다. 지금은 내슈빌이 모든 면에서 뉴욕처럼 변해가고 있음에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이라고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자신의 연약함과 좌절, 질투와 욕망을  통하여 리더로 빚어가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스캇 솔즈 목사님은 고백한다. 그의 실패와 인간적인 모습은 연약하고 인간적인 수많은 리더에게 위안이 된다. 그의 연약함은 부족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도 강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이용규 선교사님의 『기대』는 오래 전부터 위시리스트에 올려놓은 책이다. 전작(全作)에서 얻은 신뢰가 궁금증으로 이어진 데다 온라인에서 이용규 선교사님의 설교 ‘기대'를 듣고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며칠 전 읽은  『기대』는 과연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책은 몽골에서 인도네시아로 사역지를 옮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사역 초청을 받은 뒤 여러 달 기도하는 가운데 확증을 받고 그곳으로 가지만, 인도네시아 사역은 몽골 사역과 달라도 많이 달랐다. 풀릴 듯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 꼬이는 일들과 건강의 문제, 예상치 않은 넷째 아이의 출산,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 사역에 대한 뭇사람들의 기대는 무거운 부담이었다. 술술 풀리기는커녕 답이 없어 보이는 답답한 일들이 더 많지만 이러한 기근을 통해 저자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그분만을 기대하게 된다.

   

몽골국제대학교에서의 사역은 인도네시아의 국제대학교 설립과 사역을 위한 훈련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인도네시아 선교를 위해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현지인들을 준비시켜 놓고 계셨다. 세심하신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리도록 하지 않으셨다. 당혹스러운 시간과 두려운 시간, 외로운 시간과 불안함, 부담에 눌리는 시간과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게 하셨으며 때론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까지 허락하셨다.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는 우리와 더 깊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기를 원하시는 기대가 있다. 이 기대와 신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서 어떤 문제는 바로 해결해주시기도 하고, 또 어떤 문제는 우리가 완전히 포기하고 죽어질 때까지 혹독하게 기다리게 하시기도 한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고난의 의미를 깨닫기는 어렵다. 대부분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저자의 고백처럼 깨닫고 보면 그 모든 과정이 은혜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나 상황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대체로 순종하기 전까지 명령의 이유나 이해할 수 없는 상항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이해를 구하시지도 않으신다. 순종하고나면, 상황이 종료되고 나면 비로소 이해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뒤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 역시 은혜이며 감사라는 걸 알게 된다.

   

고난을 극복하고 명령에 순종하는 삶은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가능하다. 신뢰하게 되니까 기다리게 되고 기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역시 우리를 신뢰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허락하시고 어려운 요구를 하시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놀라운 기대가 아닐 수 없다.

 

 

『기대』를 읽기 전에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대에만 주목했다. 일테면 기도 응답에 대한 기대, 도우심에 대한 기대 등 우리가 하나님께 거는 기대에 주목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읽고 나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하나님께 거는 우리의 기대보다 결코 낫지 않음을, 기대는 쌍방향이어야 건강하게 반응함을 배운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커질수록 우리가 느끼는 부담도 크다. 이용규 선교사님도 몽골 사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경제적 부담감을 인도네시아 사역에서 느낀다고.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으면 부담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우리가 지고 가야 될 몫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의 부담을 줄여주시진 않지만  재정과 사역, 그리고 가정을 세밀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책 전체에서 만날 수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몽골에서 인도네시아로 사역지를 옮기셨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바닷길의 거점인 인도네시아 선교와 이슬람권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누리는 삶에 대해, 그것을 동경하는 것에 그칠 것인지, 하나님을 누리며 살 것인지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 관한 내용에서는 선교사님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후손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준 책, 기대해도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