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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을 현실세계로부터 차단하는 능력 - 전체주의 포로파간다  | 기본 2012.11.19 0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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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사 | 200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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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64Ar33t2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자료)

 

 

해설출처: 오늘의 사상 100인 100권(198-201쪽, 월간 <신동아> 1986년 1월호 부록)

 

전체주의의 기원(1951) - 한나 아렌트(Hanna Arendt, 1906-75, 유태계 독일인)
The Origin of Totalitarianism

 


해설: 김덕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1
<한나 아렌트>는 금세기의 가장 비범한 여류 정치이론가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1906년 독일 하노버의 한 교양 있는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쾨니 히스베르크에서 학사과정을 마쳤다.
그는 한때 <마르틴 하이데거>를 찾아 마르부르크 대학에 적을 둔 적이 있으며, 프라이부르크 대학에도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그는 1928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분야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렌트의 빼어난 학문적 명성과 업적은 미국의 저명한 명문대학들이 그에게 다투어 수여한 명예학위들과 그의 화려한 賞歷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렌트가 1950년대 후반부터 버클리 프린스턴 콜럼비아 등 명문대학들로부터 객원교수로 초빙된 것은 여성으로서는 이례적인 명예였다. 뒤에 그는 시카고 대학 교수를 역임한 후 그의 만년을 뉴욕의 사회조사대학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보냈다.
독일에서의 나찌즘의 대두는 <유태계 독일인>이었던 아렌트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셈이다. 그가 독일을 떠난 것은 1934년, 즉 나찌집권 바로 이듬해였으며, 그뒤 파리에 머물면서 유태인관계 사회사업활동에 관여했다가 결국 1941년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것도 파리를 점령한 나찌군 때문이었다.
그는 파리 체재중 그의 스승 <칼 야스퍼스>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부터의 추방소식에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만약 유럽을 휩쓴 전체주의의 광기만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연약하고 순수했던 여류철학도의 관심은 시종 高虛한 중세철학의 언저리에서 맴돌았을는지 모를 일이다. 아렌트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쓴 학위논문은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사상 속의 사랑의 개념에 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찌즘의 反유태주의적 <광기와 무법성>에 전율과 분노를 느끼게 된 것은 이 연약한 여류철학도의 이론적 관심의 겨냥을 정치로 돌리게 한 계기가 된 셈이다.
아렌트가 미국에 건너온 뒤 처음으로 미국학계의 주목을 끌게 된 저서의 제목이 <전체주의의 기원>이었다는 것은 그런 뜻에서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이 저서의 초판은 1951년에 나왔는데,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아렌트는 미국학계에서 새로운 주목과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2
이 책은 나찌의 광기에 전율을 느꼈던 아렌트가 나찌패망으로 전체주의의 족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1945년부터 쓰여지기 시작해서 1949년에 그 초고가 완성되었다.
이 책 가운데서 <전체주의>는 서구사에 있어서 <로마제국 멸망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요, 다른 세기의 기준에서 볼 때 <순전한 광기>일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단정되고 있다. 아렌트는 <이 무서운 현대적 질병의 뿌리><혁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사건(드레퓌스 사건)으로 끝난> 19세기로 소급해서 찾고 있다. 이 심란한 세기에 목격된 민족국가체제의 쇠퇴와 유럽계급사회의 와해는 <전체주의>를 발효시킨 두 개의 원천적 계기로 해석되고 있다. 현대 전체주의의 뿌리가 前세기의 <反유태주의>와 <제국주의>가 바로 그러한 계기에 진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렌트의 전체주의 기원에 대한 학문적 추적이 그 나름의 독특한 시각과 문제의식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된다. 나찌이념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反유태주의는 흔히 민족주의적 배타감정의 분출로 이해되고 있으나, 실은 근대적 反유태주의의 성장은 <전통적 민주주의의 퇴조>와 비례하고 있으며, <유럽 민족국가체제와 그 불안한 세력균형>이 무너진 바로 그 시점에서 절정에 달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아렌트는 유럽에 있어서 민족국가체제와 유태인 세력의 동시적 성쇠에 관한 네 단계 발전의 도식적 윤곽을 제시함으로써 反유태주의와 민족국가쇠퇴 간의 관련성을 부각시켰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도식적 윤곽을 제시함으로써 反유태주의라는 反상식적이고도 反이성적인 편견이 어떻게 1차대전 이후의 민족국가체제 동요기에 나타난 현대적 전체주의운동에 영합되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그가 드레퓌스 사건을 <우리 시대의 공연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다.
그리고 현대전체주의의 모태로서의 제국주의에 관한 아렌트의 분석 또한 경제 일면적인 마르크스적 이론과는 달리 제국주의의 反자유주의적 구조에 대한 심리적이고도 사회적인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그의 이론적 세련과 예리함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세실 로드스>의 표현대로 <팽창은 모든 것>이라 확신되었던 19세기적 상황에서 <가능하면 위성까지도 병합하려던> 부르조아의 제국주의적 야망은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나타난 <폭중(mob)과의 야합>을 가져왔고, 이 불행한 야합은 부르조아의 자체 파멸과 유럽의 전통적인 계급사회 붕괴를 자초한 결과를 낳았다. 자본주의의 폐물이며 부산물인 폭중은 때로는 자본가와의 결탁을 통하여 해외제국주의(overseas imperialism)의 팽창적 야망을 조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일단의 지식인과의 야합을 통하여 대륙적 제국주의(continental imperialism: 凡게르만주의와 凡슬라브주의)의 <擬신화적 넌센스>의 확산에 앞장서기도 하여, 유럽 민족국가체제와 그에 부착된 유럽의 계급체제를 근원부터 허물어뜨림으로써 계급의 대중(masses)에로의 전환을 촉매했다. 막연한 불안 이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광포하고 무정착한 개인들의 거대한 하나의 無구조적인 집단인 대중은 전체주의운동의 그럴 수 없이 좋은 온상으로 전락한다.
아렌트가 유럽의 전통적 계급체제 붕괴에서 나타난 대중적 인간(mass man)의 고독한 심리적 상황에서 전체주의의 뿌리를 찾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전체주의를 서구적 정치전통과는 완전히 이단적이고, 인간적으로 이해 가능한 동기에서는 도저히 推察될 수 없는 새로운 힘으로부터 발원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계적 상황에서만 느끼던 한계적 경험으로서의 <고독>이 오늘의 대중에게 있어서는 일상적 경험으로 변하고, 이 고독 속에서 <현실보다는 허구>, <우연성보다는 불변성>을 갈구하는 대중에게 전체주의는 全能의 준거를 제시함으로써 환상과 허언의 세계에로의 자살적 탈출을 유도한다. 이것은 바로 현실주의와 상식에 대한 대중의 반항과 허구적 이데올로기에의 굴복이라는 <불가사의의 배경>이다.
전체주의의 이러한 擬종교적 특질은 전통적 전제에서는 찾을 수 없는 현대전체주의의 유니크한 징표이다. 따라서 아렌트가 발견한 오늘의 비극은 <체계와 확실성, 귀속과 안전에의 갈구>가 이러한 擬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어필과 허언의 효용을 더욱 조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가 보는 <전체주의 선전>이 지니는 위력은 <대중을 현실세계로부터 차단하는 능력>이다. 바로 이 차단의 벽을 유지시킴으로써 인간생활의 자유로운 공적 공간을 질식시키는 수단이 바로 다름아닌 테러(terror)이다. 따라서 이 <살륙의 법칙(the law of killing)>은 <종족을 위하여 개인들을 제거하고> <전체적 지배의 에센스>가 된다. 아렌트는 <테러는 자연 및 역사운동의 순종적 종복으로서 그 운동의 과정으로부터 특정한 자유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가질 수 있는 인간능력에 내재한 자유의 원천, 바로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3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장래에 관해서 어떤 명확한 에언도 회피하고 있다. 그는 <전체주의의 기원> 개정판 서문에서 <스탈린> 사후의 탈전체주의 과정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경찰제국의 붕괴> 현상을 지적하면서, 독일에서 <히틀러>의 사망으로 전체주의가 끝났으며 소련국민은 전체주의 지배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나 <1당 독재>로 들어섰다는 사실에 약간의 안도를 표하고 있기는 하다.
아렌트의 이 센세이셔널한 저서는 일각에서 신랄한 비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도대체 <전체주의>라는 술어 자체가 비교정치이론 발전의 흐름과 동떨어진 고전적인 용어이며 학문적 개념으로 취급될 수 없는 냉전적 개념의 소산이라든가, 러시아공산주의는 <적색 파시즘>으로 혼동될 수 없다는 비판은 그 중 가장 흔한 것이다.
그리고 전체주의의 기원을 19세기의 몇 가지 요인에서 찾고 있는 아렌트의 역사적 분석은 범슬라브주의와 스탈린주의, 그리고 범게르만주의와 나찌즘 사이의 있지도 않은 관련성을 억지로 입증하려는 허망한 현학적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으나, 한 가지 이런 비판이 놓치고 있는 점은 아렌트가 결코 전체주의 대두의 역사적 과정에 관한 완벽한 인과론적 설명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다만 역사사회학적 시각에서 사회의 <전체적 전환>을 실현하려는 <이 전대미문의 광적 환상>이 어떤 조건에서 <왜 당연한 것처럼 되었는가>를 밝히려 한 것임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그의 전체주의에 관한 분석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녔으며, 그의 이채로운 이론전개는 미국정치이론의 발전과 균형을 위한 자극과 윤기를 주었다. 우리 시대의 핵심적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어떤 <유행적 공식에 안이하게 의존하려는 이론적 타성과 범용에 강한 경종>을 울렸다. 그는 또 이 저서를 통해서 현대의 위기를 만든 인간의 <사악한 인성>을 고발함으로써 한 문명사가로서의 면모조차 드러내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그밖의 주요 저서 및 논문
<인간조건> The Human Condition, 1958
<과거와 미래의 중간> Between Past and Future, 1961
<혁명론> On Revolutions, 1963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1963
<암흑시대의 인간> Men in Dark Times, 1968
<폭력론> On Violence, 1970
<공화국의 위기> Crisis of the Republic, 1972

 

 

해설출처: 오늘의 사상 100인 100권(198-201쪽, 월간 <신동아> 1986년 1월호 부록)

 

해설: 김덕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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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선여갈 견악여롱  | 기본 2012.11.18 07: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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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비슷한 것은 가짜다
태학사 | 200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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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의 갈증을 시원히 해소해주는 책이다!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정민 교수님의 <비슷한 것은 가짜다>에는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책머리에"에서 정민 교수님은 <이 책에 실린 한 편 한 편의 글은 연암(1737-1805)과 만나 나눈 대화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라고 말씀하신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대화>일진대 그것을 또 하나의 다른 책으로 만들었다면 그 대화가 얼마나 절절했을까 싶다. 아마도 <연암은 가도가도 난공불락이다.>라고 말한 바로 그 뜻이리라.

 

연암은 예외를 인정치 않으려는 태도를 수긍하려 들지 않는다. 사실 '하늘의 이치'란 것도 '하나의 법칙'이란 것도 <인간이 지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 사물들은 살아 있다. 그것은 하나의 법칙으로 가둘 수가 없다. 하늘의 이름이 부르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달라지듯이(*주1), 사물의 질서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하나의 기호(symbol)는 하나의 진실만을 담고 있지 않다. 나는 그 기호를 통해 세상과 만난다. 기호와 기호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는 없다. 기호는 살아 있다. 코끼리는 살아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는 내내 연암의 <상기(象記)>를 에코(*주2)가 읽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언제나 세상은 실체(substance)는 간데없고 기호(symbol)만이 괴력을 발휘해 왔다. <기호가 말씀이 되고 권력이 되어> 살아 숨쉬는 사물의 생취(生趣)(*주3)를 억압해 왔다. 기호와 세계 사이의 불균형과 간극은 영원히 메워질 수 없는 것인가?

살펴본 대로 연암의 <상기(象記)>는 획일화된 가치 척도로 세계를 규정코자 하는 <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거부>의 뜻을 담아내고 있다. 우연히 열하 행궁에서 만난 코끼리를 앞에 두고, 인간의 사변적인 지식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만고불변의 진리란 것이 어째서 이토록 허망한가를 그는 생각하고 있다.(<비슷한 것은 가짜다>, 20쪽)

(*주1) 아아! 세간의 사물 가운데 겨우 털끝같이 미세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늘을 일컫지 않음이 없으나, 하늘이 어찌 일찍이 일일이 이름을 지었겠는가? 형체를 가지고 '천(天)'이라 하고, 성정을 가지고는 '건(乾)'이라 하며, 주재함을 가지고는 '제(帝)'라 하고, 묘용(妙用)을 가지고서는 '신(神)'이라 하며, 그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가지이고 일컬어 말하는 것도 몹시 제멋대로이다. 이에 이기(理氣)로써 화로와 풀무로 삼고, 펼쳐 베풂을 가지고 조물주라 여기니, 이것은 하늘 보기를 교묘한 장인(匠人)으로 보아 망치질하고 끌질하며, 도끼질과 자귀질 하기를 잠시도 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주역>에서 "하늘이 초매(草昧), 즉 혼돈을 만들었다.[天造草昧]"고 하였는데, 초매라는 것은 그 빛이 검고 그 모습은 흙비가 쏟아지는 듯하여, 비유하자면 장차 새벽이 오려고는 하나 아직 새벽은 되지 않은 때에 사람과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캄캄하여 흙비내리는 듯한 가운데에서 하늘이 만들었다는 것이 과연 어떤 물건인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하겠다.(연암 "象記" 11면)

(*주2)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장미는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존재해 왔으나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락한 이름뿐"

(*주3) 趣는 "취"인데 "뜻, 재미"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생취는 살아있는 의미, 살아있는 재미

 

<비슷한 것은 가짜다>의 "두번째 이야기"는 "까마귀의 날갯빛(菱洋詩集序)"(*주4)인데, 연암의 글은 이렇다.

 

통달한 사람은 괴이한 바가 없지만 속인은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이른바 본 것이 적고 보니 괴이한 것도 많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통달한 사람이라 해서 어찌 사물마다 눈으로 직접 보았겠는가?

하나를 들으면 눈 앞에 열 가지가 떠오르고, 열 가지를 보면 마음에서 백 가지가 베풀어져, 천 가지 괴이함과 만 가지 기이함이 도로 사물에 부딪쳐서 자기와는 상관함이 없다. 때문에 마음은 한가로워 여유가 있고 응수함이 다함(끝)이 없다.

그러나 본 바가 적은 자는 백로를 보고서 까마귀를 비웃고, 오리를 보고서 학을 위태롭게 여긴다. 사물은 절로 괴이할 것이 없건만 자기가 공연히 화를 내고, 한 가지만 같지 않아도 온통 만물을 의심한다.

아! 저 까마귀를 보면 깃털이 그보다 검은 것은 없다. 그러다가 홀연 유금(乳金) 빛으로 무리지고, 다시 석록(石綠) 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비치면 자줏빛이 떠오르고, 눈이 어른어른하더니 비췻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해도 괜찮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또한 괜찮을 것이다. 저가 본디 정해진 빛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린다. 어찌 그 눈으로 정하는 것뿐이리오. 보지 않고도 그 마음으로 미리 정해 버린다.

아! 까마귀를 검은 빛에 가둔 것도 충분한데, 다시금 까마귀를 가지고서 천하의 온갖 빛깔에다 가두었구나. 까마귀가 과연 검기는 검다. 그러나 누가 다시 이른바 푸르고 붉은 것이 그 빛깔(色) 가운데 깃든 빛(光)인 줄을 알겠는가? 검은 것(黑)을 일러 어둡다(闇)고 하는 자는 단지 까마귀를 알지 못하는 것일 뿐 아니라 검은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물은 검기(玄) 때문에 능히 비출 수가 있고, 칠(漆)은 검은(黑) 까닭에 능히 거울이 될 수가 있다. 이런 까닭에 <빛깔>이 있는 것치고 <빛>이 있지 않는 것이 없고, 형상(形) 있는 것에 태(態)가 없는 것은 없다.(연암, "菱洋詩集序", 23면)

(*주4) 능양시집서: 이처럼 序가 붙은 제목은 대개 다른 사람이 지은 책에 써준 서문을 뜻한다. 그러므로 앞의 "능양"은 누군가의 호(號)일 것이다.

 

이와 관련된, 정민 교수님의 현대적인 설명은 이렇다.

한 스킨 스쿠버가 깊은 바다에서 작살로 물고기를 잡았는데 그 피가 초록빛이었다. 하도 신기해 자랑하려고 서둘러 물 위로 올라오니 그저 보통의 붉은 피였다. 햇빛의 장난에 깜빡 속은 것이리라. 물고기의 피는 붉은 색인가? 아니면 초록색인가?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는 언제나 불변인가? 변화하는 것은 진리가 아닌가? 피는 붉다. 까마귀는 더럽다. 속인은 모든 판단을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기에 깊은 바다 속에서 초록색으로 보이는 피의 빛깔이 신기하고, 검은 빛 속에 언뜻언뜻 떠오르는 석록빛을 인정할 수가 없다. 까마귀는 저대로 자유로운데 공연히 제가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른다. 온 세상 사람들을 해오라비로 만들어야만 제 사명이 다할 줄로 생각한다. 그래서 남을 못살게 굴고, 비난하고 강요한다.(<비슷한 것은 가짜다>, 28쪽)

 

일전에 정민 교수님께 <문체반정>에 관해서, <연암 문체>의 의의에 관해서 여쭤본 적이 있다. 교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공부를 더 하십시오."라고 하셨다. 정말 교수님 말씀대로 <한 마디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내가 감히 주제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여기에다가 연암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을 써보라고 하면, 아무도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것이 문제(?)겠으나, 분량으로만 따지자면 정말 나도 <책 한 권>을 내야 마땅하다.

우리는, 아니 나는 연암을 국어 교과서나 국사 교과서의 <몇 줄>로 배운게 전부다. <허생전> 등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연암의 면모를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협소한 공부였던 것이다--설사 그것이 비전공의 학생이라 하더라도. 굳이 비유를 하자면 <논어>나 <맹자>를 높이 받드는 유학자가 <장자>를 읽었을 때 받는 느낌을 빼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연암의 글은 단지 <문학적인> 차원에만 가둘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하다. 정민 교수님께서 책의 끝에다가 연암의 원문을 붙여놓았기 때문에 <비슷한 것이 가짜다>는 연암을 직접 만나보는 책으로서도, 좀 더 심화된 공부를 바라는 사람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다.

 

독일의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헤벨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폐단은 뭔가를 배우지 않은 멍청이는 이제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h89)
사람을 알고자 하면, 그 사람이 하는 변명의 이유를 연구하라.(h89)

역시 독일의 물리학자 게오르그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고, 유행에 따라 산다>(h83)고 했다.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은 <진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숙해야만 효과가 있다>(h68)라고 했고, 카를 하인리히 바거를은 <반쪽의 진리는 완전한 진리의 절반이 결코 아니다>(h68)라고 했다.

에드워드 머로우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자신의 편견만을 뒤지고 있으면서도 자기가 생각하고 있다고 믿는다>(h62)라고 일침을 놓는다. 윌리엄 제임스는 <현명해지는 기술은 무엇을 무시하고 가야할지 아는 기술이다>(h62)라고 조언한다. 아인슈타인은 <우리는 방법과 도구에 관해서는 예리한 안목이 있지만, 목표와 가치에 대해서는 안목이 없다>(h62, h282)고 했다.

<Scientific American>은 <참된 이해는 하나의 결과를 여러 각도에서 검증해 볼 때만 가능하다>(h117)고 썼다.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경제예측가의 가장 일반적인 자격은 그가 '미지의 사실을 아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이점은 옳건 그르건 간에 모든 예상들이 곧 잊혀진다는 것이다.>(h108)

<모두가 같은 생각일 때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곳에 없는 것이다.>(h410)라고 월터 리프만이 지적했다. 윈스턴 처칠은 <나는 내 스스로 조작한 통계만을 믿는다>(h406)라고 냉소했는데, 이 말의 뜻은 <모든 정치가, 행정가들이 통계를 조작한다>는 말이다. 테어도어 레빗은 <유능한 경영자는 다른 사람이 말하지 않는 것을 듣는 능력을 계발한다>(h382)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는 <언제나 말이 행동보다 대담하다>(h384)고 했다. 한스 쿠추스는 <모범이 된다는 것은 먼저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h372)라고 웅변했다. 한스 요나스는 <책임감있는 사람만이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 있다>(h371)고. 엘레오노라 두제는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위험하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h361) 서머셋 모옴은 <정직함은 아마도 가장 대담한 형식의 용감함일 것이다.>(h359)라고.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이유지, 할 수 없다는 것은 단지 핑계다.>(h333)-세네카. <우리는 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h328)-볼테르.

<이 세상에서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사람의 영향력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h313)-아인슈타인. <이미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려다가 가장 나쁜 잘못을 저지른다.>(h308)-장 파울. <하나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복잡한 계산이 필요하다면 그 일을 그만두어라.>(h303)-로버트 헬러.

<자수성가한 사람의 한 가지 잘못은 그가 자신을 키워준 사람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h288)-모리스 라파엘 코헨. <너는 진실과 평온 사이에서 선택할 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h288)-에머슨. <누구나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행위에서 그리고 생각에서. 그 두 가지 모두에서 이중생활을 한다는 것은 진실이다. 단지 일기장만을 믿어서는 안 된다.>(h284)-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정직함이란 부정직함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에 관한 문제이다.>(h245)-애드거 왓슨 하우. <스스로가 어떤 지적인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믿는 실용적인 사람들이 대개는 어떤 구태의연한 경제학자의 노예가 되어있다.>(h188)-존 메이너드 케인즈.

 

<견선여갈 견악여롱>은 <명심보감>에 나오는 구절이다. 見善如渴 見惡如聾이다. <착한 것을 보거든 마치 목마른 사람이 물을 본 것처럼 주저하지 말고, 악한 말을 듣거든 마치 귀먹은 것처럼 못들은 체하라>(이민수, 2003, 을유문화사, 18쪽)

 

견선여갈 견악여롱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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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져봅시다  | 기본 2012.11.17 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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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인 안전을 위하여 근본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유나 안전을 얻을 자격이 없다. - 벤자민 프랭클린(w272)

모든 것을 잃었는가? 그래도 당신에게는 미래가 남아있다. - Christian Nestell Bovee(w307)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 Ludwig Boerne(w317)

만일 우리에게 잘못이 없다면, 우리는 남의 잘못을 쳐다보며 기뻐하는 경향이 거의 없어질 것이다. - 프랑소아 드 라 로슈코프(w232)

나는 어떤 사람의 가슴에다 자발적으로 가시나무를 심은 적이 한 번도 없다. - 링컨(w225) (*나는 링컨보다는 훌륭하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수식어가 필요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남들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을 쉽게 해내는 사람은 인재요,
인재가 불가능하게 생각하는 것을 쉽게 해내는 사람은 천재다. - Henry F. Amiel(w66)

 

 

Invictus (1875)

William Ernest Henley /번역: 전민희 (소설가)

 

Out of the night that covers me,
Black as the Pit from pole to pole,
I thank whatever gods may be
For my unconquerable soul.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암흑
억누를 수 없는 내 영혼에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감사한다.

 

In the fell clutch of circumstance
I have not winced nor cried aloud.
Under the bludgeonings of chance
My head is bloody, but unbowed.

잔인한 환경의 마수에서
난 움츠리거나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내려치는 위험 속에서
내 머리는 피투성이지만 굽히지 않았다.

 

Beyond this place of wrath and tears
Looms but the Horror of the shade,
And yet the menace of the years
Finds, and shall find, me unafraid.

분노와 눈물의 이 땅을 넘어
어둠의 공포만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오랜 재앙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It matters not how strait the gate,
How charged with punishments the scroll.
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문이 얼마나 좁은지
아무리 많은 형벌이 날 기다릴지라도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

(번역 출처: http://blog.naver.com/yukari00/146372443)

 

 

#2
William Ernest Henley(1849~1903)는 12살 때 폐결핵의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1875년에 Invictus 시를 썼는데, 그 몇 년전 오른 쪽 다리마저 감염되어 의사로부터 절단해야만 생명을 부지할 수있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3년간의 끈질긴 치료 끝에 그 후 30여 년 가까이 더 살았다. 이 시에는 고통을 넘어선 자의 환희가 담겨있다.

Henley는 떡벌어진 어깨에 거구에다 목발을 짚고 다녔으나 항상 열정적이고 쾌활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친구였던 Robert Louis Stevenson이 쓴 소설 ‘보물섬’에 나오는 Long John Silver 선장의 캐릭터가 Henley를 role model로 삼았다고 한다.

Invictus는 27년 간 감옥살이했던 남아공의 흑인 지도자 Nelson Mandela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래서 그는 항상 이 시를 애송했다고 한다. 2009년도 제작 영화, Clint Eastwood 감독, Morgan Freeman과 Matt Damon 주연의 <Invictus>에서 Mandela가 남아공 대통령이 된 후  국가대표 럭비팀 주장을 불러 이 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1년 후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해 흑백화합의 물꼬를 터 달라는 간절한 부탁과 함께. 시인과 지도자가 공유했던 불굴의 정신은 당시 최약체로 평가받던 꼴찌 럭비팀을 일으켜 세우고, 1995년 럭비 월드컵 결승전에서 역대 최강팀 New Zealand를 꺽는 이변을 연출해 냈다.

(#2 출처: http://blog.naver.com/yoyobee/30081653749)

 

 

#3
"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일천년으로도 부족하지만,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단 한 시간으로도 족하다." - 시인 바이런

전민희님이 만든 시벨린과 나야트레이라는 캐릭터의 좌우명이 생각난다.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는 최악이 아니다."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

(#3 출처: http://blog.naver.com/greydesert/100053740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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