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난 소녀와 아빠, 그리고 여정이란 말에 오래 전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거리를 걸으며 내가 아버지에게 '길은 참 이상한 것 같다. 곧바로 가는 것 같은데 휘어져 있기도 하고 돌아가는 것 같았는데 반대로 가는 길도 있는 듯하다.'는 말을 하자 아버지 왈.
길은 길 자체가 아니라 방향을 보고 걷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야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당시에는 감탄사 하나로 지나쳤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시간이 지날수록 떠올릴 때마다 나에게 알려주는 바가 컸다. 이래서 어린이와 달리 '어른'이라고 부르는 구나, 생각했다.
오랜 세월 땅에 뿌리박고 자란 나무가 거센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거나 뽑히지 않는 것처럼 살아온 시간만큼 어른이 되면 내적으로 강건해지고 흔들림 없으며 두려움 없이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릴 지혜가 생길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웬걸.
어른이 되어도 지금의 나는 어린 날의 나와 별반 다를 게 하나 없고 여전히 겁많고 힘든 일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때론 어릴 적보다 더 어리게 행동하는 자신을 더 많이 만나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산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원래 이런 것이었는 지도 모르겠다라고.
마냥 강할 것만 같던 어른들의 약함을 대면하면서 새롭게 성장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
부활절 방학. 12살 밀라는 아빠 길과 같이 실종된 그의 친구 메튜 아저씨를 찾아나선다. 밀라가 이 일에 함께 하게 된 건 그녀의 특별한 능력 때문이다.
상황과 사람, 공간을 읽고 정보를 수집해 조합하며 보통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실을 찾아내는 능력이 그것이다.
아빠 길과 함께 밀라는 메튜 아저씨가 실종되기 전의 상황을 듣고 그의 가족 분위기를 관찰하면서 그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추적해 나간다.
아이는 어느 시점에서 어른이 되는 걸까. 갑자기 될까. 아니면 천천히, 단계적으로 될까? 우주의 온갖 비밀이 드러나고, 어른스러움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와서 뇌세포를 영원히 바꿔버리는 나이가, 또는 그런 순간이 정해져 있을까? 아이였던 내가 어느날 슬그머니 빠져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걸까?
진짜 삶을 사는 것이, 내가 어른이 되늘 것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 전혀 있음 직하지 않은 변신이다.
...내가 어른이 되는 것이 그려지지 않는다. 지금의 나와 조금이라도 다른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늙었거나 결혼했거나 죽은 내가 그려지지 않는다.(p.173)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점은 언제일까. 밀라의 생각처럼 나 역시 어른이 된 나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이는 먹었는데 어른이 되기는 한 건지 되고는 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옷감처럼 모두가 하나로 엮여 있고, 좋든 싫든 우리는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밀라의 깨달음처럼 아이가 어른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 아이를 도맡아 키우고만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서로 같이 공존하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는 자라면서, 어른은 늙어가면서.
나는 길에게 기댄다. 우리가 얼마나 단단히 묶여 있는지 아니까.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마리에카의 말이 맞다. 길과 나는 살아 있는 한 서로를 보살필 거다. 그리고 마리에카가 우리 둘을 보살펴줄 거다. 각기 능력껏 서로를 보살필 거다.(p.247)
여태 만난 청소년 성장 소설과는 조금 색다른 차원의, 추리소설의 맛도 나는 그런 글을 만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