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살 땐 항상 여러권을 한 번에 산다. 그리고는 책상 옆에 쌓아놓고 생각날 때 아무거나 손에 쥐고 읽어간다. 그래서 책상엔 항상 책이 수북하다. 안읽은 책들이.
그렇게 책을 살 때 꼭 여행기를 한 권씩 산다.
고를 때는 주로 작가의 직업을 많이 따지는데, 가령, 사진가가 쓴 여행기, 음악가가 쓴 여행기, 건축가가 쓴 여행기 등등... 
읽다보면 익숙한 지명에 전문적인 지식이 잘 버무려진 글 속에서 안다고 생각되던 곳도 새롭게 느껴진다.

이 책을 쓴 연구대상님의 직업은. 모름. 그런데 왜 이 책을 나오기 전부터 기대했냐고?
연구대상님의 블로그를 가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이런 사람이 여행을 했다는데 안궁금할 수가.
책이 블로그의 부록처럼 느껴지지만, ' 책 + 블로그 = 제대로된 연구대상님의 매력' 쯤 될듯.

다 그런건 아니지만 어떤 여행기를 읽다보면 함께 돌아다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여자인 작가가 되어서 그 눈으로 보기도 하고,
낯선 사람에게 말 거는 부담감을 심하게 느끼는 성격이니까
책 속에서 활달하게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한 두 페이지도 건너기 전에 꼬박꼬박 등장하는 작가의 혼잣말 덕분에 내가 그렇게 말하는듯? 아니면, 나랑 이야기하며 지금 같이 다니고 있는듯?한 느낌을 계속 받는다.

그래서일까? 책을 펴고 잠깐 앉았는데 순식간에 1/3을 읽어버렸다.

찍고 돌고 찍고 돌다 끝났던 내 유럽 여행에 비하면, 참 많은 장소를 참 많은 사람들로 기억하고 있구나 싶다. 또 내가 그 장소에 가도, 책 속의 그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이 오래된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 지금 그 곳에 숨쉬고 살아있는,
조금 허술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만드는 가벼운 연애(?)담이 즐겁고, 길잃고 헤매는 순간 나타난 의심스러운 납치범(?)처럼 보이는 친절한 사람의 도움에 가슴 쓸어내리고,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끼리 낯선 도시를 떠돌며 나누는 이야기가 그립다. 게다가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고 꼬박꼬박 나오는 자뻑-말투는 정말 발로 엉덩이를 쑥~ 밀어버리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 터키에 뼈를 묻어야하나.... ㅡㅡ;; 뭐 싫다는건 아니고,

 

읽다보니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다. 크로아티아, 사라예보.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에 그 근처를 돌아다녔더니 아직도 좀 무서운 느낌이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곳으로 보였다. 게다가 평화롭고.

 

혼자다니는 여행의 매력을 너무 느꼈나보다. 다음 여행은 집사람과 따로 가고 싶어졌다. 같이 가도 내가 짐꾼이지, 뭐.

 

그렇게 시트콤 50일치가 끝나며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탄다. 50일이었지만 500일처럼 다채롭던 날들 덕분에 며칠 동안 참 즐거웠다. 마치 내 여행이 끝난 듯 아쉽다. 그리고 에필로그 뒤에 붙은 사족은, 음. 듬성듬성보다가 덮어버렸다. 300페이지가 넘는 시트콤여행기를 즐겁게 읽었는데, 그 맛에는 맞지 않는 엉뚱한 후식을 입에 댄 느낌.

 

연구대상님이 계속 여행을 하고 있고, 어투도 전혀 바뀌지 않고 있는데다가, 여전히, 변함없이 명랑소녀의 성격을 쭉 유지할 듯 하니, 또 여행기가 나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본다.

	주인아저씨, 영어가 서툴다며 나더러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챠오!"라고 한마디, 건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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