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이 없을 때, 가끔 생각해본다. 미래에는 식사대용으로 가능한 알약 한 알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쉬울 것이다. 점심시간, 저녁시간을 목표로 뿌듯하게 일과를 채워나가는 대신, 밥먹을 시간에도 일 혹은 자기계발에 매달려야 할테니까.... 그래도 이 책 속에 나오는 알약같은 건 꿈꿔보지 않았다. 뇌의 기능을 100%로 끌어올려주는 약이라니.... 내가 생각해낸 건 고작, 머리에 대기만 하면 공부량을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기계쯤이었다. 그러면, 시험날 실수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라는 요소가 전혀 사라지는 시험이 좋기만 할 지 고민해보곤 했었다. 어디까지나, 이런 기계가 만들어진다면, 이라는 가정하에서 필요한 고민이겠지만....^^;;;

 

    당신은 우연히 알약 한 알을 먹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당신 앞에 놓인 일거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정리가 착착 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던, 그 골치덩어리 일들이 말이다.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은 1시간이면 읽고 이해하고 어떤 용도로 사용해야 하는지까지 정리가 되었다. 또다시 1시간 후 이미 당신은 보고서의 초안까지 완성했다. 그러고서 휙~ 둘러본 집안. 돼지우리같던 집도 도저히 봐줄 수 없다고 머릿속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당신은 안하던 청소를 하고, 책장의 책들을 작가순 혹은 제목의 ㄱㄴ순서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몸은 피곤하다고 신호를 보내왔지만 뇌는 씻고 자야한다고 당신을 막아선다. 싸움의 승자는 알약먹은 뇌였다. 당신은 씻고 누웠지만 잠들지 못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리미트리스』의 주인공 에디 스피놀라가 그랬다. 이 책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며 지난 일을 회상하는 에디 스피놀라의 독백톤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다. 새로 맡은 일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한 마음에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섰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버넌 갠트를 만나게 된다. 버넌 갠트는 에디의 예전 아내의 오빠, 한마디로 전 처남이다. 버넌에게 받은 한 알의 알약을 무심결에 먹은 순간, 바로 앞에서 말한 일들이 에디에게 일어났다. 에디는 약을 좀 더 구하기 위해 버넌을 찾아갔다가, 버넌의 죽음을 목격하고 버넌의 집에서 500알쯤 되는 알약과 돈뭉치를 발견한다. 한알 두알 먹으며 서서히 약에 중독되어가는 에디. 에디는 출판사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 활성화된 뇌를 이용할만한 커다란 일을 추진하는데.... 알약을 먹으며 서서히 손안에 부와 명예를 잡게 되는 동시에, 에디는 기억끊김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 일에 대가가 따른다는 뜻일까?

 

    공부잘하는 옆 친구를 주의깊게 잘 살펴봐라. 도저히 시간내에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내는 직장 동료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미 약MDT-48의 단골고객인지도 모른다....

 

    ....지만.... 그냥 난 뇌에게 조금의 여유를 주며 살고 있다 위안하며 살겠다.^^

 

    깔끔했던 스토리가 반전으로 인해 뒤엉켜버렸지만, 역시 반전은 있어야 제 맛 아니겠는가. '일개' 개인의 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반전이었다. 아, 영화가 국내상영이 안된 것 같던데- 볼 방법이 없나.

 

+글귀의 출처는 『리미트리스』(스크린셀러, 2011, 초판1쇄)이고,
본 포스팅의 글귀와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래의 저작권은 저작자(출판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나는 시리즈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영화 시리즈물은 꺼리는 편이다. 다음편을 위해 던져놓은 감독의 떡밥이, 영화관 의자에서 일어나는 나의 뒷맛을 찜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책이나 소설책의 경우는 참는다. 완결이 날때까지, 꾹~~~~. 하지만, 영화는 완결때까지 참는다는 선택에 따르는 기회비용에 '커다란 스크린의 맛'이 포함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시리즈물은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고 피해다니는 편이다.

 

    이런 이유로, 그 유명하다는 007시리즈를 내가 영화관에서 본 건, <카지노 로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아니나 다를까, (내 짧은 기억력이 정확하다면) 감독은 마지막에 본드를 물속에서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게 만들어 나의 뒷맛을 개운치 못하게 만들었다. 윽, 역시 시리즈물이야. 그런데, 어라? 007이 소설이 원작이었다고? 게다가 <카지노 로얄>은 원작 출간연도가 1952년이라니.... 그런 007시리즈가 국내에서 번역되어 나왔다. 충분히 짐작 가능하겠지만, 나는 007 팬이어서 이 소설에 흥미를 갖게 된 건 아니다.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건, '제프리 디버', 바로 그였다.

    꺄~~ 아무리 봐도, 위에 쓴 말은 대~충 읽히는데, 저 사인이 어디를 봐서 '제프리 디버'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사인이니 이름을 쓰긴 썼을 텐데...흠흠...^^;;) 그가 007시리즈의 다음 책을 맡게 되었다.

 

    영화도 시리즈 중 딱 한 편, 책도 지금 내 앞에 놓인 『카르트 블랑슈』달랑 한권만 읽은 나로서는, 007시리즈의 이야기가 이어지긴 하는건지, 아니면 (비긴즈니 뭐니 하며) 왔다갔다 하는 건지조차 알 수 없지만, 무튼 이 책으로봐서는 이 책한권만으로 독립적인 한편의 이야기가 이루어진다. 이야기는 세르비아에서 출발한다. 세르비아 철도 위를 달리는 한 대의 디젤기관차. 첫장부터 읽는 사람에게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하며, 덜컹거리는 기관차는 속도를 높이고.... 곧이은 본드의 등장. 본부에 입수된 극비정보의 한조각만으로 세르비아에 파견된 본드는 자신이 짜놓은 계획에서 미묘하게 사건이 빗나가는 것을 느낀다.

 

    세르비아에서 자신에게 총을 겨눈 상대를 놓치고, 돌아온 영국. 그 상대가 영국에 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이곳은 영국. 본드에게는 외국에서와 달리 본국에서는 카르트 블랑슈, 즉 백지위임장이 없다. 즉, 모든 결정은 오스본-스미스의 협조하에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와는 이미 목표자체가 어긋나버린 사이. 오스본-스미스를 따돌리며, 버려진 듯한 증거조각들을 맞추어보면 볼수록 사건은 점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쓰레기처리 회사와 다량의 시체가 영국의 이해와 무슨 관계란걸까. 본드가 쫒는 하이트와 니얼 던이 두바이로 향하게 되면서 사건의 방향은 더 알 수 없어지고, 본드는 드디어 다시금 카르트 블랑슈를 획득하게 되는데.... 그에겐 어떤 선택권이 있을까? 그리고 하이트의 재활용회사와 다량의 시체가 도대체 영국의 이해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 걸까?

 

    제프리 디버의 추리소설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이 책은 신선함을 느끼게 해주었지만, 자동차와 와인 그리고 영국 정보기관들에 대한 정보가 없는 나에겐, 책 속 쏟아지는 자동차와 와인에 대한 이야기들과 잊혀질 듯하면 한번씩 터져나오는 기관들의 약자들이 부담스럽긴 했다. 아무래도 범죄수사현장의 기법들이 내겐 더 흥미로웠다랄까. 그래도 영화화되면 꼭 봐야겠다. 디버의 글이 화면으로 옮겨진 모습은 확인하고 싶다. 물론, 디버가 그린 30대 초반 본드를.... 다니엘 크레이그가 재현할 수 있다면 말이다.

 

+글귀의 출처는 『카르트 블랑슈』(뿔, 2011, 초판1쇄)이고,
본 포스팅의 글귀와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래의 저작권은 저작자(출판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처음엔 단순했다. '시집가거든 책장 더 사라'는 엄마의 말과 반대로 매달 꼬박꼬박 책은 늘어만 나니, 가만히 책장에 꽂아 두느니 이곳저곳 보내기로 했다. 지하철 역사, 아름다운 가게, 카페 나눔 .... 그러다 보니 습관이 되어 이제는 나눔의 날짜부터 정한다. 아예 다이어리에 표시해 놓는 것이다. 나눔하는 날! 이 정도면 나 스스로를 위한 나눔이 된 것이다. 여기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

 

    노리코는 쓸모없어진 접이식 피크닉 테이블의 처분을 고민하다가 동생의 지나가는 말에 인터넷 경매를 시작한다. 그런데 어라? 이거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얼굴도 모르는 구매자의 기분좋은 판매자평가에 자신의 가치가 진짜로 별 다섯 개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제 팔 물건을 찾아 집안을 뒤지기 시작한 노리코. 인터넷 경매 평이 좋으니 생활에도 적극적이고, (놀라지 마시라~) 주름살도 없어졌다. " 더 필요해. 팔 물건이... 내 주름살을 줄일 무언가가...." - 「Sunny Day」

 

    오쿠다 히데오의 『오 해피데이』엔 여섯 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평범하면서도 사람의 욕망을 딱, 한 꺼풀만 벗긴 오쿠다 히데오의 글에 공감하고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14년 근무한 회사가 망해서 아내 대신 살림을 하게 된 슈스케. 왠지 편하고 몸에 딱 맞는 느낌이, 타고난 주부 체질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주위에서는 자신을 그렇게 불쌍하게 볼까. - 「여기가 청산」

 

    생각없이 사업 벌이기 좋아하는 에이치 때문에 아내 하루오는 항상 노심초사다. 이번에도 이미 저질러 놓은 후 아내에게 사업에 대해 털어놓는 에이치. 스트레스 더미에 끙끙대며 본인의 일인 일러스트를 그리던 아내 하루오는 불연듯, 남편이 사업을 벌여 불안불안 외줄타기 하는 기분일때마다 자신의 일러스트가 좋은 평을 받았다는 것 깨닫게 되는데.... 이게 웃어야 할 일인가, 울어야 할 일인걸까? - 「남편과 커튼」

 

    아내가 별거로 집을 비우자 텅 비어버린 집. 처음엔 그냥 대충 살림살이를 사서 집을 채우려던 마사하루는, 살림살이를 사러 돌아다니다가 어떤 충동에 이끌려 자신이 총각시절 꿈꾸던 집으로 집을 다시 꾸미기 시작하는데.... 남자들의 억눌린 로망이 그려진, 「우리집에 놀러 오렴」

 

    여섯 편에 등장하는 여섯 주인공 한명 한명의 행동과 느낌이 내게 찌릿찌릿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책 띠지에 적힌 아마존 재팬 독자 서평 중에, "아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라는 문장이 정말 내 느낌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나도 알 것 같다. 여섯 주인공들이 느낀, 그 느낌을....^^ 

 

+글귀의 출처는 『오 해피데이』(재인, 2010, 초판6쇄)이고,
본 포스팅의 글귀와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래의 저작권은 저작자(출판사)에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