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박찬운 교수는 한댱대 법학과 교수다. 그가 고흐를 소개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 인권법 교수와 친구들의 반 고흐 그림 이야기'. 이때의 친구들은 페이스북 친구들. 책의 각 꼭지 끝에서 저자의 그림에 대한 페이스북 친구들의 댓글이 실려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고흐를 만나고 그의 삶과 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SNS의 긍정적 기능이다.

- 때문에 아주 깊이 있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그림에 대한 입문서라 봐도 무방한 듯. 다만 웬만한 열정이 아니면 결코 쓸 수 없는 글임은 분명하다.

- 매일 새벽 페이스북에 올린 글들을 갈무리해서 만든 책이다.(그래서 제목에 새벽을 깨우다란 표현이 들어간 듯...) 페이스북이란 매체 자체가 불특정 다수를 향한 글이기에 아무래도 쉽고 흥미를 끌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 기본요소를 충실히 반영한다.

-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화가가 빈센트 반 고흐가 아닐까?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를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 머리말을 참고하면 이 책은 고흐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철학), 어디서 그림을 그렸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다. 예술과 예술가의 삶은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고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 작품일 것이다. 그리고 고흐의 그림은 파리, 아르, 오베르로 장소가 이동하면서 화풍이 변했으니...

- 책은 전체 39개의 꼭지로 구성되었다. 각 꼭지별로 띄엄띄엄 읽어도 되고 단숨에 읽어도 무방하다. 굳이 추천한다면 천천히, 여유롭게 읽는 것이 나을 듯.

- 고흐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리고 고흐 그림에 대한 기존 해석의 반박이나 개인적 해석을 덧붙이기도 해서 글읽는 재미와 그림을 보는 또다른 시선을 느낄 수가 있다.

- 덧붙여서 책에서 소개하는 고흐의 그림과 관련되는 시나 노래,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책의 앞부분보다 뒷부분이 더 좋다. 길이의 차이다. 뒤로 갈수록 내용이 풍부해지고 사유의 폭도 넓어진다.

- 꼭지별 내용이 상이하기 때문에 글 전체를 소개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고흐에 대한 얕은 지식이 있다면 자신의 지식을 다시 확인하고 심화, 보충하는 과정의 글읽기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면서 고흐의 삶과 철학을 다시금 느끼고...

- 개인적으론 무엇보다 고흐의 고독한 삶에 대한 연민이 다시금 느껴졌다. 평생을 홀로 살면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가족(특히 아버지)의 뜻과는 다른 삶을 살면서 가족 간의 화목도 누리지 못했으며 자신의 삶과 그림에 대한 주변의 폭넓은 관심을 받지도 못했던 그.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강렬했기에 자신의 삶과 철학, 정서를 그림으로 오롯이 표현한 그에게 경외의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

- 그런 고흐의 곁을 내내 지켰던 동생 테오의 헌신도 다시 느끼고 의사 가셰, 탕기 영감, 우체부 룰랭과의 관계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만나고 헤어졌던 케이 보스, 시엔, 아고스티나 등을 만날 수 있다. 또한 밀밭, 사이프러스, 해바라기, 별과 밤 등의 소재가 그의 그림에 왜 빈번하게 등장했는지도 알게 해 준다. 여러모로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종합안내서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책이다.

- 무엇보다 책이 쉽다. 페이스북이라는 열린 공간이고 저자가 미술전공자가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흐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무척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4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독파할 수 있다.

- 책을 읽고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프랑스의 아를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강렬하다. 아마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럴 듯...

-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삶과 작품과 생각의 파편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가장 애정하는 화가를 다룬 책이기에 더 좋았다. 또한 내가 미처 알지 못하던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여러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좋았고...

- 누구나 쉽게 재미있게 읽을 책이지만 빈센트 반 고흐를 사랑하는 이들이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골든 아워 2권입니다. 아무래도 책 리뷰는 시간이 많이 걸리다보니 정리하기가 힘드네요.

 

1권에서 어느 정도 얘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부수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정경원에게'

책의 속지에 적혀 있는 문구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이국종 교수도 대단하지만 그의 밑에서 모진 고생을 말없이 감내하고 오직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안정적이고 다소 편한 자리를 마다하고 이국종 교수를 지키는 정경원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부와 명예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자신을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만을 살아갑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따뜻한 가정을 이루었고 그 사랑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합니다. 그런 그를 내내 지켜봤던 이국종 교수는 언제나 마음 가득 미안함만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내가 언제든 이 자리를 떠날 때 정경원이 무리없이 이후를 진행하도록 그 토대를 마련하겠노라고... 자신의 어깨, 눈이 망가지는 와중에도 결코 외상센터를 떠날 수 없는 이유입니다.

 

2권에서는 가슴깊이 새겨진, 아물 수 없는 상처 세월호의 아픔이 나옵니다.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이국종 교수는 헬기를 타고 진도로 날아갑니다. 그런데 구조활동으로 정신없어야 할 그 장소가 지나치게 한가합니다. 어느 누구도 영문을 알 수 없고 어느 누구도 현장을 통제, 통솔하지 않습니다. 기껏 헬기까지 타고간 참사의 현장에서 이국종 교수팀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결국 상태가 많이 안좋은 노인분만을 헬기에 태우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옵니다. 국내의 구조활동을 막은 것은지 아니면 상황대처를 못한 것인지 아직도 명확히 드러난 건 없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미국의 특수헬리콥터의 사고해역 진입과 구조활동을 막았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강한 의심이 듭니다. 과연 박근혜 정부의 어떤 누구 세월호의 아픔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는 날은 오기나 할까요? 5년이 다 된 지금에도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이들과 그들을 가슴에 묻은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우리 역시 결코 그날의 아픔과 상처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은 살짝 다르지만 본문에 눈길을 끄는 문장이 있습니다.

'여러 제도적 측면과 사회적 자본 활용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경제주체 간 신뢰를 쌓아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다.'(228쪽) 한양대 경제학부 하준경 교수의 말입니다. 경제적 이익 앞에서 주체 간의 신뢰 상실을 이야기합니다. 서로 간의 신뢰감이 구축될 때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것이고, 합리적 해결 방안의 도출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근시안적인, 단기간의 성과만을 중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지극히 뻔한 경제논리이고요. 1권 포스팅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그런 경제 논리 하에서 중증외상센터는 존립의 근거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결국 사회의 지배층은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세력의 논리에 의해 각종 정책과 시스템을 유지하지 사회적 약자, 비주류의 논리에 좌우되는 일이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오는 정책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리도 없습니다.

'이런 현실과는 정반대로 새 정부는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각종 정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외상센터에도 영향을 미쳤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들의 업무 공백을 메워주는 전담간호사들의 근무시간도 주 52시간으로 묶여버렸다. 증원은 없으면서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기상천외한 정책. 이것은 센터 운영에 엄청난 타격이었다. 나는 세상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돌아가야 간신히 유지될 수 있는 내 처지에 구역질이 올라왔다.'(291쪽)

 

그럼에도 이국종 교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헬리콥터는 바람과 함께 주위 모든 것들을 깎아내며 그 반동으로 솟아오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고정익 기체와 달리 글라이더 비행이 불가하므로 힘들어도 버텨서 항력을 얻지 못하면 곧장 추락한다. 어쩌면 나도 중증외상센터도 헬리콥터가 바람을 깎아 나아가듯 내 동료들을 깎아가며 여기까지 밀어붙여왔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고 힘들어도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았다.'(304쪽) 사람을 살리는 것... 오직 그것 하나만 생각하기에 정치도 경제도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았기에 그가 걸어온 길은 가시밭길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이 끝나는 날이 오더라도 '산 날들이 대개 온전하지 않았으므로 그 사실도 그렇게 나쁘지 않'(305쪽)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이렇게 중증외상센터에서 젊은 날부터 지금까지 거의 전 생애를 바친, 한 남자이자 의사의 절절한 자기고백이자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그저 담담히 자신의 길을 걷는 인간의 발자취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헌신과 노력에 절로 고개를 숙일 뿐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중증외상센터는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언제 없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선진국의 표준화된 중증외상센터의 건립과 운영을 간절히 바라는 이국종 교수는 참으로 착잡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려 합니다. '어디로,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답이 없는 물음 끝에 정경원이 서 있었다. 하는 데까지 한다. 가는 데까지 간다...... 나는 정경원이 서 있는 한 버텨갈 것이다.'(319쪽) 눈물이 왈칵 어렸습니다. 이렇게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인간이 있다는데 감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에게 그 어떤 부와 명예가 중요할까요? 정치와 경제가 중요할까요? 사실 이국종 교수는 꽤나 이름이 알려진, 저명한 교수입니다. 그런 그가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또다른 중증외상센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이들은 또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암담하기만 합니다.

 

책의 마지막에 이국종 교수와 중증외상센터의 건립과 운영에 도움을 준 이들의 인물지가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하면서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 그들의 노력과 헌신에 감사하는 마음 뿐입니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책을 읽으며 느낀 감동과 안타까움의 10분의 1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이국종 교수팀의 헌신과 노력, 그들이 겪었을 절망과 좌절은 터럭만큼도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신이 직접 읽고 느껴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하게 일독을 권합니다.

사실 선뜻 당기지 않는 책이었습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지만 단순한 에세이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 안 읽었으면... 이 책의 가치를, 이국종 교수의 헌신을, 우리나라 의료체계 특히 중증외상센터의 난맥상을 1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도 가슴아프고 가치있는 책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목인 골든 아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시간 1시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환자를 병원까지 이송하는 시간은 245분. 수많은 생명이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여기서부터 이 책은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권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저자가 아주대병원의 중증외상센터에서 경험하고 느낀 일들이 펼쳐집니다.

 

저자는 2002년 지도교수의 권유로 외상외과에서 근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척박한 의료 현실에 절망하고 국제 표준의 중증외상 시스템을 정착하기 위한 저자의 고군분투가 절절하게, 하지만 극사실적으로 표현됩니다. 그의 이런 노력의 바탕은 미국과 영국의 외상센터의 연수과정에서 외상센터의 표준화, 시스템의 효율화를 통해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제 중증외상 환자들이 겪는 처참한 고통과, 죽어가는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집중하는 이사, 간호사, 응급구조사, 읠료기사 등의 의료인들 및 소방대원들의 분투를 정확히 표현하고 싶었다.'(11쪽)고 합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의 의도는 정확하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을 때로는 담담한 어조로 때로는 비탄과 비판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그저 가슴이 먹먹할 따름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김훈 선생의 글(특히 '칼의 노래')을 등뼈 삼아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글을 읽다보면 정말 김훈 선생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구절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서늘하면서도 사실적인 문체, 극도의 짧은 문장. 아래와 같은 문장들에서 그 특성이 그대로 보입니다.

 

'사는 것의 지리멸렬함이 지겹고 지난했다. 환자들이 쏟는 핏물이 나를 완전히 삼켜 버리기를 바랐다. 내 삶에 대한 의지는 소멸에 가까웠다. 그저 나는 관성적으로 살아있었을 뿐이다.'(258쪽)

 

'핏물을 거두자 청년의 얼굴이 보였다. 훈련으로 검게 그을린 얼굴에 생기가 없었다. 누구의 아들일 것인가. 뭍에서 시신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들을 생각했다. 자꾸만 눈물이 솟았다. 낡은 고속정 특유의 디젤엔진에서 선체로 전달되어 올라오는 진동이 엉덩이를 타고 척추를 따라 머리까지 전달되었다. 두개골 속이 덜그덕거리며 흔들거렸다.'-(300쪽)

 

'함박눈이 내려 길 위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눈 밟히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내 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설빙이 바스라지며 토해내는 울음 같기도 했고, 얼음 결정들이 한데 엉겨붙는 외침 같기도 했다. 얼어붙은 흙냄새가 코끝을 스쳐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차갑고 청명한 공기가 코안으로 들어와 폐 속에 박혔다. 천천히 숨을 내뱉자 입김히 하얗게 흩어져 나갔다.'(310쪽)

 

문장들만 보면 김훈 선생의 글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정말 잘 정제된 글입니다. 작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 않나 하는, 개인적 생각입니다.

 

책을 읽으며 '칼의 노래'의 주인공 이순신을 생각합니다. 저는  '칼의 노래'의 가장 큰 미덕은 영웅 이순신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을 우리 곁에 불러왔다고 생각합니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은 끝없는 고난 속에서 인간적인 고뇌와 사색의 모습을 자주 보입니다. 주변의 질시와 무관심, 불가능할 것만 같은 부정적 현실, 하지만 백성을 생각하는 이타적 마음 등이 잘 드러납니다. 어쩌면 뜬금없고 전혀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골든 아워'의 이국종은 이순신과 오버랩됩니다.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 속에서 그는 외로웠지만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야 한다는 당위적 목표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피범벅된 가운과 피바다를 이룬 수술실에서 그는 오직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경주합니다. 그의 성과에 일부 찬탄이 있었지만 부정의 눈길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임금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순신이 끝내 나라와 백성을 버리지 못했듯, 국가와 주변의 지원을 받지 못해도 그는 환자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 속에서 외로움과 슬픔, 분노를 누르고 삶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 관점의 글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부정적 내용을 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속에서 만나는 이국종 교수의 모습은 정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한 그의 분투는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그 속에는 정치 논리도 경제 논리도 없습니다. 오직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모든 역량을 발휘해서 수술을 합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리고 그는 무수한 환자를 죽음의 경계에서 삶의 경계로 이끌어 냅니다. 병원은 적자의 원흉이라 지목하고 사회에서는 언론 플레이를 한다, 쉬운 수술을 어려운 것처럼 쇼한다 합니다. 그는 철저히 고립되고 외롭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전장의 한 가운데 있는 이순신이 그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중증외상센터... 사실 명칭을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기 전까지 명칭의 의미를, 이 명칭 속에 담겨진 사회적 함의를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중증외상을 입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만 해도 우리 사회 현실의 단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중증외상을 입는 환자들의 태반은 현장노동자일 것입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의 낮은 곳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이들이지요. 그들의 효율적이고 신속한 진료와 수술을 위해 필요한 중증외상센터... 과연 사회 기득권층의 관심은 어느 정도일까요? 여기에서부터 중증외상센터 건립의 지난함은 예견됩니다. 어떤 누구도 선뜻 나서려 하지 않고 관심도 두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 외상센터를 주류 병원도 아닌 비주류병원의 의사가 나서서 건립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각종 수술장비와 혈액과 수액 등을 아낌없이 쏟아붓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수술에 들어간 비용 중 극히 일부만 인정합니다. 중증 외상을 입은 환자의 수술은 한 곳만 하는 경우가 없을 터인데 심평원은 오직 한 곳의 수술에만 보험을 적용합니다. 결국 손실은 고스란히 병원의 몫이 되고 이국종 교수 팀은 고스란히 병원 적자의 원흉이 되고 맙니다.

 

보편적 복지... 몇 년 전부터 회자되는 말입니다. 그 보편적 복지는 차별이 아닌 평등에 바탕을 두고 실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 지라도) 보편적 의료가 시행되어야 할 것이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중증 외상 센터는 사회적 관심 아래서 보편적으로 건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외상센터는 석해균 선장의 수술 성공으로 인해 들불같이 논의가 일어났다가 잠잠해지면서 한참이 지난 후 우여곡절끝에 탄생합니다. 전 국민적 관심 속에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의 필요성이 확대되지만 그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의 후진성이 책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결국 누구나가 누려야할 의료복지는 아직은 요원한 이야기입니다. 경제적 논리가 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중증 외상센터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1권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내용이 아덴만 여명작전입니다. 먼 타지에서 석해균 선장을 항공편을 이용해서 국내로 송환하고 어려운 수술과 지난한 회복의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명을 구하려는 저자의 무모한 용기와 시도,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국가기관의 추태와 명령하복, 단계를 밟아야만 하는 관료제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수술 성공 이후 냄비끓듯 일어났던 국가 의료체계에 대한 관심과 여론몰이, 정치인들의 뻔뻔함 등은 부가적 요소입니다. 이런 소용돌이 어디에도 사회적 약자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의사행위는 없습니다. 한 사건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국종 교수의 용기와 실망, 외로움만이 오롯이 남습니다.

 

읽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짧은 문장으로 이어져 있으며 가독성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꼈던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성과 생동감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읽은 이후에는 저자에 대한 생각과 우리 사회의 의료 체계에 대한 생각이 넘쳐납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모두가 읽어봤으면 하는 강렬한 마음 가득입니다. 이 글을 보신다면 꼭 구매하셔서 읽어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