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그래도 세 개까지 준 건 내용 자체는 좋고 이 책 나름의 학문적 의의가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책 말고 '켈트 북구의 신들'이라고 일본사람이 지은 책이 있는데요 그 책을 먼저 읽은 후에 이 책은 서점에 직접 가서 책을 좀 훑어본 후에 취향이란 생각이 들면 사서 도전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뷰는 길지만 요약하면

내가 켈트 신화를 읽으려 했지 언제 켈트 신화학을 공부하겠다고 했냐.

번역이 정말 그렇다.

 

---------------------------------------------------------------------

 

켈트를 검색해서 나오는 책 중에서 책 소개글만 놓고 보면 이 책만한 건 또 없다.

켈트와 신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옛날 이야기에 대한 아련한 향수 등등 이 책을 산 사람은 아마 나와 같은 심정에 책을 골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책을 들어 <일러두기>와 <역자의 말>을 읽고 나면 내가 실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생각은 책 중반을 넘어가도록 가시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이라거나 여러 온라임 게임때문에 궁금증을 갖게 된 켈트 신화를 엿보고 싶다는 독자의 기대를 단칼로 잘라버리는 내용에 졸속한 번역이 아주 환상적으로 얽히고섥혀있다.

안 좋은 책이라는 말이 아니라 생각하던 책이 아니란 의미.

 

 

1. 내용

우선 책을 읽다보면 켈트 신화연구에서 독보적 존재라고 역자가 소개한 찰스 스콰이어의 여러 저서 중에서 역자나 출판사는 도대체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저자의 책 중 우리나라에 번역된 게 이 책 뿐일까. 번역자는 다른 책도 번역했을까? 신화나 역사를 전공한 사람일까? 아니면 적어도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일까?

짜증과 의문이 한꺼번에 물밀듯 밀려온다.

 

찰스 스콰이어의 책 중 우리말로 번역된 책은 이 책 한 권 뿐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도 책 표지에 있는 문구 그대로 최고의 고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고전이라는 단어 하나에 낚인 나 같은 사람을 겨냥한 책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고전은 고전이다. 영국과 웨일스쪽 역사 등등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한테는 반가운 책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반지의 제왕이니 판타지 문학이니 하는 화려한 단어를 표지에 넣어 독자를 낚은 사람들에게 뭐하자는 건가하고 물어보고 싶다.

우리나라에 켈트 신화가 제대로 알려진 게 없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싶다는 변에 비하면 너무 무책임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호랑이와 곰이 마늘을 먹고 100일을 버텼냐 마냐 하는 고조선 건국신화가 궁금해서 '고조선 건국신화'란 책을 사서 읽었는데 이거 웬일?

웅녀 얘기는 나올듯 말듯 여기저기에서 웅녀가 나왔다 곰이 나왔다 하는데

아까 그 웅녀가 원래 곰이었고 아깐 말 안 했는데 곰은 사실 처음에 호랑이와 같이 동굴에 들어갔는데 호랑이는 뛰쳐나왔다고 얘기가 급속히 전개된다. 

단락이 바뀌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신화가 되었으며 그게 또 이런저런 변형이 있다고 설명해 준다. 그런데 그 변형된 얘기가 어떤 건지는 또 말해주질 않는다.

이 이야기를 두고 어떤 학자는 신화라 하고 어떤 학자는 설화라 하고 어떤 학자는 이 웅녀를 역사적 인물이라고 하는데 역사적 인물이라고 보기엔 뭐가 부족하다. 이런 형식으로 책이 쭈욱 흘러간다.

 

 

물론 중간 중간에 이야기도 실려 있긴 있다.

이야기는 실려있지만 그야말로 교수님이 수업 중에 간추려 얘기해 준 뒤에 이 책이 잘 나와 있으니 따로 읽어보고 보고서 써와 하는 식이다.

그래 딱 정리하면 켈트 신화라는 대학 수업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아, 참 짚고 넘어갈 것은 켈트는 사라진 민족이라 우리 생각처럼 신화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도 않고 제대로 남아있지도 않아 그야말로 발굴해야 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찰스 스콰이어라는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며 그런 이야기와 흔적을 발굴해 내 정리한 이 책은 그야말로 고전에 들어가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신화가 아니라 아니라 켈트 신화를 연구한 신화학 서적이다.

 

일말의 흔적을 따라가며 수집한 자료를 학술적으로 풀어간 이 책은 그만한 가치가 있지만 책 소개 어딘가에 그런 일말의 힌트라도 있었더라면 정말 이렇게까지 흥분해가며 글을 적진 않았을 것이다.

 

 

2. 번역

원전의 의미를 충실히 전달하기 위해 직역을 했다는 역자의 말따위 변명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대표적이라고도 할 것 없고 몇 문장 읽다보면 그냥 안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고 역자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신화나 영국사를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 영문학과 교수님 두 분이 번역을 하셨다. 두 분이 직접 하신 게 아니라 대학원생들한테 과제로 나눠준 거라 믿고 싶다.

 

'그럼에도 ~ 불구하고', '기꺼이', '~일지라도', '아버지를 갖고 있는' 맨투맨에서 봤던 영어 단어의 1차적 표현과 쓸 데 없는 복수형이 난무한다.

그건 짜증이 나지만 알아서 걸러 읽으면 되니 그렇다 치자.

 

 

'다음 날 아침, 1000명 밖에 안 되는 군대를 데리고 앙구스의 요정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던 핀은 부르를 떠났다'

- 본운 198쪽 15행~

 

- 다음 날 아침, 앙구스의 요정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던 핀은 1000명 밖에 안 되는 군대를 데리고 부르를 떠났다.

- 1000명 밖에 안 되는 군대로는 앙구스의 요정들과 싸우고 싶지 않았던 핀은 다음 날 아침 부르를 떠났다.

 

이렇게 쓸 데 없이 두 번 읽어 의미를 파악해야 하는 문장이 지뢰처럼 널려 있다.

원전의 본뜻이라는 게 뭔가?

현대 영어를 현대 국어로 바꿀 때 원전의 본뜻을 지킨다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

중세나 고대의 표현방식을 우리가 정확히 이해할 수 없거나 이중 의미가 있을지도 모를 때.독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때 그런 오류를 막기 위해 하는 게 직역 아닌가?

 

'아버지를 갖고 있는 아들'이나 '나뭇가지들 사이에 숨어서'와 같이 '아버지를 둔 아들'과 '나뭇가지 사이에 숨어서'로 순화할 수 있는 말을 저런 식으로 옮겨 적은 건 직역이 아니라 엄연한 국어훼손이다.

 

켈트 발음을 찾는데 힘을 기울일 게 아니라 최소한 국문과 누군가에게 한글 번역본 감수를 맡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쓰게 하는 졸속 번역 때문에 학문이 멀어지고 호기심은 발 둘 곳을 못 찾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어번역문장에 익숙하고 '나는 간다 학교에' 식으로 사고를 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거리낄 것 없이 이 책을 골라 켈트 지식을 넓힐 수 있다.

 

 

 

저자가 한국 독자에게 보낸 짧은 인사글에서 한 말처럼 책의 골자와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시'는 철학이나 종교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익숙한 내용이라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에 마법의 책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아놓은 듯한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맥락을 넘어서 큰 줄거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보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자기 전에 잠깐 읽을 요량으로 들었던 책을 단숨에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 책을 읽고난 후 이불 속에서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더랬다.

윤회의 고리니 해탈이니 하는 어려운 말이 새로운 의미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혹 기독교 교조주의자들이 내 글만 읽어보고 멀리하게 될까 좀 덧붙이자면 이 책은 어느 한 종교 사상에 관한 책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방법 중 이런 것도 있다는 얘기이니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짧은 이야기고 이 한스 크루파라는 작가가 동화작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사는 의미를 되짚어보고 싶거나 방향을 찾고 싶은 사람이 한 번쯤 읽어볼 책이라 생각한다.

 

난 7장 마지막 부분을 이 책의 절정부분이라 생각하는데 이 부분 때문에 이 책이 읽은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계속 마음 속에 맴돌고 있다.

상징은 통속적이고 감동은 개인의 문제.

 

제목을 달고 나니 좀 이상하군.

어쨌거나 소설이면 소설 드라마면 드라마 영화면 영화. 무엇을 보건 각종 과학과 기술을 활용한 소재가 넘쳐난다.

그 유명한 CSI부터 수학자가 등장하는 넘버즈나 뼈로 추리를 한다는 본즈나 물리학자가 추리를 하는 일본 드라마까지 나올 지경(?)으로 기초과학이 미디어를 누비고 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기초과학의 세계는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데 이 사람은 그렇게 멋진 분야도 아닌 뱀장어 생태(ㅡㅡ;;)란 걸 소재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심산인가, 굉장히 궁금한 생각으로 책을 들었다.

 

책을 읽는데 첫머리부터 아 일본놈들 선진국병 장난아니구나, 말끝마다 개발도상국 어쩌고 하면서 까는 폼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뱀장어에 한해서는 굉장히 상세한 것이 얘들은 소설을 써도 이렇게까지 쓰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뱀장어의 생태를 어쩌면 이다지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걸까 신기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기초과학에 잠깐 손가락 정도 적셨던 나도 같은 류의 경험을 해서인지 이 사람 혹시 기초과학하다 떨어져나온 나같은 나부랭이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제야 책표지를 뒤적이며 저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찾아봤다.

아! 자연과학자구나. 이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구나. 어쩐지 너무 생생하다 싶었다.

신해철이 노래한 민물장어의 꿈에 등장하는 그 민물장어가 그 넓은 바다를 가르는 대장정을 하는 이놈들과 같은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저자가 이 둘이 다른 놈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던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들었던 노래 가사도 새롭게 와 닿았고 컴컴한 바닷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지표삼아 움직이는 건가 굉장히 신비로운 느낌에 휩싸여 책을 읽다 중간중간에 잠시 넋을 놓고 바닷속을 그려보기도 했다.

 

저자의 선진국병은 책이 끝날 때까지 낫지 않지만 사람을 보는 시선이 좋아서 그리고 그 뱀장어를 도대체 잡았는지가 너무 궁금해서 책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소설이 아니라 뭐 이래 싶을 정도로 결말이 시시하게 끝나버렸지만 마지막에 교수가 한 말은 가슴에 찡하게 울려퍼졌다.

 

난 너무 안일한 인생을 살고 있는거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건 일탈로 모험을 하는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모험거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