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전자책의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충실한 안내서

앨빈 토플러가 말한 제3의 물결의 파고는 생각보다 크고 높게, 그리고 깊숙이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최근 아이폰을 주 매개로 한 스마트폰 열풍을 보고 있노라면, 정보기술의 발달과 그 발달을 추동케하는 마인드의 전환, 그리고 그 기술이 낳은 기기, 그를 판매하는 유통망과 사용자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들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획기적인 전자적 아이콘이 낳은 생태계의 지각변동을 감지하게 된다. 이러한 큰 이슈화를 가능케 한 배경에는 기기 자체의 획기적인 매력에 더해, 다양한 컨텐츠들을 담은 수많은 앱들이 공유되고 있는 앱스토어가 존재한다. 나는 스마트폰 열풍의 시작이 기기라면, 그 끝은 앱스토어라고 생각한다. 즉, 뉴 테크놀로지 싸움인 듯 보이는 정보기술시장이 소비자들에게 파급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결정적인 소구력으로 작용하는 것은 다름 아닌 내용이고 컨텐츠라는 것이다. 또한 아이폰이라는 매력적인 기기와 앱스토어, 아이튠즈로 이어지는 애플의 플랫폼은 쓰고 싶은 욕망과 써야 하는 필요를 동시에 복합적으로 자극하고 있기에 세계적인 열풍을 가져왔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전자책의 충격과 전자책의 미래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물론 본문의 설명을 통해 처음 접한 킨들의 전자잉크와 무선데이터 통신망 인터페이스나, 나 역시 주목하고 있던 아이패드의 기기적 특성과 매력이 전자책의 대중화에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자는 전자책의 명운을 결정하는 핵심적 문제는 기기가 아니라 컨텐츠와 플랫폼에 있다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 킨들을 매개로하여 기존의 절대적 도서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는 아마존과, 아이패드를 매개로 아이튠즈와 아이북스스토어를 통해 아마존의 독점적 지배력을 기저부터 흔들고 있는 애플, 게다가 풍부한 원문을 확보하고 특화된 검색기능을 제공하는 구글 등 전자책 세계의 가장 강력한 액터들은 결국 자기 방식의 플랫폼으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책을 읽게 하려는 궁극의 플랫폼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을 책에 담긴 지식의 세계를 전자정보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복합적 플랫폼을 통하여 대중에게 ‘재매개’ 하고 있다. 저자는 기기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전자책 시장의 역사, 저자와 출판사 및 전자책 기업 간의 지분관계, 플랫폼 전쟁의 다양한 사례 등을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장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냅스터, 아이팟 등의 사례를 통한 음악시장과의 비교 설명이었다. 물론 음악과 책은 분명한 온도차가 존재하는 다른 세계의 미디어지만, 기존의 고전적 매체 소비 방식에서 전자 매체 기반으로의 전환, 저작권 문제, 시장에서의 소비 및 유통 방식, 매개 방식 등에 있어서 폭넓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에 음악시장의 선도적 실험들이 전자책 시장의 향방을 가늠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신매체로서의 전자책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몇 가지의 개념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책 전반에 꽉 차있는 친절한 설명들과 풍부한 사례들은 그의 이해를 돕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앰비언트’로서 출판사나 저자의 공신력, 자본과의 결합을 통한 광고와 배치, 베스트셀러 순위에의 포함 여부, 판매의 효율성을 위한 패키지화를 비롯한 자본의 배치에서 벗어나, 책의 컨텐츠 자체가 중심이 되어 유관 컨텐츠들과의 연관 및 리패키지 과정을 거치며 독자적이면서도 연관 영역들과의 컨텐츠 덩어리를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전자책의 시대에는 책이 엠비언트가 되어야 함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또한 전자책이 가진 개방성의 핵심 기제인 ‘자가출판’도 중요한 개념으로 제시되고 있다. 저자는 ISBN 코드 취득에서부터 아마존DTP 등을 활용한 실제 자가출판의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누구나 책의 필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스스로 셀프 프로듀싱 하여 온라인으로 직접 소비자들에게 음악을 판매하는 마쓰키 아유무의 사례를 읽으면서는 지난 2008년 한국에서 대대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장기하와 얼굴들>의 사례가 겹치기도 하였다. 아마 저자가 그들의 존재를 알았다면 한 챕터를 할애하여 그들의 시도를 담았으리라 예상한다. 그들은 소속 레이블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유니크한 자신들만의 음악이 담긴 음반을 일일이 손수 제작하여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함으로써 일종의 자가 음반발매의 시도를 수행했다. 직접 자기 음반을 컴퓨터로 굽는 멤버들의 모습이 희화화되어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들의 시도는 컨텐츠만 충실하다면 자가출판된 전자책이나 음반이 자본의 힘을 거치지 않고도 인터넷의 범용성에 기반하여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였다.
이러한 전자책들은 자본에 의한 광고노출과 배치, 출판사나 저자의 권위에 의존하기 보다는 다양한 개방적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통하여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책을 사보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또 다른 키워드인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대두된다. 이들은 블로그나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 온라인의 리뷰 공간 등을 통해서 책에 대한 소개와 추천, 리뷰 등을 올리고 전체에서 분절화 된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의 이슈화를 수행함으로써 수많은 온라인 시민들에게 그 책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자본과 유통의 힘 보다 이들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들의 복합적인 역할과 컨텐츠의 리패키지에 큰 기대를 보이고 있다.

나는 사실 고전적인 종이책 소유 중독자에 가깝다. 헌책방과 사회과학서점의 서가를 세심하게 살펴 원하는 책들을 손에 넣을 때의 뿌듯함과 세월의 담백한 축적이 느껴지는 종이냄새, 먼지의 질감에 감동하는 일종의 고전적 장서주의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동안 내게 전자책이라는 화두는 그러한 새로운 독서방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인지적 차원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였고, 당연히 ‘전자책의 장’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사키 도시나오의 <전자책의 충격>은 전자책과 책의 미래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부족했던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더없이 좋은 저작이다. 저자는 위에서 언급했던 주요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전자책이 가져올 책의 미래와 시장구조의 변화 및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동시에 도서 시장과 음반 시장의 운영 원리와 지각변동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독서행위의 의미변화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전자책’이라는 존재를 매개로 그를 둘러싼 여러 장들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와 개념의 정립, 발빠른 흐름 및 변화의 향방을 가늠하기에 매우 적합한 입문서라 보여진다.
이 책을 읽으며 과거 고교시절에 읽었던 배식한 선생의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이 떠올랐다. 배식한은 이 책에서 당시 새로운 텍스트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하이퍼텍스트의 혁신성과 비선형성의 역사와 가능성을 충실히 언급하면서도, 기존의 고전적인 책에 담겨진 선형적 텍스트와 컨텐츠가 있어야 정보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기에 궁극의 책의 종말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사키 도시나오의 논의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존재의 소멸과 전환’보다는 ‘존재의 공존과 의미의 변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읽혀진다. 저자는 종이책의 종말, 혹은 전자책의 실패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관점에서 전자책이 가진 새로운 매체적 가능성과 일종의 지식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전자책의 충격’이 ‘종이책의 종말’로 이어지리라는 급진적 테크노크라틱 관점과는 거리를 둔 채 가능성의 폭을 넓게 열어놓고 현상과 미래를 관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말미에 하나의 우려를 덧붙이자면, 나는 저자의 논의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저자가 전자책 시장의 개방성과 균등한 권리가 불러올 지식 민주주의에 대하여 지나치게 긍정적인 미래를 전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기존 도서 시장에서 출판사나 저자의 권위, 베스트셀러 목록, 서점에서의 도서 배치와 광고가 도서 판매량과 직결되었던 관행들이 전자책 시장으로 넘어오면서는 자본과 권위의 힘으로부터 독립된 평등한 독자 접근성을 갖고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경쟁을 할 수 있으리라 이야기하지만, 결국 전자책 역시 ‘전자책 시장’이라는 아마존, 애플, 구글, 기타 도서 업체들의 ‘스토어’에서 판매가 되려면 궁극적인 자본의 재배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본문에서 언급했던 아마존과 애플, 구글의 마케팅 전쟁과 인세 경쟁 등은 자본이 이미 전자책 시장에 막대한 힘을 작용하고 있고, 표면적으로는 독자의 읽을 권리를 이야기하나 궁극에는 자본의 수익논리가 자리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저자가 그리는 전자책을 매개로 한 도서-지식 민주주의가 궁극적인 ‘전자책의 미래’가 될 것인지는 앞으로 조금 더 면밀한 눈으로 현상들을 살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끝으로 저자가 서문과 본문에서도 계속 언급하고 있듯이, 이 책은 미국에서 아이패드가 발매된 직후인 2010년 4월에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 책이고, 3개월만인 2010년 7월에 한국어판이 발매된 말 그대로 따끈따끈한 최신간이다. 보통 외국에서 출판된 학술서가 한국어판으로 번역 출판되는데 걸리는 시간적 간극을 생각하면 이 책을 출판하는데 투여된 역자와 출판사의 예리하고 부지런한 노력이 여실히 느껴진다. 나는 기존의 도서 및 인쇄매체,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하고 유용한 정보를 선별하고 재구성하여 독자들에게 재매개 할 수 있는 지식인과 출판편집인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최근 한국의 독자들이 궁금해할법한 전자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 책을 발빠르게 전달한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선도적 역할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도 부지런한 지식 전달자의 역할을 꾸준히 수행해주기를 기대한다.

2010.07.31.Sat

(Ts.2.R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