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넓얕 제로가 나온 기념으로,
채사장의 지난 책들을 찾아서 읽어봤어요.
한 두 해 전, 지대넓얕 1을 읽으면서 엄청 감탄했거든요.
학창시절 있어도 조용하고,
없어도 티가 안나는 그런 학생이었고,
고3이 되기 전까지 책을 제대로 안읽었다지만,
교실 창가에 앉아, 뒷산을 하염없이 볼 수 있고,
깊고 자유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춰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연히 읽게 된 책에서 문학을 발견하고,
다시 종교, 철학, 과학.... 열 한 계단을 올라가며 성장한 이야기.
책을 읽고 온전히 내것으로 만드는 건 역시 어려워요.
벌써 시간이 지났다고 많이 잊었네요.
(하긴 작가가 수많은 세월 공들여 쌓은 지식을
그렇게 쉽게 내걸로 한다는 건 미안하기도 하죠^^;;)
일단 인상 깊은 몇 가지를 적어볼게요.
근현대 사회에 들어서 전문인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내 분야가 아니면 관심을 잘 갖지 않았었는데,
큰 관점에서 볼 때 나 스스로 부품이 되어간 것일 수도 있겠어요.
주체로서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각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세계를 존재와 관계의 관점으로 나눌 때,
존재와 관계는 모두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수학이랑 철학이 통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리고 우주에 대한 고민은
저도 한 열한살 쯤 때부터 많이 해봤어요.
우주... 태초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무것도 없었나?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는 건,
그래도 공간이 있고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건데,
공간조차 없다면, 이 세상은 무엇이지?
뭐.. 이런저런 고민하다가 끝이 안나서 그만뒀는데,
작가의 말대로, '우주가 존재한다'라고 말할 지적 생명체가 없어도,
우주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 대답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이 질문과 답 역시 꼬리와 꼬리를 물고 돌아가고...
작가의 열한 계단은 끝없이 사유하는 무한대의 공간 같아요.
중학교 시절인가? '신독'이라는 말을 배우고 의지가 되었더랬죠.
어릴 때부터 누가 뭐라하든 착하게 살라는 부모님과 종교적 가르침으로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딱히 반항할 생각도 없이 그렇게 살았는데,
나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옛부터 누가 보든 안보든
착하고(?) 바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하는 안심.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자기 피알을 하고,
이기주의는 아니어도 개인주의를 지향하는데,
작가의 군시절 실천하는 이상적 인간을 보고,
다시 한번 갈등하게 되네요. 그렇게 사는게 옳은가.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삶은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쪽 혹은 저쪽을 오가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삶들이 플러스 마이너스 하면서,
우주의 균형이 맞춰지는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해변가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경계가 보이죠.
하지만 아무리 다가가 보아도 경계는 여전히 저편이에요.
이렇게 지구를 한 바퀴 돌면... 경계는 저 멀리 보일 뿐,
실제로는 없는 거죠.
어쩌면, 삶과 죽음, 내면과 외부, 자아와 세계.
그 어디에도 경계는 없는 건 아닐까?
이런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작가가 존경스러워요.
40년 넘게 살면서, 늘 바쁘기는 했는데 깊은 생각은 없고,
눈앞에 닥친 것만 바라보고 살아온 것 같고요.
가끔은 버스 타고 종점도 가보고,
하늘을 보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는.
그런 경험을.. 가끔은 해야겠어요.
물론,, 현실은 어렵지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