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가본적 없는 원미동이란 동네.. 예전에 교과서에서 ’일용할 양식’과 ’원미동 시인’을 이미 접했었기에 좀 더 친숙한 마
음으로 책에 접근할 수 있었다. 글의 초반부에서는 속도가 나질 않았다. 빽빽한 글씨들을 보면서 질릴정도가 되었을 무렵...
어느새 나는 원미동이란 동네에 빨려들어가고 있었는가 보다.
소설의 뒷편에 실린 문학 평론가들의 평론 덕에, 소설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이 책의 가치들과.. 작가가 의도적으로 장치해 놓은 것을 눈치채지 못한 나의 우둔함..
이 소설은 80년대, 서울 변두리에 있는 원미동이란 곳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들을 다루고 있다. 도시에서 희망을 잃고 원미동
으로 밀려온 사람들, 아니면 그 반대로 시골에서 희망을 품고 원미동으로 올라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그려내는 삶의 단
편은 고통스럽고, 억압되어있고, 희망이 없고, 균형을 잡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사람
들은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지 오랜 시간이 지
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읽히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80년대라는 사회만 담고 있는게 아니라, 온 세상의 인간들이 가지
고 있을 모습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즉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 치는 사람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이다. 현대인들이 삶에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때, 이 소설을 읽고 다시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지금도 여전히 무수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미동 사람들’은 소설 부문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이 품고 있는 뜻과 그것으로 인한 감동이 사람들을 붙잡는 것이다.
원미동은 어찌보면 지금의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보일수도 있다. 사치스러운 몸치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 자가용 기사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원미동 사람들의 심정
을 이해할 수 있겠나.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닌만큼, 그들도 언젠가는 ’원미동 사람들’을 찾게 될 날이 올 것
라고 믿는다.
’마지막 땅’의 편에 등장하는 강 노인을 보고 또다시 놀랐다. 땅의 진정한 의미를 지키고 싶어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작품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땅을 단순히 돈으로 보지 않고, 우리가 기반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며 삶
의 터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강 노인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어하는 그의 자식들이나 이웃을을 나도 이해할 수 있었
고 말이다. 그러나 강 노인 같은 사람은 존재해야 한다. 농부들이 힘들어하는 이런 세상에서, 강 노인 같은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땅을 사고 파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건 정말 매정한 일이다. 우리가 먹는 곡식이 모두 땅에서 나오는데.
강 노인의 외로운 투쟁이 정말 안쓰러워보였다. 주변에서는 모두들 땅을 팔라고 독촉하는데도 꿋꿋이 땅을 가꾸는 그의 모습
이 나로선 놀라울 수 밖에. 나도 그처럼 신념을 가지고 그걸 지키기 위해 홀로 투쟁할 각오가 되어 있을까?
이 밖에도 산업화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인간 소외라든가.. 돈을 벌기 위한 지나친 경쟁으로 이웃간의 신뢰까지 무너진다든가..
하는 많은 것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국어 경진 대회에 나가게 되어서 읽기 시작했지만, 다시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을 소설
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