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우리들에게 첫사랑이란 단어는 아련함으로, 때로는 부끄러운 옛 기억으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구에게는 그 상대가 어린 시절에 같은 책상을 나눠쓰던 심술쟁이 짝꿍이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단정한 차림에 긴 생머리로 기억되는 교생선생님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첫사랑의 기억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사랑이란 감정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티 없이 맑고 순수했었다는 사실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이 사랑인 것조차 모르던 그 시절, 비록 철은 없었을지언정 사랑하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라 자신하던 그 때 우리들의 첫사랑은 그 무엇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한 감정이었다.
「108년째의 첫사랑」은 어리지만 순수하고 해맑은 중학생들의 풋풋한 첫사랑을 소녀의 눈으로 그린 이야기이다. 재밌는 점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녀가 108년을 살아온 구교사(舊校舍)라는 점이다. 사실 ‘의인화’는 그렇게 드물거나 참신한 이야기의 소재는 아니다. 동물이 인간으로 변해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는 동화나 다른 소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놀란 점은 엉뚱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보다, 작가가 세밀하게 그려낸 소녀의 마음이었다. 비록 속 모습은 구교사이지만 마음만은 애틋한 소녀인 ‘코우’의 심리를 너무나도 섬세하게 묘사한 부분이 나로 하여금 어린 둘의 첫사랑 이야기에 푹 빠지도록 만들었다. 오랜 시간 구교사의 모습으로 학교를 지켜온 여주인공이 생전 처음 소녀의 모습으로 변해 남자주인공에게 모습을 보이는 순간 자신이 없어 망설이는 모습이라든가, 훈제 치킨이 먹고 싶다는 소원을 남자주인공 앞에서 비는 것이 창피하다고 생각하며 엉뚱한 소원을 비는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이었다.
구교사 소녀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훈훈하고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는 나로 하여금 잊고 있던 중학교 운동장과 실내화를 신고 뛰어다녔던 복도와 갈색 빛이 감도는 교실, 그리고 친구들을 생각나게 해주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장난치길 좋아했던 친구들, 그 아이에게는 부끄러워 지금도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말들까지, 「108년째의 첫사랑」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내 어린 시절 기억과 감정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마음의 수면과 바닥을 오가며 지그시 내 눈을 감도록 만든다. 아무래도 오늘 밤, ‘그 아이’가 꿈에 나올 것 같아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