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한 지 어언 5년째다. 어떻게든 부모님 밑에서 개기고 싶었으나 결혼 안 할 거면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라는 엄명과 동시에 회사의 프로젝트가 지방으로 결정이 되어 반은 쫓겨나고 반은 자의로 집을 나온 것이다. 그 동안 뭘 먹고 살았나, 생각해보니 뭘 먹고 산 게 아니라 그냥 매 끼니를 때웠다는 느낌이 든다. 아침은 보통 걸렀고 회사에 가서 진한 커피, 주린 배를 움켜쥐고 먹은 점심은 싸고 양 많은 면 종류가 주를 이뤘다. 저녁은 특별히 약속이 있거나 회식이 아니면 보통 집에서 샐러드를 해먹거나 스파게티 같은 일품요리를 해먹거나 라면 같은 인스턴트로 때웠다. 밥솥을 2~3달 전혀 안 쓴 적도 많았다. 그만큼 밥은, 안 해먹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그리고 요즘 하도 몹쓸 먹을거리가 판을 치니까 자꾸 집 밥에 눈을 돌리게 된다. 또 뭐, 언제 결혼을 하게 될지(그럴 일이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또 혹시,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모르니까 음식을 해먹는 습관도 들이고 요리도 조금씩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 매번 음식을 해다 드리는 언니들한테 미안하기도 해서 제대로 된 음식을 해서 갖다드리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처음 이것저것 해볼 땐 네이버 키친을 이용했다. 되도록 간단한 요리방법, 최소한의 요리 재료가 들어가는 걸로 찾아 인쇄를 해서 집에서 해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종이 문제가 있었다. 보통 사진들을 많이 올리니까 요리 하나에 인쇄된 종이는 10장이 훌쩍 넘어가곤 했다. 환경 생각한다면서 그건 좀 아니다 싶었다. 양면 인쇄도 안 되어 매번 그 종이 낭비가 어딘가. 그래서 차라리 요리책을 사야겠다 하고 이것저것 뒤졌다. 
이 책은 처음에 블로거로 출발한 사람의 요리책이라 좀 망설였지만 동료가 먼저 산 책을 훑어보고, 친정엄마의 음식솜씨를 닮았다는 말에 안심하고 골랐다. 이왕 요리를 배울 거면 정통으로 배우고 싶었다. 요즘 나오는 정체불명, 국적불명의 퓨전요리는 제대로 요리를 할 줄 안 다음에 하는 것이다 싶었다. 
이 요리책은 문성실의 친정엄마의 정통 요리 뿐만 아니라 나름 신세대 엄마의 요리법이 첨가되어 제대로 맛을 내면서도 현대인의 입맛에 맞춘 게 장점이다. 또 요리 재료도 최소한, 요리 방법도 간단하다. 요리마다 많은 사진을 첨가했음에도 요리 하나에 한 쪽, 최대 두 쪽이다. 편집을 극대화시킨 좋은 책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좋은 점은 요리 초보자들에게 쌀 씻는 방법 같은 완전 기초부터 기본 양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요리기구는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하는 방법들부터 국, 찌개, 반찬, 일품요리, 제빵 및 제과까지 다 어우르고 있다는 점이다. 나 같은 열성 초보자에겐 딱이다. 완전 칼라판에 그렇게 많은 요리를 어우르고 있는데도 책값이 상대적으로 싸다는 것도 큰 이점이다. 매요리마다 문성실만의 팁을 적어주는 것도 장점이다. 
책을 사자마자 요리에 대한 기본 지식 부분은 일단 꼼꼼하게 읽었다. 그리고 요리는 일단 대충 훑어보고 제일 먼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집중적으로 봤다. 최근에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뽑아 해본 것들도 비교해봤는데 나무랄 데가 없었다. 
요리는 자꾸 해봐야 는다. 식당에서 먹는 것들이 보통 짜고, 깨끗하게 조리되었는 지도 잘 모르겠고, 인스턴트 조미료가 듬뿍 들어가고, 품질도 안 좋은 싸구려 재료들로만 요리 되는지 누가 알겠는가. 먹는 것은 우리 건강과 직결된다. 그런데 식당의 목표는 손님의 건강보다는 머니를 버는 것이 우선순위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 건강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외식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되도록 신선한 재료로 천연 양념으로 맛나게 요리해서 나도 먹고 우리 가족도 먹이자.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게 우리에겐, 우리 환경엔 더 좋다. 다음에 집에 갈 땐 갈비와 장조림을 해가려고 한다. 부모님과 언니들의 놀라는 모습이 상상된다. ^^;; 이 책을 초보 요리사의 바이블 삼아 꼭 성공하고 싶다.

“마치 편지를 주고받는 듯한 연재였다. 나는 에쿠니 씨가 원고를 보내오기를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렸다. 멋진 글이 오면 나도 투지를 불태웠다. 아오이의 흔들리는 감정을 묘사한 글을 받아보고, 쥰세이에게 열정을 기울였다. 혼자서 쓰는 글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에 고민도 하고, 고통도 받았지만, 그 이상으로 이 공동 작업은 자극적이고 의미가 있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연재를 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이다. 더구나 출판사에서 광고를 한 문구는 또 있었다. 두 명의 작가가 릴레이로 러브스토리를 쓰고 부부역자가 두 권을 번역했다고. 이건 마치 이 두 권의 책을 둘러싼 모든 이가 커플이고 사랑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랬다. 작가들도 서로 글을 주고받으며 주인공들과 같은 아련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부부역자도 책을 번역하며 뭔가 사랑의 눈짓을 주고받았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실제로 그랬건 안 그랬건. 
아오이가 주로 현실 삶을 잔잔히 풀어내며 과거를 기억을 통해 가슴속에 품고 있는 느낌을 줬다면 쥰세이는 오히려 열정적으로 과거를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술품 복원 일을 하는 것조차 과거의 사랑을 되살리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아오이가 자신의 삶을 끌어가는-물론 시간 밖에서지만, 것처럼 보였다면 쥰세이는 아오이를 중심으로 자신의 감정과 스토리를 끌어가는 것처럼, 즉 스토리 자체가 아오이에게 끌려가는 것처럼 보인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쥰세이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번잡하다. 마음이라는 부분이 육체의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탓도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지만, 어깨나 발목의 아픔과는 달리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나는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아픔을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흘러가는 시간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과거를 잊게 해 주리라 기원하면서…….’ 
만약 이 책을 <냉정과 열정 사이-로소>보다 먼저 읽었다면 어땠을까. 쥰세이의 열정적인 마음을 먼저 읽고 나서는 아오이의 무심함이 속상했을까. 어쨌든 일단 읽기 시작했다면 두 권 다 읽어볼 만하겠다. 어떤 책을 먼저 읽느냐는 순전히 독자의 마음이겠다. 그에 따른 느낌도 당연히 우리 독자의 마음이고. 흥미로운 작품들이었다.

한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두 일본작가가 번갈아 가며 쓴 두 개의 같은 소설, 하나의 스토리 두 개의 책, 남녀 두 명의 입장에서 본 자신들의 이야기, 그 중의 아오이 이야기를 에쿠니 가오리가 썼다. 이 책을 읽고 물론 츠지 히토나리가 쓴 쥰세이의 이야기인 <냉정과 열정 사이-블루>도 읽었다. 두 권 다 읽고 난 느낌은 이 책이 더 느낌이 좋다는 것이었다. 이 책이 같은 여성 입장에서 쓴 책이라 그랬는지, 이 책을 먼저 읽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를 더 좋아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랬다. 
에쿠니 가오리는 상큼하고 잔잔하고 또 무리가 없어서 좋았다. 가끔 일본 영화, 특히 로맨스 영화를 보면 내가 매료되는 부분은 그들의 절제의 감정이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친구간이든 이들의 절제하는 감정은 그들의 표정에서 손짓에서 온몸에서 느껴지곤 했다. 모든 걸 다 드러내고 까발리고 표출하는 사람들엔 어떤 신비감도 없기 때문에 더 그런 지도 모르겠다. 심플하고 정제된 그녀의 글이 그래서 더 상쾌하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두 남녀가 헤어지고 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생활을 하다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어린 시절 약속했던 장소에서 재회한다. 사실 이 한 권으로 결론이 나 버려서 두 번째 책이 좀 덜 신비로웠는지 모른다. 
이 책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늘 물이었다. 그녀는 늘 독서와 목욕 그리고 비와 함께한다. 물기 가득한 밀라노의 거리와 축축한 도쿄의 거리가 기억 속에서 교차하고 아오이는 과거를 떠올리고 현재를 따라간다. 시간은 그녀의 밖에서 흘러가고 편안하게 사랑해주는 마빈은 그녀를 위해 늘 옆에 있지만 그녀 가슴속엔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고 만다. 십년 전 했던 약속. 십 년은 마치 순식간에 증발하는 수증기처럼 밀라노의 두오모에서 사라지고 열아홉의 아오이와 쥰세이는 재회한다. 그들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쥰세이를, 헤어진 쌍둥이를 사랑하듯 사랑했다. 아무런 분별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