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글에는 늘 아픔이, 슬픔이 흐른다. 재밌는 이야기에도 우리 아이들 이야기에도 웃으면서 눈물 맺히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전쟁을 겪은 선생님이 그렇게 따뜻하게 우리의 아픈 이야기를,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것 같다. 
가난과 전쟁, 가족의 헤어짐, 서로 다른 형제를 볼 수 없고 엄마도 볼 수 없고 아버지는 돈을 버느라 늘 함께하지 못한다. 화가 나 밀치고 때리고 그러다 다치고. 다쳐도 눈치를 보느라 아프다고 말할 수 없고, 병원도 가지 못해 영구적인 불구가 되는 몽실 언니. 
전쟁으로 인해 어느 날은 국군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또 어떤 날은 인민군이 내려와 사람들을 다그친다. 몽실 언니는 어떤 국기를 달아야 할 지 헷갈리기만 한다. 왜 북이 나쁘고 왜 남이 좋은 건지도 알지 못한다. 몽실 언니에게 중요한 건 가족이 함께했으면 하는 것이고 갓난쟁이 동생이 굶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전쟁을 겪고 엄마와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세상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몽실 언니는 세상 아픔을 모두 끌어안는다. “다리 다친 건 내 팔자여요.”라고 대답하는 어린 몽실 언니의 한 마디가 마음을 때린다. 갓난 동생과 둘이 남게 된 몽실이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 동네 할머니의 물음에 몽실이는 “괜찮아요. 무서운 건 신세지는 것보다 나아요.”라고 말한다. 세상이 어린 몽실이를 그렇게 조숙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몽실 언니는 세상을 살아냈다. 모두를 업고 길을 갔다. 그 시대를 견뎌낸, 살아낸 것이다. 우리의 몽실 언니... 

‘절뚝거리며 걸을 때마다 몽실은 온몸이 기우뚱기우뚱했다. 그렇게 위태로운 걸음으로 몽실은 여태까지 걸어온 것이다. 불쌍한 동생들을 등에 업고 가파르고 매마른 고갯길을 넘고 또 넘어온 몽실이였다.
아버지가 그를 버리고, 어머니가 버리고, 이웃들이 그리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칼과 창이 가엾은 몽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달콤한 나의 도시>로 단박에 반해버린 정이현, 그녀의 첫 산문집이었다. 무슨 내용인지 미리보기 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난 그녀를 좋아했다. <오늘의 거짓말>에서도 그녀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기적이고 통속적인 우리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주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다른 그 누구가 아닌 바로 우리의 사랑스러운 정이현이니까. 현대를 가볍지도 심각하지도 않게, 현실적으로 너무나 잘 그리는 정이현이니까. 
사실 책이 나오자마자 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산문이니까 그녀의 일상이며 그녀가 생각하는 일상에 대한 단상이며.. 소소한 이야기들이 많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책을 아끼는 생각으로 두 권 세트를 책장에 고이 모셔놓고 보기만 했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이제 읽어볼 때가 된 거 같아 소중하게 집어들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처음부터 거의 끝까지 영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른 생각들을 적은 단상들이었다.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 글이 실망스러웠다기보다 내가 생각했던 글이 아니어서 그랬다.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들에 그녀가 생각을 붙이고 분석을 하고 이어나간 거라면 어땠을까. 영화는... 사람마다 워낙 취향이 다른 거라서 비슷하게 본 영화는 공감하며 읽었지지만 생각이 완전히 다른 영화에 대해서는 조금 불편한 대목도 있었다. 취향에 대한 얘기를 그렇게 하는 건.. 공감보다는 불편함을 주는 편이었다. 게다가 많은 공백...은 좀 별로였다. 종이가 아깝지 않은가. 하지만 <작별>은 어떤지 궁금하다.

처음 이 책을 잡은 게 아마 제주도 걷기 여행을 혼자 떠날 때였던 것 같다. 공항에서부터 읽기 시작해 비행기 안에서 내내 읽고 제주에 도착해 공기도 찬 버스 터미널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읽었다. 그만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결혼해 따로 서재를 운영(!)하다가 합치는 과정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에 미치다 보면 아무래도 책에 대한 애정을 넘어 광기까지 보이게 되지 않는가. 우리 같은 평범한 독자들도 책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안 읽은 책이 넘치는데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새로 나오면 그것도 사야하고 품절이 될까봐 얼른 사버리는 책도 있다.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 예전엔 딱히 할 말이 없어 진부하게 ‘독서’라고 얘기하던 시대가 있었다. 한동안은 그렇게 대답하는 게 창피하니까 더 이상 독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적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이 늘고 리뷰를 적는 게 습관이 되고 블로그나 카페 활동을 통해 이젠 책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우리는 의외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너무나 흥미진진한 첫 부분을 지나고 중간을 넘어서면서 좀 지루하고 우리하곤 안 맞는 느낌도 있었다. 모르는 책들도 많이 나왔고 오랫동안 써왔던 에세이를 모은 것이기 때문에 앞, 뒤의 연계관계도 잘 맞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아주 쉽게 책에 대한 얘기를 그녀와 함께 읽었다. 한 여성이 책을 읽으며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친구들도 사귀며 아이들을 낳아 함께 책을 읽는 일상이었고 책이 삶이었다. 나처럼. 

‘나처럼 책을 사랑하여 죽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비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