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로는 그저 그렇다. 좀 평범하다고 할까. 그냥 남녀 부부 사이에, 가족 간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렸다. 어느 대목에선 금요일 저녁마다 하는, 부부간의 문제를 다룬 <사랑과 전쟁>이던가, 그 작품이 생각나기까지 했다. 공선옥 작가를 제일로 치는 나도 이 작품에 대해서 그렇게 큰 감동을 느끼거나 이야기가 재밌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보통의 공선옥의 삶이 묻어나는 작품들, 정말 가끔은 지지리 궁상이기도 하고 진정 작가의 말처럼 남루하기도 한 그런 일상과 삶을 그린 작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품엔 ‘어미 마음’이 있다.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이다. 

농담으로 이 작품이 제목 때문에 에로 소설 쪽에 가 있다고 작가는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그때 그 말씀을 들으면서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작품이었다. 막연히 시골 얘기인가 보다면서. 그런데 꼭 그런 얘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 정, 우정에 대한 얘기라고나 할까. 

무난하게 시작한 얘기는 오히려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좋지 않다. 더구나 남녀 사이에선. 차라리 아프다고, 싫다고, 밉다고 짜증내고 싸우고 덤비고 하면서 얼굴에 상처를 내는 게,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히 자리 잡는 뿌리 깊은 고통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이혼하고 아들을 키우며 힘들게 미싱을 돌리며 사는 필순에게 의사인 이섭은 정말 선물이었다. 하지만 일상은 현실이 아니던가. 동생 말처럼 인생은 인정사정 없고 동정 없는 세상인 것이다. 남편과의 다름, 가족의 냉대, 친구와의 우정이 있었다. 또한 불쌍해서 사랑하려고 노력했으나 그게 안 되었다고 느끼는 남편의 사랑도 있었다. 둘의 불편함도 있고 혼자만의 공허도 있다. 게다가 세상에 널린 건 상처다.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건 어미 마음이다. 그 어미 마음을 볼 수 있는 게 이 작품이다. 작가의 말씀이다. 

‘한 가정에서도 잘난 자식은 늘 아비에게 칭찬을 받았다. 못난 자식을 어루만지는 건 어미였다. 마찬가지로 못나고 힘없고 못 배우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밀어내기보다는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제도적 보호를 해주는 것이 바로 ‘어미 마음’ 아닐까.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이 그런 ‘어미 마음’ 하나 가져보자는 마음으로 썼다.’

사람들은 흔히 프랑스 영화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난 가끔 일본 소설이나 독일 소설 가운데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그건 모두 어쩌다 그렇게 느끼는 작품들이다. 그런데 북유럽 국가들의 작품을 대하다 보면 늘 생소하고 자주 특이하다고 느낀다. 

이름도 생소한 네덜란드 작가의 이 작품, 내겐 처음부터 끝까지 애매모호했다. 캔버스를 화자로 잡다니 참 소재 한번 특이하다 했다. 게다가 화가가 ‘창조자’로서 캔버스 앞에 서 있다. 캔버스는 주변을 관찰하고 자신 위에 그려지는 그림에 대한 얘기를 한다. 독특하게 시작한 작품이라 정말 처음부터 기대가 됐었다. 하지만 내가 상상력이 모자라서 그런가, 빠져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건 꼭 아니다. 

이 작품, 소재가 특이한 것에 비하면 캔버스가 보고 느끼는 정도를 보여주는 거라 일반인이 주인공일 때보다 설명이나 묘사가 많이 뒤떨어진다. 책의 설명엔 캔버스를 화자로 등장시켜 창조와 죽음, 부활의 미스터리를 그려냈다는데 억지다 싶어서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암시가 많아서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는데 묘사조차도, 몇 번을 읽어도 그 행위나 동작이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참 아쉬운 작품이다. 

창조자와 그 아내, 그리고 창조자의 친구 여기자 간의 심리도 파악하기 쉽지 않았고(당연하지, 캔버스가 얘기해주는 걸 듣고 있자니 원...), 스페흐트 씨가 그려달라는 아들도 진짜 아들이 아닌 거 같은데, 그 관계가 애매모호하고(둑은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뭘로 이용한 건지, 스페흐트 씨의 마음이 진심인지 아니면 기자가 말한 내용이 진짜인지 그런 것도 파악이 안 되고), 게다가 그 아들을 그리면서 생각한 그 친구는 또 뭐냐고... 캔버스가 듣고 느끼고 본 걸로 해주는 이 이야기들, 내겐 애매모호, 그 자체였다. 암튼 내겐 이해하기 힘든 하나의 작품으로 남는다.

동화를 읽을 나이가 한참 지났다. 사실 어릴 적에 실컷 읽다가 어른이 되어 까먹었다가 보통 엄마가 되어 아이랑 함께 다시 동화를 읽게 되는 것 같다. 난 우리 조카를 생각하면서 다시 동화를 읽는다. 그런데 웃긴 건, 동화를 읽으면서 가끔 내가 더 재미를 느끼고 감동을 흠뻑 받고 또 교훈까지도 얻는다. 또 성인 소설에선 받을 수 없는 위로까지도 덤으로 받는다. 

이금이 작가의 이 작품, 어른인 내가 더 위로를 받았다. 마음에 상처가 생긴 미르, 바우 그리고 소희는 달밭에서 만난다. 작가는 달밭에 우뚝 서 있는 느티나무에서 그 힘을 얻고 우리도 그 힘을 느끼길 바라는 것 같다. 느티나무의 마음자리를 가슴속에 느끼면서...

‘나는 사람살이와 다름없어 보이는 느티나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 안에서 느티나무가 점점 깊이 뿌리를 내리는 동안, 살면서 보고 듣고 겪고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이 숨결을 얻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슬플 때는 느티나무에게서 위안을 받고, 더우면 그 그늘에서 땀을 식히고, 새로운 길을 떠날 때면 느티나무로부터 용기를 얻었다.’  

아빠와 이혼하면서 엄마와 둘이 시골로 내려온 미르는 아빠를 볼 수 없다는 게, 엄마와만 둘이 산다는 게 너무 싫다. 바우는 어릴 적에 엄마를 잃고 입을 닫아걸었다. 마음을 너무 다쳐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소희는 아빠를 잃고 엄마는 재가해 몸이 불편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 아이들은 각자가 그리고 서로 함께 어울리면서 아프기도 하고 아프게도 하면서 또 상대를 부러워도 하면서 성장한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지켜봐주고 각자의 아픔을 더 깊숙이 들여다본다. 바우가 엄마 무덤 앞에서 하는 얘기다. 미르도 바우도 소희도 모두 하늘말나리이다.   

‘엄마, 이 꽃 이름이 뭔 줄 아세요? 하늘말나리예요. 진홍빛 하늘말나리는 꽃뿐만 아니라 수레바퀴처럼 빙 둘러 난 잎도 참 예뻐요. 다른 나리꽃 종류들은 꽃은 화려하지만 땅을 보고 피는데 하늘말나리는 하늘을 향해서 피어요. 마치 무언가 간절히 소원을 비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