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빌렸다.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읽어야지 하면서도 그 유명세에 질려서 계속 미뤘던 책이다. 그런데 맨 앞 장에 그렇게 씌여 있었다. 

“아들들아, 즐거운 방학, 건강한 방학을 위해 파이팅! 지금도 우리 시대에 춥고 어두운 곳에서 살고 있는 이웃이 많단다.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고 절제하며, 따뜻한 마음으로 살기 바란다. 2002, 1. 엄마가” 

이 책이 나온 게 2001년이라니 놀랐다. 처음에 괭이부리말(인천의 가난한 달동네)을 묘사하는 대목을 보고는 1970년대쯤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다보니 IMF가 나오고... 세상에... 그렇다. ‘엄마가’ 얘기했듯이 요즘 이 시대에도 춥고 어두운 곳에서 이렇게 힘들고 고단하게 사는 이웃들이 많았던 거다. 요즘이 IMF 때보다 더 힘든 때라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비싼 레스토랑에는 예약을 안 하면 자리가 없고 백화점엔 사람들로 넘쳐난다. 힘든 건, 정말 힘든 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지병을 달고 살고 가족이 헤어지지 않으면 달동네를 벗어날 수조차 없다. 경제 성장, 개발이라는 정책 뒤에 여전히 힘없고 하루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우리 이웃이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한편 너무 속상했다. 그들의 가난하고 고단한 삶이 그대로 묻어있어서 말이다. 동화라기보다 정말 험난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이들을 정말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또 한편 정말 마음 한 구석이 너무나 따뜻해졌다. 그 삶이 아무리 고단하고 험난해도 작은 꽃씨 하나가 봄을 알리듯이 희망의 햇살을 간직하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명희는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자신에게 물었다. 아직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듬직한 형이 되는 것이 작고 보잘것 없는 꿈이라고 생각하는지. 아직도 착한 사람으로 사는 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명희는 또 숙제가 밀린 아이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명희의 마음은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진정 마음으로 함께하면서 점차 가벼워진다. 

재개발을 해야 한다고 다 떠나고 난 집에 형제만 사는 동수와 동준이 가족, 그 형마저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며 본드를 한다. 숙자와 숙희네는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버지와 사는데 늘 술에 쩔은 아버지를 보는 게 싫어 좁은 골목을 헤매고 다닌다. 엄마가 마음을 잡고 돌아오자 이번엔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암을 앓으면서도 아들에게 짐이 되기 싫고 한 푼이라도 더 남겨주기 위해 영호아저씨 어머니는 앓다 돌아가신다. 어눌해서 아버지한테 폭력을 당하는 명환이는 그나마 챙겨주는 동수를 만나 본드를 함께 한다. 호영이는 일본으로 일하러 가는 아버지가 영호네 집 앞에 버리고 간 아이인데 늘 먹을 것에 집착한다. 혼자 남은 영호아저씨는 동준이를 보살펴주고 숙희, 숙자와 함께하는 동안 가족 같은 느낌을 받으며 어떻게든, 뭐든 함께하려고 애쓴다. 괭이부리말 출신 선생님인 명희는 어떻게든 그곳을 잊으려던 선생님이었지만 영호와 함께,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머리로만 선생님이었던 자신을 점차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진정 괭이부리말로 돌아오는 마음 따스한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있기에, 서로 부대끼며 서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기에, 그 안에서 비록 생물학적인 가족은 아니더라도, 진짜 가족처럼 외로움을 나누고 문제 해결을 하고 기쁨을 나누는 가족의 따스함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춥고 어두운 곳에 사는 이웃들에게도 봄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서로 느낄 수 있는 정과 행복은 비싼 레스토랑에서의 스테이크에서도, 백화점의 명품 가운데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귀한 세상인 것이다. 올해부터는 누구도 외로움 타는 일 없이, 밥 굶을 일 없이 온전히 가족이 함께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와~ 부럽다. 정말 부럽다~ 이런 말밖에 안 나온다. 세상에... 우리 모두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음직한 프랑스에서의 생활이라니. 아니, 생활은 고사하고 여행이라도 한번 해봤음 하고 꿈꾸지 않는가. 비오는 날, 우산을 든 멋진 빠리지엔느 아가씨가 메트로를 타러 젖은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겉표지이다. 비에 젖은 빠리의 거리는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책은 호주 시드니에서 ‘여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즐기던’ 한 가족이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에 집을 갖게 되면서부터 그들은 프랑스적이 되고 프로방스적이 되어 그 삶을 온전히 즐기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잠깐 휴가를 다니러 왔다가 프로방스의 모습과 올리브 농장까지 딸린 한 집에 반해 그 집을 구입하고 일 년에 얼마간은 완전히 프랑스 사람처럼 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을 고용해 집과 정원을 가꾸고 농장까지 꾸려가면서.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곧바로 리뷰를 쓰지 못했다. 너무 약 올라서. 내가 만약 정말 부자 남편을 갖고 있어서 1년의 절반을 외국에서 보낼 수 있고 휴가 때마다 외국으로 한 달 이상씩 가족끼리 여행을 다니고 명품으로만 온 몸을 휘감고 다니고 그런다면야, 충분히 공감했겠지. 몇 번을 해본 여행이라곤 배낭여행이 다고, 밤기차를 타며 숙박비를 아끼고, 빵 사먹는 게 아까워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길거리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었다. 한참 동안은 프랑스를 다닐 때마다 머니가 모자라 직항을 못 타고 30시간씩 걸리게 돌아가곤 했다. 그때 했던 결심이,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바에는 다시는 프랑스를 가지 않겠다 하는 것이었다. 그 정도는 그냥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여자는 그런 레벨이 아니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은근히 빈정이 상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어느 새 그 빈정은 사라지고 정말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모습만이 날 다시 사로잡고 있었다. 이제 난 내 나름대로 내 싱글 생활을 즐기고 있기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진들이 정말 예술이다. 전문가가 찍은 사진들은 풍경부터 소소한 소품에 이르기까지 정말 아름답지 않은 사진이 없다. 뭐, 직접 가보지 못하고 경험해보지 못했다고 해서 꿈꾸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녀도 뭐든 날로 먹지만 않았다는 것도 이젠 알겠다. 뭐든 머니로만 처바른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도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넣어 프랑스를 이해하고 정말 잘 살아내서 행복했던 것이다. 

‘가끔 ‘프랑스에서의 삶’에 흠뻑 빠진 나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 적지 않은 나이에 생소하고 낯선 환경이 가져다주는 흥분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언어와 관습, 문화 등 모든 것들이 매일매일 내게는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순정만화>를 먼저 읽었다. 부산-서울을 오고가며 책을 보다 눈이 아프면 고개를 들곤 했는데 침침해진 내 눈길에 잡힌 게 바로 그 만화였다. 너무 순수하고 예쁜 만화… 연애 한번 못해본 순수한 서른 살 동사무소 남자, 갑자기 멈춰선 엘리베이터에서 “씨바”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당당한 고등학교 여고생의 풋풋하고 상큼한 연애였다. 그래서 한눈에 반해버린 강풀의 만화였다. 얼마 전에 나온 영화에서도 내용과 인물 설정은 달라진 점도 많았지만 유지태의 순수 아저씨, 이연희의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거 같은 예쁜 여고생 연기로 행복했었다. 

그런데 이 만화는 연애는 연애였지만 여분의 삶을 산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인생, 우정 그리고 사랑 이야기였다. 강풀은 자신도 얘기했듯이 그림이 섬세하거나 잘 그리는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해진 선과 별로 예쁘지 않은 주인공들이 오히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섬세하지 않은 그림 선에서 볼 수 없는 섬세함은 오히려 그림 곳곳에 숨어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을 만큼 자상한 부분들이다. 

그리고 강풀 만화의 특징은 스토리 라인에 있다. 설정부터 갈등, 결말 등등 재미와 유머가 넘치고 슬며시 사람들 마음을 흔들어댈 만큼 감동적이다. 이 작품은 특히 너무 슬프다. 눈물이 쉴새없이 흐를 정도였다. 마음이 얼마나 아팠던지 모른다. 그리고 정말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