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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밀양> 영화에 대한 얘기는 조금밖에 없습니다. ^^;;)
한 달에 열다섯 편의 영화를 보고, 남포동에 늘 가는 여관까지 미리 잡아놓고 부산영화제에 참석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7월 중순에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의 열흘 내내 열일 마다하고 여름휴가까지 맞춰서 하루에 네 편의 영화를 엉덩이가 배기고 땀띠가 날 정도로 보며 살다가 이 영화제가 끝나는 날부터 1년을 꼬박 기다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젠 1년에 20편 보기도 힘들어졌다. 그 이유는 물론 퇴근 후에 하는 일, 주말에 하는 일 등이 늘어나면서 일이 많아지고 또 책을 더 읽느라 그런 것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이제 아무 영화나 보기는 싫어진 것이다. 이젠 정말 ‘땡기는’ 영화, 마음에 드는 영화, 좋은 영화만 보고 싶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엔 우리 영화를 방화라고 했었다. 언니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면 그건 당연히 머니 주고 보는 헐리우드 영화였고, 방화는 텔레비전에서 하거나 유치하고 ‘우스운’ 영화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새 우리 영화는 영화 감독, 영화 배우 또 시나리오 들도 점점 우수해졌고, 그 장르도 정말 다양해졌다. 이젠 굳이 우리 정서와도 맞지 않고 늘 그 나물에 그 밥인 헐리우드 영화를 보며 억지로 내게 공감을 강요할 필요도 없고, 정말 재미없는 헐리우드 영화를 마구 헐뜯고 비판해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외국애가 영화 보러 가자고 할 때도 자연스레, “한국영화 볼 거야. 넌 안 되잖아.”라고 자신 있게 거절할 수 있는 게 고소하기도 하다. 약 올리는 게 참기름에 밥 비벼먹는 것보다 고소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한때 조폭 영화가 극장가를 주름 잡으면서 우리 영화의 전성기를 홍콩 영화의 몰락과 비교하기도 했었지만, 그 종류나 장르를 비교할 때, 그건 절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끔 한류를 볼리우드와도 비교하지만 그것도 비교할 게 못 된다. 물론 수작들도 많지만, 볼리우드 영화를 서, 너 편만 봐도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영화가 잘 되는 이유는 단지 연애를 할 때, 할 게 없고 갈 데가 없어서만은 아니다. 정말 영화를 좋아하고 좋은 영화를 보려는 열망이 있기 때문에도 잘 되는 것이다. 자기 문화를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프랑스 애들이 우리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보다 더 잘 되는 걸 보고, 처음에는 ‘허, 요것들 봐라. 한때 그러는 것이겠지…’ 하다가 완전 헛다리를 짚었다. 이젠 우리나라 영화가 왜 잘 되는지 르뽀를 해가고 자기들 나름대로 취재하고 분석하고 또 우리 영화를 사다가 상영을 한다. 이젠 헐리우드 영화도 한국에 먼저 상영을 해봐서 그 성공 여부로 전 세계에 뿌리고 말고를 결정한다니 우리 시장이 커지긴 했다. 그만큼 우리가 영화를 보는 눈이 날카로워졌다고 할 것이다.
처음에 <쉬리>가 1백만을 넘을 때,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실미도>와 <태극기를 휘날리며>가 1천만을 돌파하면서 <왕의 남자>와 <괴물>이 뒤를 잇고, 이제 5, 6백만을 넘기는 영화도 많아졌다. 난 물론 저 영화들을 모두 봤다.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도 있었고 정말 재밌는 영화도 있었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도 있었다. 처음에 <실미도>나 <태극기를 휘날리며>가 엄청난 인파를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걸 보면서, ‘1천만을 넘으려면 50대, 60대 들도 유혹해야 하는 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왕의 남자>는 20대와 30대가 서, 너 번 많게는 일곱 번에서 열 번까지 극장에 가서 되풀이 보는 걸 봤다. 그래서 ‘아, 이런 방법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괴물>은 10대부터 50, 60대까지 어우르는 가족영화였다. 그러니 또 승산이 있었던 것이다.
영화가 성공하는 방법은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다. 단지 관객 수뿐만 아니라 평론가들이나 언론의 ‘공적인’ 찬사를 받는 영화도 있고, 또는 광팬이나 매니아층을 형성하는 소수의 무지막지한 인정을 받는 경우도 있고, 영화감독이나 영화배우 들이 인생의 최고 영화로 꼽는 영화도 있다. 방법은 다르지만 ‘나름’ 성공한 영화라고 보겠다.
예전에 프랑스에 잠시 있을 때, 파리도 아닌 노르망디의 작은 대학 도시의 한 극장에서 ‘한국영화의 특별한 주’라고 해서 한국 영화 네 편을 일주일 내내 상영한 적이 있었다. 그땐 정말 한국영화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또 외국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 나보고 “한국에도 자동차가 있니?”라거나 “한국에도 영화가 있어?”라고 물어본 넘들이 있는 걸 보면, 참 옛날은 옛날이다. 그때 상영한 영화가 강수연이 열연을 했던 <씨받이>, 한순간의 무상한 꿈을 안성기와 황신혜가 보여준 <꿈>, 한국여인의 잔혹사를 원미경이 색감 고운 한복의 자태와 함께 그린 <물레야 물레야> 그리고 태연실과 신성일이 보여준 <장남>, 이렇게 네 편이었다. “시레기국도 못 먹고…”라는 대사를 “쓰레기국도 못 먹고…”라고 번역이 될 정도였으니. 참 그런 시절도 있었다.
아무튼 영화는 네 편이 모두 훌륭했다. 난 그때 우리 영화의 힘을 조금이나마 봤었다. 아무도 보러 오는 사람이 없을까 봐 아는 사람 모두 초대를 해서 간 첫 번째 영화가 <씨받이>였다. 그 당시만 해도, 또 그런 시골에 한국영화를 누가 보러 올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극장은 거의 만원이었고, 본 사람마다 모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게 소문이 나서 일주일 내내 극장엔 사람들이 꽉 찼었다. 초대 받았던 친구들은 그 다음에 가족과 다른 친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왜 또 왔냐고 물으니, “영화가 너무 아름답고 좋아서…”라고 하는데, 그때의 자랑스러움이란…
<밀양>의 전도연이 칸에서 최고의 여배우상을 받았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일이 잔뜩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상희씨랑 둘이 영화를 보러 갔다. 보는 내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상희씨가 좀 걸리긴 했지만 보고 나서 우리가 가진 느낌은 비슷했다. 다행히도 영화를 볼 때의 눈은 종교인의 눈이 아니라 예술을 보는 눈이었다.
난 이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과연 이 상이 정말 괜찮은 영화여서 받은 상인가, 차례가 되어 받은 상인가…’ 궁금했었다. 작품상을 못 받은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변변찮은 내 눈에 작품상을 받을 정도로 최고는 아니었다고 본다. 전도연의 연기는 정말 신이 내린 것 같았다. 전 세계 최고의 여배우 소리를 들을 만했다고 본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내게 <오아시스>가 다였다. 시나리오나 작품보다는 좋은 배우에게 좋은 연기를 하게끔 해주는 게 이창동 감독의 재능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수작이지만 전도연이나 송강호의 연기가 아니라면 그 정도로 최고의 빛이 날 영화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런 평범을 넘어서는 수작은 전 세계에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례가 되어서만 받은 상은 아니다. 좋은 작품이었고, 그 작품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여배우가 받을 만한 상이었다. 더군다나 이제 전 세계에서 우리 한국영화 시장을 무시할 수 없는 단계가 된 보기 전에 설핏 들은 얘기는 모두 다 뻥이지만, 감독이 좀 길게 보여준 마지막 장면이 바로 이 작품이 진정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리고 진리를 알려주는 것 같다.
자기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상처 입은 인간 이신애. 웃으며 거울을 드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김사장. 그리고 마당 한 구석에 비치는 햇살 한 줌. 상처를 안은 인간도 속물의 사랑을 하는 남자도 영혼을 달래는 보이지 않는 손길도 모두 이 세상에 있다고. 모두 그렇게 싸우며 증오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국영화의 힘! 그것은 누구도 훔쳐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으로 그 힘은 커져갈 것이다. 그걸 나도, 전 세계도 함께 지켜볼 것이다.
<밀양>, 전도연 그리고 한국영화, 모두 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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