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알다가도 모를 중국인가?

서양에서 민족주의가 가장 강한 나라가 미국이라면 아시아에서는 단연 중국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먼 기억을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이번 올림픽에서 중국이 보여준 지나친 민족주의적 모습만 보아도 그 말이 빈말은 아닌 듯하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요, 지구상 최대의 인구를 가진 나라라는 틀에 박힌 수식어를 제쳐놓더라도 중국이 전 세계를 향해 내뿜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내뿜을 에너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광활한 대륙에서 뿜어져 나오는 땅의 힘만으로도 중국은 이미 양적으로 전 세계를 압도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같은 문화권에 속해 있고, 오랜 세월 문화를 주고받으며 살아온 우리나라만 해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그들의 억지와, 이른바 되먹지 못한 거짓 논리에 하루하루 등을 돌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는 서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방송을 통한 중국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는 말도 들려온다. 그들에게 있어 중국은 급속히 성장하는 아시아 국가의 의미를 넘어 자신들을 위협하는 무서운 강대국이요, 쉽지 않은 경쟁국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의 현실과 중국인들의 모습을 정확하게 집어내려 애쓴 이 책 《차이나 로드》는 중국과 중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한 발짝 나아가게 해 준다. 미국 국영라디오(NPR)의 베이징 특파원인 저자가 상하이에서 실크로드까지 이어진, 이른바 마더로드(어머니의 길)이라고 불리는 4825km의 312번 국도를 따라가며 본 진짜 중국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여행기 하면 으레 떠오르는 그 나라의 풍광에 감탄하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그것을 사색하는 데 주목하기보다는 그 안에 가려진 중국인들의 모습을 담는 데 더 많은 신경을 썼다. 그렇다 보니 가난에 찌든 농민에서 비참하게 살고 있는 에이즈 환자,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긴 시간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트럭 운전기사에 이르기까지 중국을 대표하진 않지만 중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무엇보다도 전면에 위치하지 않은, 소외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 이 책이 단순 여행기를 넘어 중국 속으로 한층 들어갔다는 느낌을 갖게 해 주는 결정적인 요소다.
 
사실 여행'이라는 단어만큼 낭만을 간직한 말도 없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을 꼽으라면 내 나라에서 보지 못한 이국적인 풍광과 함께 그곳 사람들만이 간직한 특유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함께 체험함과 동시에 그들의 냄새를 맡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일반의 많은 여행기가 선사하는 낭만보다는 고통을 선택했다. 경제 성장의 덫에 걸리고 개발에서 소외된 그들에게서는 삶의 냄새보다는 고통의 냄새가 더 많이 나는 것이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이 다 가난했어요. 그래도 모두 정직했지요. 지금은 예전보다 더 자유로워졌지만 혼란스럽고 무질서해요."라는 트럭 기사 류창의 말이야말로 화려한 빛 속에 가려진 중국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고, 또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 힘 때문에 중국이라는 소재는 늘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또 그만큼 먹히는지도 모르겠다. 불편한 진실 속에 감춰진 중국의 모습을 보아서일까? 다 읽고도 여운이 남는다.

작가를 보고 읽게 되는 책이 있다. 그만큼 그 작가에 대한 신뢰가 기반되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런 면에서 김탁환이라는 작가는 이름만으로도 기본 이상의 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작가로서는 이른바 행운아라 할 수 있다. 이는 물론 그 뒤에 숨은, 노력으로 대변되는 피땀의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다소 시적이면서 어딘지 모르게 가름 한 켠이 철렁 내려앉은 제목의 책으로 처음 나를 찾아온 작가 김탁환은 그 후 '리심'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조선 궁녀의 이야기를 담은 《파리의 조선 궁녀 리심》과 표지가 유독 가슴에 맺혔던 《나, 황진이》로 내 가슴을 파고들었고, 그 후 백탑파 시리즈로 대표되는 추리형 소설로 내 가슴에 이름을 남겼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출간된 많은 작품에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갔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혜초라는 신라승의 이야기로 이야기를 이어 놓았다.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인도 여행기를 쓴 신라의 승려라는, 그저 국사 책의 한 줄을 차지했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독자들의 가슴에 넣어 준 것도 놀랍지만 그가 갔던 여정을 따라갈 생각을 했다는 것 역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신선하다 할 수 있다. 단행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출간 전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철저히 준비된 작품임에 틀림없다. 쓰고 싶은 작품과 쓸 수 있는 작품은 다르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슬 수 있는 작품이었다기보다는 쓰고 싶은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긴장감이나 촉박함이 떨어진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추리가 가미된 역사 소설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 책은 판타지에 가까우며,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판타지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일종의 장치인지 아니면 내 이해력의 부족 때문인지는 몰라도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고선지라는, 그동안 크게 알려지지 않았던 장수에 대한 이야기와 혜초가 걸었던 오천축의 기록을 통째로 빼앗고 싶어했던 상인 김란수, 종교의 다름을 넘어 진정한 인간애를 보여준 야곱, 그리고 신비한 빛을 뿜어내는 오름과 내림이라는 두 여인과의 인연으로 촘촘히 얽혀진 이 이야기는 풀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끝까지 미스터리의 손을 놓지 않는다. 그 끊어질 듯 놓아질 듯 계속되는 이야기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힘이 아닌가 싶다.       
 
유난히 힘들이 읽히는 책이 있다. 이 책 또한 그중 하나였다. 내용이 어려운 것도 복잡한 것도 아니었건만 많은 힘을 들여 읽은 작품이다. 작가는 "혜초 스님은 걸음걸음 목숨을 거셨다. 그처럼 거룩하게 쓰고 싶다."는 단 두 문장으로 후기를 채웠다. 어쩌면 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혜초 그와 함께 걸었는지도 모른다.

"은자(隱者)에겐 망각을 기억하는 책이 더 소중해."
계속해서 이 구절이 머릿속에 맴돈다.

 

"나이 먹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쉽더라."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찬란했던 스무 살, 그 말을 듣고는 풉 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의 웃음은 그보다 더 큰 의미를 담아 지금 나에게 와서 박혔다.
  
서른, 소위 계란 한 판이라 불리는 서른의 코 앞에서 난 <설운 서른>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내 가슴을 끌어내 버린 그런 제목의 책을 만났다. 게다가 출판사 이름이 버티고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하면서도 적절한 조화란 말인가? 두 눈을 가린 채 눈물을 '콸콸' 쏟고 있는 표지의 남자가 눈에 들어와 박히는 순간 손을 뻗어 그 눈물을 닦아주고 싶다는 생각에 앞서 '저 옆에 가서 함께 울고 싶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플 땐 등을 두드려 줄 사람이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 말 없이 함께 울어줄 누군가가 더 필요하다는 말처럼 말이다. 실은 저 남자보다 더 크게 울어버리고 싶은 것이 더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그러고 나면 내 안에 있는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빠져나갈 것 같은, 아니 쫓아버린 기분이 들 것만 같아서였는지도……. 딱히 무언가가 답답한 것도 아니고 딱히 무언가가 불편한 것도 아닌데, 어째 스물아홉이란 이 나이는 가만히 있어도 답답하고 아무것도 안 해도 불편함으로 가득 차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9.8세. 정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나이가 맞긴 맞나보다. '흘러가다 잠시 멈추는 시간, 서른'이라는 말이 가슴에 콕 들어와 박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다행히 내가 유별나게 스물아홉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정신 없음의 흐름을 나만 타고 있다는 것도 아니란 생각에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기도 하지만 서른이라는 나이 앞에 누구나 초조하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언가를 맞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는 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닐 터.

"막상 서른은 아무것도 아니다.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이 더 힘들더라."
스물 아홉을 거쳐간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 마지막 20대를 알차게 살아야 한다고. 그 '알차게'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말이다. 어떤 목표를 앞에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그런 지금의 내 기분을 먼저 겪은 자들의 조언이겠지만 막상 대답을 줄 수 없다는 게 그들을 솔직한 마음이었을 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이라는 나이를 겨우 4개월 앞둔, 그래서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할 20대의 마지막 줄에 서서도 난 여전히 찬란한 내 삶을 꿈꾼다. 지금까지도 찬란했고, 지금도 찬란하며 앞으로도 찬란할 것이라는, 어디서 왔는지조차 모를 자신감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런 밑도 끝도 없음이 아직도 통할 나이라 생각하기에 서른은 찬란하다. 

서른을 살아본 사람들보다는 서른을 앞둔 스물 아홉의 그와 그녀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