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의미는 조금 다른 면이 있겠지만 술을 팔거나 흥을 팔거나 몸을 파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랬을까 솔직히 기생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기생을 조선을 사로잡았다니 .. 이 또한 흥미를 끄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기생이라면 황진이 논개 정도 이외에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없지만 기생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애국자의 모습이 더 강한 논개나 글을 좀 한다는 사람들 보다도 더 멋지게 시를 읊퍼내었던 황진이이기에 그녀들에게서 천하다는 느낌을 받을 일은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이 책 <기생 조선을 사로잡다>안의 기생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녀들 모두 자신의 일에 당당했던 엔터테이너란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고관대작들의 연회에 빠지지 않았다는 기생들이기에 그들의 지식, 상황과 시대를 잘 파악해 처신하는 행동과 말의 몸에 밴 예절, 예술가적인 춤과 가무, 악기의 다룸 게다 어학적인 능력까지 갖추어 아마도 대단한 존재들이지 않았나 싶다. 혼란스러웠던 조선 말기 그들이 구축했던 예능사를 들여다 볼 기회를 가지게 됨이 반가웠다.
여자로서 최초로 카메라 앞에 선 '월하의 맹세'에 출연했던 이월화, 석금성, 한국영화의 대표작 <아리랑>의 주인공 신일선10대 가수여왕 왕수복 등 초창기 영화에 출연하거나 음반 취입을 한 기생들도 많았다. 또한 여염집 여인네들에게서 모델을 구하기 쉽지 않았던 시절 미술 모델이나 사진 광고 신문들의 광고 전면에 등장해 대중 문화의 중심에서 큰 활약을 펼치는 것도 기생들이었다. 돈도 잘 벌고 잘 놀고 대중들의 이목도 집중시키는 큰 인기를 끄는 기생들이 있었음을 보니 어쩜 과거 매춘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있는 기생이란 직업은 일제 강점기에는 그렇게 펌하되었던 것은 아닌거 같다. 마치 현대의 연예인들처럼 오죽하면 딸들을 기생으로 만들려는 부모들이 많았을까.
족쇄 같던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는 등 신 여성의 모델이 되기도 하고 자유 연애의 선구자가 되기도 한 그녀들이 독립운동의 물결에 선봉장이 되는 것을 보니 숙연해 지기도 한다. 너무도 유명한 고은 시인 조차도 만인보에 <기생독립단>이란 시를 남기기도 하고 수원기생조합, 진주기생들의 만세 의거를 보니 그녀들 또한 독립을 염원하는 조선의 딸들이었음을 알게 한다. 돈만 많이 벌려하고 화려함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가진 돈을 털어 고아원에 기증하기도 하는 등의 사회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도 무수히 많았다고 하니 그들 나름 사회적 위치를 다지기 위한 노력이 있었음을 알겠다.
저자는 일제 강점기 때의 기생은 전통 예술의 계승자라 한다. 전통춤, 악기를 잘 보존했으며 신문물을 잘 받아들여 우리에게 문화유산으로 남겨진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역시 기생에 대한 깊은 사회적 편견과 펌하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생을 천시할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공로는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단순히 비하하는 직업으로서의 기생이 아니고 끊임없이 사회에서 발전해간 그녀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책읽기였던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