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인터넷 포털사이트 파란닷컴에 9개월간 37화로 연재된 웹툰 <삼봉이발소>. 그 중에서 14편을 묶어 <삼봉이발소> 1권이 나왔다. 못생긴 여고생 박장미, 잘생긴 이발사 김삼봉, 고양이인간 믹스. 이 셋이 주인공인 이 이야기는, 외모 바이러스가 번져가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네모난 안경을 쓰고 주근깨 가득한 여고생 박장미는, 예쁜 짝꿍 때문에 외모에 대한 차별을 더 심하게 느낀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다가 눈에 띈 회색고양이에게 마음속 이야기를 하는데, 고양이가 손목시계를 빼앗아 달아나고, 이 고양이를 잡으려고 쫓아가서 도달한 곳이 바로 삼봉이발소였다. 눈부시게 잘생긴 이발사 삼봉이, 말을 하는 회색 인간형 고양이 믹스.
지금처럼 외모를 중시하는 시대, 외모 바이러스가 출현한다. 외모 바이러스란 최근 수도권 일대에 유행하고 있는 일종의 발작증세로서, 병원균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벌써 국내에 20여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이 병의 증상은 말을 더듬고 동공이 축소되며, 심할 경우 환자가 정신을 잃고 주위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스스로 못생기고 보잘것 없다고 느끼는 바람에 주눅이 든 이들, 결국 외모 바이러스에 침식된 이들을, 삼봉이는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가위로 치료하면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그런 삼봉이의 따끔한 질타와 독설과 위로 덕분에 이들은 한결 밝아지고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이 된다. 외모 바이러스에 걸린 친구를 삼봉이가 치료하는 것을 보고, 장미는 삼봉이발소에서 아르바이트하기로 결심한다. 또다른 외모 바이러스 치료 과정에서 드디어 삼봉이발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TV를 보면 꽃미남 꽃미녀들 뿐이다. 뚱뚱하거나 못생긴 이들은 잘난 이들을 보좌하거나 음해하는 배역으로 등장하기 일쑤이다. 심지어 죄를 지은 사람들도 얼굴이 잘 나면 동정 여론이 일어나기도 하니, 요즘 같아서는 의료 기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예뻐지고 날씬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강해지기 쉽다. 잠깐 안 보이다가 다시 나오는 연예인들은 그새 얼굴이 바뀌어 있기가 일쑤이고. 그들처럼 시간과 돈과 노력이 풍족하지 않은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생리 작용이 없는 물질로 만든 약, 예를 들면 젖당·녹말·우유 따위를 이용하며, 어떤 약물의 효과를 시험하거나 환자를 일시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하여 투여하는 플라세보를 투여했을 때 환자가 진짜 약으로 믿어 좋은 반응이 나타나는 일을 플라세보 효과라고 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와 상대되는 개념인 노세보(nocebo) 효과라는 말을 얼마 전에야 처음 들었다. 노세보 효과란 어떤 것이 해롭다는 암시 또는 믿음으로 인해 부정적인 효과가 야기되는 현상을 말한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될 것이라며 포기하고, 결단력 없는 내가 하기에는 엄청난 일이라며 피하고,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며 후에 생길 마음의 상처에 지레 겁먹고 상대방을 멀리한다. 결국 낙오자가 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고, 소외되었다며 우울해 한다. 노세보 효과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준 사회를 증오하고, 때로 자신을 혐오하기도 한다. [무삭제 심리학, 2008, 이남석 지음, 예담 펴냄]
인간의 마음은 선천적으로 순진하고 무방비 상태이며, 암시에 걸리기 쉽고 쉽게 프로그래밍되기 때문에 플라세보 효과도, 노세보 효과도 일어난다. 그런데 어떤 방향으로 프로그래밍하는가는 개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외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외모 바이러스에 걸린 이들과 삼봉이와의 대화를 보면 피해의식과 낮은 자존감, 주눅듦이 느껴지는 반면 스스로를 위한 노력은 보이지 않는 등 노세보 효과의 극치를 보여준다. 삼봉이는 마치 퇴마사처럼, 그런 마음을 적극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바꿔 놓는다. 얼굴이 잘 났거나 못 났거나에 상관없이 하나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 외모지상주의를 성토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라는 하일권 만화가의 주장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인간형 고양이 믹스와 삼봉이의 한밤중의 대화는 뭔가 불길한 느낌을 준다. 그들 사이에서는 어떤 거래가 이루어진 것일까. <삼봉이발소> 뒷이야기가 무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