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소녀 둘이 소년원 대신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선택하고, 인솔자 미주 언니와 함께 1200킬로미터의 실크로드에 오른다. 6월부터 8월까지 한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이들은 어떻게 실크로드를 걸어낼 것인가? 제1회 블루픽션상 수상작인 <하이킹 걸즈> (2008, 김혜정 지음, 비룡소 펴냄)는 이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풀어낸다. '하이킹 걸즈'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상당히 여유롭고 풋풋한 분위기 대신 땡볕의 사막을 걸어야 하는 실크로드 여행길을, 불량소녀 중에서 언니인 은성이의 시점으로 함께 해 보자.

미혼모의 딸이자 엄마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고 할머니와 둘이 살다시피 한 은성. 어려서부터 불완전한 가정 때문에 따돌림을 받는 것에 상처를 입어 점차 폭력적으로 변하고, 결국 고위층의 딸인 반 친구를 때려서 소년원에 갈 처지가 된다. 소년원 대신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선택했지만, 여행 전에 실크로드에 대한 사전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탓에 뜨거운 햇볕, 먼지가 풀풀 이는 비포장 도로, 하루 20킬로미터의 강행군에 나가떨어질 지경이다.

반면 발에 물집이 잡히고 발톱이 빠지려고 해도 묵묵히 걷는 보라는 절도벽이 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물건을 훔치게 되었다고 한다.

은성이가 마귀할멈이라고 부르는 인솔자 미주 언니는 서른쯤 되어 보이는 노처녀로, 실크로드 도보여행의 유경험자이며 중국어를 잘 하고 추진력이 강하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비행 청소년들을 소년원에 보내는 대신 도보 여행을 시키고, 그렇게 여행을 다녀온 아이들은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확률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여행, 그것도 도보 여행은 음악도 허용되지 않고 걷다 보면 힘들어서 서로간의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묵묵히 하루종일 걷는 동안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셋이 걷는 우루무치에서 투루판으로, 고창고성으로, 하미로, 명사산으로, 둔황으로의 1200킬로미터는,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하고 다시 부산으로 가는 어마어마한 거리이다. 그 거리를 셋이라는 한정된 인원과만 어울리다 보면, 게다가 몸이 피곤하다 보면 충돌은 피할 수 없다. 사회에서 만났다면 서로 가해자와 피해자일지도 몰랐던 은성과 보라는 결국 충돌하고, 항상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은성이가 아니라 묵묵했던 보라가 드디어 여행길에서 이탈하고 만다. 길과 음식에 대한 불평으로 일관했던 수동적인 여행보다, 보라와 은성이는 이탈한 여행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솔직해지고 성숙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이들의 하이킹은 시작될 거라고 이야기한다.

설령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신기루일지라도 상관없다. 걷다 보면 언젠가는 오아시스가 나올 것이다. 사막에는 반드시 오아시스가 숨어 있으니까.

은성이와 보라는 사막을 건넌 후 오아시스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신기루를 좇고 있을지 몰라도 오아시스를 향한 희망이 있다면, 아이들은 지금까지의 사막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어느새 오아시스 앞에 서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성취의 기억은 오래 남아, 영양분을 저장해 두는 낙타의 혹처럼 삶의 에너지를 길이 보충해줄 것이다.

작년인가, 소냐 나자리오의 퓰리처 상 수상작인 <엔리케의 여정>으로, 가족을 찾아 미국 국경을 넘는 온두라스 소년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매년 4만 8천 명의 아이들이 헤어진 부모님을 찾아 미국 국경을 넘는 시도를 한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15세, 대부분이 소년들이라고 한다. '죽음의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그 위험한 시도들과 다시 돌려보내지는 절망감을 엔리케와 함께 절절이 느끼면서, 뿌리 깊은 남미의 무기력과 아메리칸 드림을 볼 수 있었다.
<커피우유와 소보로빵>으로 우리나라에도 알려진 , 유네스코 '관용과 평화의 상' 수상자인 카롤린 필립스는 <눈물나무> (2008, 카롤린 필립스 지음, 양철북 펴냄)에서 또다른 엔리케인 '루카'를 소개한다. 엔리케가 국경을 넘는 순간에 집중해서 이야기했다면, 루카는 국경 넘기 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은 이후의 생활에 대해 더 중점을 두었으므로, 엔리케의 후속편으로 이어 봐도 좋겠다.

엄마와 누나, 아버지와 형이 모두 미국으로 떠난 후 루카는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엄마와 누나, 형은 미국에 사는 이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미국으로 떠난 이후 소식이 없고, 에밀리오 형은 소식이 없으나 고액의 수표를 꼬박꼬박 보내주고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루카는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는데, 사막의 길잡이인 코요테로 나선 에밀리오 형을 우연히 만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어려움을 겪고 드디어 미국 진입에 성공한 루카는 국경경찰에게 잡혀 멕시코로 송환되었다가 마약 운반책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이모댁에서 엄마와 누나, 형과 드디어 만난다.
그러나 이것으로 해피엔딩은 아니다. 불법체류자로서의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불법체류자들은 낮은 임금으로 미국 경제의 저류를 담당하고 있으나, 이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거나 낮은 임금을 감당해야 하는 미국인들, 세금을 내지 않는 불법체류자들에게 미국인들의 세금이 잘못 쓰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비디오카메라와 적외선 탐지기, 수동식 적외선 감지기와 담장 설치 등 불법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새로운 이민법이 발의되면서 미국인과 라티노들의 대립과 갈등은 심해지고, 그런 현상은 루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벌어진다. 그리고 사촌형인 카를로스의 고발 때문에 이모와 엄마가 불법체류자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다.
루카는 다시 멕시코 티후아나로 가서 풀려나는 엄마와 이모를 맞는다. 그리고 가족은 다시 만나고, 국경을 사이에 두고 다시 헤어진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은 태평양 해안에서 대서양 해안까지 3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며 뻗어 있고, 대부분 사막 지대라고 한다. 이런 국경은 철조망, 담장, 국경경찰 등으로 지켜지고 있으나, 일년에 수천 수만 명이 도경을 시도하고 있다.
루카의 생활에서도 보았듯 미국에 정착해도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가장 힘들고 임금이 적은 직종에만 취업할 수 있지만, 고국에 그냥 있으면 생계조차도 해결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이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다.
이렇게 들어온 불법체류자들과 이민자들 덕분에 인구 감소는 커녕 젊은 인구의 비율이 늘어나서 국력이 강해지고 있는 나라, 미국. 인구의 절반 정도가 라티노인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위 기간 동안 도시가 멈춰 있었던 것처럼, 이제 불법체류자들은 사회 현상으로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큰 문제이다.
<눈물나무>는 정책을 입안하는 미국인 백인이 아니라 라티노들의 시선에서 본 슬프고 힘겨운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