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장사 한다’는 말에 비하적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장사꾼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장사라는 건 남을 어느 정도 속여야 하며, 운이 좋거나 기회를 잘 만나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장사를 통해 돈을 번 사람을 사회적으로 존경하는 편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의 주인공들이 돈을 벌게 된 계기와 과정을 읽다보면, 장사도 다른 분야와 다름 없이 먼저 뜻을 분명히 세우는 데서 시작한다는 걸 절감하게 된다. 장사꾼에게 뜻이란 다름 아닌 돈을 벌어야겠다는 의지를 말한다.

일제시대 때 소금장수로 큰 돈을 모은 김두원은 연모하던 기생으로부터 가난하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외면당하자 대서소를 찾아가 글을 써 달라고 한다. 10년 내에 돈을 벌어 그 돈을 기생의 얼굴에 뿌리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대서소 노인은 소원대로 글을 써 준다. 이리하여 十年之限不不斷命이라는 글귀는 김두원의 평생의 각오가 된다. 그렇지만 김두원은 아쉽게도 일본인에게 사기를 당해 피땀 흘려 번 돈 모두를 잃어버리고 남은 평생을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내는 일에 전념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

두산의 창업자 박승직에 관한 부분도 매우 인상 깊다. 두산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기업이다. 정확히 말해 1896년에 박승직 상점이 창업했으니 물경 115년이나 된다. 아마 모르는 사람도 많으리라. 박승직은 勤者成功이라는 소박한 진리를 실천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교육과 투자의 필요성을 100여년 전에 이미 실천한 사람이다. 면직물과 함께 쇠가죽을 매집하여 도매하던 그가 백정들의 쇠가죽 품질에 불만을 품고 전국의 백정들을 기생집에 모은 후 며칠 동안 낮에는 교육, 밤에는 접대를 통해 그들의 신뢰와 열정을 산 이야기를 읽으면서 long-term investment란 말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외에도 제주의 거상 김만덕이나 현대의 정주영 등 이름을 떨친 장사꾼들의 입지전적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뚜렷한 목표나 의지 없이 살아가는 나 자신을 향한 그들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우리 곁을 떠나시면서 더욱 그 가르침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법정 스님의 수필을 문고판으로 골라 모은 책이다. 휴대하기 편해서 어디서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값도 저렴하지만, 그 안에 담긴 글과 생각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들이다.
듣기로, 일본에는 이러한 문고판 책들이 여전히 인기 있고 많이 출판된다고 하는데, 우리 나라도 그러한 점은 배웠으면 좋겠다. 마치 책이 이쁘고 포장과 종이질이 좋아야 좋은 책인 것처럼 대접받는데, 이런 문고판이야말로 책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을 만한 책이 아닐까?

나는 법정 스님이 <무소유>에 쓰신 생각대로 일생을 살아 갈 자신은 없다. 과연 출세간의 구도자가 아닌 바에야 本來無一物에 따라 소유욕을 비우고 살아갈 수 있을까? 간디의 말처럼, 남들도 나와 같이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을 내가 가지는 것은 범죄라고 느껴 거부할 수 있을까? 내가 이 리뷰의 제목을 ’자기응시의 여과 과정’(이는 이 책 64페이지에서 어떤 책을 읽은 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을 표현한 문구이다)이라고 한 것도 <무소유>를 읽는다고 해서 내 삶이 소유욕에서 자유로워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배우자고 하는 사람들이 법정 스님의 책을 소유하기 위해 법석을 떠는 모습을 보면서 씁슬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를 깨달은 자는 아닐지라도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  내 분에 넘치는 것과 나에게 별로 소용되지 않는 것을 가지지 않고 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취지로 <무소유>를 받아들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리라.

   

1944년 독일과의 2차대전 막바지, 정찰 비행 도중 실종되어 버린 생텍쥐페리. 그가 자신의 전쟁체험을 형상화한 <전시 조종사>는 시종일관 전쟁의 무의미함을 고발한다. 영웅이란 죽음마저도 빛나고 고결하기 마련인데 이들 영웅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왜 죽을 수 밖에 없는지 잘 알기 때문에 영웅이지만, 2차 대전에 참전한 숱한 병사들에게는 영웅이 될 기회도 없었다. 그들은 무의미하게 죽어가야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아 파시스트로부터 유럽을 구하기 위한 대의명분은 있다. 그렇지만 죽음이 불가피한 위험한 임무를 띠고 조종기의 레버를 잡고 있는 생텍쥐페리에게 전쟁은 잔인한 놀이 그 이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에 관한 뚜렷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문장을 하나 하나 따라가며 작가의 생각을 따라잡기가 그리 편치 않은 책이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후 전쟁에 관한 이러한 태도를 이유로 이 책의 판금도서로 지정했다고 하는데 이런 쉽지 않은 책을 판금할 정도로 그들의 소양이 높았던 것일까?

그래도 몇 군데 기억에 남는 글귀가 있어 적어본다.

	이토록 잔인한 놀이에서 우리는 들러리를 서는 것이 분명한데, 죽을 때까지 이 역을 맡으라고 요구해오는 상황에서 어찌 이 놀이를 마냥 반길 수 있겠는가? 목숨을 걸고 놀이를 하기에는 죽음이란 너무나 엄숙한 것이다.
페이지 : 57쪽

	내게도 사랑할 권리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굴 위해 내가 죽는 것인지 좀 알았으면 좋겠다.
페이지 : 63쪽

	안다는 것은 하나하나 뜯어서 분석해보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안다는 것은 보이는 것에 다가가는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보자면 함께 참여해야 한다. 쉽지 않은 깨달음이다.
페이지 : 61쪽

	산다는 것은 천천히 태어나는 것이다. 완전하게 만들어진 영혼을 갖고 태어난다면, 그건 너무 편하지 않은가? 갑작스런 자아의 각성이 때로 한 사람의 운명을 완전히 다른 길로 뒤바꾸어 놓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각성은 이미 서서히 닦아져 온 길 쪽으로 우리의 영혼이 어느 날 갑자기 시선을 돌리는 것뿐이다. 나는 더디게 문법을 배웠고, 사람들은 내게 문장구성 연습을 시켰다. 그러다가 갑자기 시 한 수가 나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 나는 그 어떤 사랑의 감정도 느끼지 않지만, 어느 날, 무언가가 나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깨운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보이지 않을 건축물을 세우려 나의 돌들을 힘겹게 갖다 날랐기 대문일 것이다. 나는 축제를 준비한다. 어느 날 갑자기 또 다른 내가 내 안에서 별안간 나타나지는 못한다. 그건 내가 아니다. 내가 만들어온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페이지 : 79쪽

	우리는 드넓은 그 무언가를 찾아 여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넓은 세상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도피는 그 어느 곳으로도 우릴 데려가지 못한다.
페이지 : 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