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는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육식의 종말> 등 현대인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의 종말을 고해 온 종말론자(점잖게는 미래학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만 봐서는 ‘종말’과 무관한 것 같은데, 싶지만, 만약 저에게 이 책의 제목을 달리 지어보라고 한다면, 다름 아닌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로 붙이겠습니다.^^
Dvorak의 9번 교향곡 ‘From the New World’는 미국을 신세계로 노래하고 있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미국을 구세계로 단언합니다. 그 속내가 궁금해집니다.
오바마가 치른 지난 대선을 포함하여 최근 몇 번의 미국 대선에서 가장 첨예한 선거이슈가 무엇인지 기억나세요? 제가 알기론 전국민 의료보험제도 도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행 중인 제도가 모든 면에서 절대 강국인 미국에 도입되는 게 왜 그토록 힘든 것인지 자연스럽게 의문이 듭니다. 인구의 25% 이상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나라, <John Q>라는 영화에서 아들을 수술시키기 위해 총을 들고 병원에서 인질극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덴젤 워싱턴의 절박한 사정을 보다 보면 이러고도 선진국 맞아?, 싶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더, 미국사회의 활발한 기부문화는 종종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데 그들 사회에서 기부 문화가 활발한 원인은 무엇인지, 그들은 왜 일상적으로 기부하고, 때론 미친 듯이 기부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현상 모두에 대한 저자의 답은 동일합니다. “미국인들은 개인의 부 축적을 극대화하고 재산운용에 대한 개인의 자율권을 보장받기 위해 세금을 적게 내고 지역사회에 대한 중앙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에 따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로 여겨졌다.” 가난한 자를 세금으로 돕는 정부는 도적이라고, 개인의 부는 개인의 창의성과 능력을 표창하는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존중 받아야 하며 인위적 부의 재분배는 American dream의 기본 정신을 해친다고 미국인들은 생각합니다. 의료보험은 반대해도 기부는 즐겨 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식 행태는 일란성 쌍둥이입니다. 이 점에서 공동체의 복지에 대한 “집단 책임”을 강조하고, 부의 재분배는 자본주의에 대한 필요 적절한 교정수단이라고 인식하는 유럽의 사고방식과 큰 대조를 보입니다.
American dream이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여전히 누구라도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을 터인데, 미국은 과연 여전히 기회의 땅인가?, 묻게 됩니다. 링컨 대통령은 서부개척을 독려하기 위해 Homestead Act를 제정하여 누구라도 개척지대에 땅을 점유하여 일정 기간 이상 경작에 종사하면 그 땅의 소유권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가 주연한 <Far away>라는 영화를 보시면, 깃발을 꽂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려가는 대질주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차지할 땅이 없어지면서 위 법은 폐기됩니다. American dream도 Homestead Act와 동일한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입니다. 이제 미국의 젊은이에게 당신도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예전과 달리 그 대답이 시원치 않다고 하며, 그 점에서 아메리칸 드림은 American daydream이 되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럼, 한 때 미국인들에 의해 구세계로 치부되었던 유럽은 어떠한가? 비록 빈부격차, 이민자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European Dream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 삶의 질을, 무제한적 발전보다 환경 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 가능한 개발을, 무자비한 노력보다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놀이(deep play)’를, 재산권보다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권리를, 일방적 무력 행사보다 다원적 협력을 강조한다고 저자는 쓰고 있습니다. 유럽의 가치관과 사회제도가 최선이라고 말하진 않고 있지만, 적어도 절차적인 면에 있어서 참여와 소통을 강조하는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는 차별화 된다고 보면, 앞으로의 가능성 면에서도 유럽에 점수를 주고 싶어 집니다. EU로 통합된 경제 규모는 무역규모, 국내총생산 등 주요 경제지표에서 이미 미국을 능가하였습니다. Eu의 경제력이 갈수록 커질 것은 자명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책을 애독하면서 본인도 이러한 저술을 남기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했답니다. 절차적, 형식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나 실질적, 경제적 민주화는 요원한 현실의 한계 앞에서 Europe dream이 그 분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저자인 제러미 리프킨의 다방면에 걸친 해박함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한 책이라는 점에서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