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태종, 신하들(허조, 박연, 정인지, 신숙주, 김종서), 둘째 아들 수양대군, 22대 왕 정조의 눈으로 본 세종의 이야기를 통해 세종이 건설하고자 한 이상국가의 모습과 그 성취를 향한 정치의 방법, 인간적인 면모 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 주고 있다. ‘군맹평상’, 저자의 말대로 다양한 눈으로 바라본 모습의 단순 집합이 세종 그 자체 즉 세종의 온전한 모습인지는 의문이 들 수 있으나, 애초 온전한 모습이란 게 과거 기록을 통한 재구성(논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야겠지)인 바에야….
나는 이 책을 세종 Leadership의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읽고자 노력하였다.
첫째, 솔선수범을 먼저 꼽아야 하지 않을까? 그는 늘 새벽 3시에 일어나 옷을 입고 해가 밝으면 조회를 주재하고 윤대를 행한 후 경연에 나가기를 한 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나라의 계몽군주 강희제의 말처럼 “한 가지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온 천하에 근심을 끼치고, 한 순간을 부지런하지 않으면 백대, 천대에 우환을 남기기 때문에” 그는 늘 열심이었다.
둘째, 토론을 통한 여론수렴(숙의)과 open mind
그는 어전회의에서 대개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라고 하문하였으며, 한달에 6-7번꼴로 열리는 경연에서도 학식있는 학자들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셋째, 과감한 결단성
그렇다고 세종이 늘 신하들의 공론에만 의지하지는 않았다. 내불당을 세우는 일과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대신들이 반대하고 성균관 유생들이 권당(동맹휴업)을 행하였음에도 선위하겠다는 위협까지 내세우며 관철시켜냈다.
“일에 의심이 있을 때에는 여러 견해를 들어 결정하지만, 의심이 없는 일은 독단으로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둘째와 셋째는 서로 상보적이어서 어느 하나를 결할 경우 우유부단한 중우정치가 되거나 권위적인 독재체제가 될 것이다.
넷째, 탁월한 인재등용과 인재우대
문인이었던 김종서에게 여진토벌과 6진개척의 중책을 맡긴 일, 역시 문인으로서 음악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박연에게 음악에 관한 일을 맡겨 악기제조와 궁중음악 정립을 이룩한 일, 어미가 노비인 서자출신이고 때때로 부패관리라는 혐의를 받은 황희를 믿고 나라일을 맡겨 청백리로 거듭나게 한 일, 관노 출신인 장영실에게 과학기술에 관한 일을 맡긴 일 등. 세종은 인재를 가려 쓸 줄 알았고, 일을 맡긴 후에는 다소 허물이 있더라도 공적으로 그 허물을 덮기를 믿어주며 기다렸다고 한다.
일을 맡긴 인재를 극히 우대한 것 또한 본받아 마땅하다. 김종서가 6진개척의 중임을 맡아 함길도에서 7년을 보내는 동안 세종은 김종서의 가족을 정성껏 돌보았다. 그 어미가 병을 앓으면 온갖 의약과 음식을 내려주고, 아내가 병으로 고생하니 “어육의 종류는 다소를 논하지 말고 연속하여 주어 섭양하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와 보살핌에 감동한 노모는 죽음을 앞두고도 김종서에게 임지에 복귀하여 임금께 충성을 다하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다섯째, 문화적 자존심
지성의 빈곤은 국가의 위기라고 했던가. 세종은 세자시설부터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아버지 태종이 세종이 독서열로 병이라도 얻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을까. 그는 재임 중에 우리 음악의 정립을 위해 노력했고 집현전의 젊은 학자 최만리가 언문창제는 오랑캐가 되고자 하는 일이라고 격렬히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훈민정음을 과감히 창제하여 민족의 으뜸이 되는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남겼다.
우리의 대통령과 관료들은 이에 비해 어떠한가? 또한 나 자신은 세종과 비교하여 어떠한가?
지성도 부족하면서 교만하고,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도 부족하면서 딱히 올바른 결단도 내리지 못하는 건 아닌가? 사람을 가려 볼 줄 아는 지혜도 없으면서 능력 있는 자를 시기하는 건 아닌가? 자존의 기개는 없고 열등감과 무력감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