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방랑시인, 삿갓시인으로 알려진 김병연의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김삿갓의 할아버지인 김익순은 순조 때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 선천방어사로 재직하면서 반란군에 항복하였다는 이유로 사형 당하였다. 이후 김병연과 그 형은 멸문을 멸하기 위해 집안의 외거노비의 아들로 3년을 숨어 지냈다고 한다. 이후 멸문을 면하게 하겠다는 조정의 처분이 있은 후에야 아비와 재회할 수 있었다. 아비는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여주, 가평을 전전하다 가평에서 사망하였다. 이후 어머니와 함께 평창, 영월, 정선 등을 전전하지만 대역죄인의 자손이란 이유로 차별과 사회적 제약에 시달리게 된다.
이처럼 김삿갓의 유년기, 성장기는 소외와 가치 박탈의 체험으로 점철된 살이었다. 이러한 도피와 생존의 방법으로 부득이했던 잦은 이주가 영혼의 습성으로 자라나 훗날 방랑의 유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약관의 나이에 영월에서 열린 백일장에 장원급제한다. 시제(詩題)는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에 저항하다 죽은 정시의 충절과 반란군에 항복한 김익순의 죄를 논하라”. 김삿갓에 관계된 설화에 따르면, 김삿갓은 장원급제 한 후에야 자신이 추상 같이 그 죄를 논한 김익순이 자신의 친조부인 것을 알고 그 충격으로 집을 나와 여생을 부끄러움에 삿갓을 쓰고 방랑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작가인 이문열은 김병연(삿갓)이 그 할아비의 종묘사직에 대한 대죄를 알면서도 충(忠)의 논리에 터잡아 신분회귀 내지 상승을 갈망하고 김삿갓 자신의 내부에서 솟아나는 내적 갈등과 감정을 다스려 가며 지은 글이었다고 달리 보고 있다.
김삿갓은 이후 세도가 안응수의 집에서 약 2년간 윗길의 문객으로 지내다 또다시 집안의 어두운 내력이 드러난 탓에 식객생활을 접게 된다. 이를 통해 국가의 상부에서는 멸문의 처분을 면해 주었으나 사회나 체제가 가하는 간접적인 제약과 따돌림으로 인해 그는 ‘사회적’으로는 죽은 상태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안타깝게도 그 직후 형 김병하는 몰락한 신분의 한을 자학하다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후 방랑에 나선 김삿갓이 처음 간 곳은 금강산.
松松柏柏嚴嚴廻
水水山山處處寄
절반만 지었다는 이 시에서 소나마 두 그루, 잣나무 두 그루, 바위 두 덩이로 금강산을 만들고, 아주 꾸임 없는 물과 산을 두번 써서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와 천백개의 폭포를 다 보였다는 명성을 얻게 된다.
삿갓은 금강산에서 취옹(醉翁)을 만난다. 시는 무엇이고 그 쓰임은 무엇이어야 하는 시론을 두고 그는 취옹과 언쟁한다. 시를 도구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삿갓과 시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취옹. 삿갓이 그런 시를 어디에 쓰냐고 묻자 취옹이 답한다. “작은 쓰임은 언제나 뚜렷하지만 큰 쓰임은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 송곳을 만드는 것은 무얼 뚫기 위해서이고, 노끈을 만드는 것은 무얼 묶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造化翁[조물주]이 천지만물을 지어낸 까닭은 한마디로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천지만물이 쓸모 없는 것인가?”
삿갓의 방랑은 25세의 젊은 나이에 시작하여 57세 죽기까지 32년에 걸쳐 계속된다. 자신을 찾아온 자식에 끌려 집으로 가다가도 자식 몰래 도망치기까지 두어 번. 그라고 한들 정착과 안주의 평안함과 달콤함을 어찌 몰랐으리요만, 신산한 삶이 드리운 그림자는 평생 그를 유랑의 시인으로 만들었다.
모든 일탈자가 다 시인은 아니다. 그러나 시인은 반드시 모두가 일탈자이다. 어떤 시인은 전혀 일탈자의 특징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평범한 삶의 질서에 충실하고 그 기쁨을 웃고 그 슬픔을 운다. 그러나 그 시인도 결국은 일탈자이다. 적어도 그 사람이 시인이라면 언어에서만이라도 반드시 일탈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실용의 질척한 대지를 벗어나서야 고귀한 시의 천상으로 날아오르기 때문이다.
이후 함경도 여러 곳을 과객질하며 돌아다니다 홍경래난의 근거지인 평안도에 접어들어, 자신이 종래 알고 지내던 홍경래난과 다른 인식과 정서를 가진 서민들을 접하게 된다. 하여 그는 난의 본거지였던 다복동(多福洞)을 찾아간다. 난에 가담했다가 살아남은 자를 만나 조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는 응어리진 한을 푼다. 할아버지는 썩은 조정에게는 목숨을 구걸한 역적으로 매도되었지만,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 서북 민초들에게는 의로운 선각자 였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홍경래 군에게 투항한 후 반군의 대의와 군대의 우애에 감화되어 반군에 적극 가담하여 동참을 호소하는 격문을 쓰기도 하였던 것이다. 홍경래의 난 당시 열 여드레 동안 굴을 파서 화약을 쟁여 넣은 후 폭발시켜 반군의 근거지였던 정주성을 함락시킨 관군은 어린 사내아이와 부녀자를 제외한 이천 명의 목을 하루 밤 새에 베었다고 하는데, 어찌 이를 두고 나라이고 관군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제 그는 더 이상 지방수령이나 토호들만 찾아 다니는 윗길 과객질을 관두고 밑바닥 서민들을 찾아가는 과객질을 한다. 이 무렵 시의 형식 면에서 대담한 파격과 변조를 시도하며, 언문과 진서를 섞어 쓰는가 하면 당시 시에서는 생명과도 같은 운(韻)을 무시하기도 하였다. 시의 내용면에서도 허황된 소재를 배격하고 탐관오리, 덜 돼먹은 양반, 인색한 토호, 엉터리 선비, 못 믿을 풍수꾼, 무식한 훈장 같은 사람들을 풍자, 조롱하면서 그는 비로소 민중시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 책의 말미 평론에 <시인>은 김병연의 허구적 전기요, 이문열의 위장된 자서(自敍)라는 표현이 있다. 작가 이문열의 부친의 좌익활동 및 월북과 이에 따라 작가에게 강요된 불이익과 고통이라는 개인사, 그 와중에서도 신분상승의 열망으로 고시에 매달렸던 한 때, 그 이후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젊은 날의 초상>, <금시조> 등 우리 문단의 찬사를 불러 일으킨 작품들을 내 놓은 성공한 작가의 명성을 얻는 한편, 회색주의자 내지 극우주의자라는 비판도 심심찮게 듣고 있는 그의 일생이 김삿갓의 그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틀림없이 있다.
김삿갓에 관한 역사기록이 빈약한 점을 고려한다면 작가적 상상력으로 김삿갓 내면의 고뇌를 풍부하게 형상화한 작품으로서 기억할 만한 소설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