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장욱진은 1917년 태어나 1990년 돌아가신 서양화가인데, 이 책은 이 분이 1975년, 그러니까 35년전에 쓴 산문집이다. 본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진솔하고 차분하게 그려나간 산문이라 그런지 35년의 시간적 간극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본인에 대한 고백이 나온다, 한마디로, <나는 심플하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교만이 겸손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교만은 겸손보다 위험하지 않으며 죄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깃들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몇 번이나 되풀이 읽으면서 그 참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겸손이 교만보다 위험하다는 건 무얼까? 겸손이란 건, 내 스스로 인정하는 것 보다 타인이 나를 더 크고 훌륭하게 본다는 것에 대한 스스로의 인식이라고 본다면 겸손함은 불가피하게 도덕적 우위, 나아가 위선과 연결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보면 공감이 가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위대한 예술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장욱진 화백도 두주불사형의 애주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가 작품에 집중할 때는 한 달

	취한다는 것, 그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악의 없이 노출되는 인간의 본성을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이기적인 내적 갈등과 감정의 긴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경에 찬 아름다움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 가로 놓인 우울한 함정에서 절망 대신에 긍정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절실한 정신의 휴식인 것이다. 그렇다. 취하여 걷는 나의 인생의 긴 여로는 결코 삭막하지 않다. 그 길은 험하고 가시덤불에 쌓여 있지만 대기에는 들장의 향기가 충만하다. 새벽 이슬을 들이마시며 피어나는 들장미를 꺽어들고 가시덤불이 우거진 인생의 벌판을 방황하는 자유는 얼마나 아프고도 감미로운가! 의식의 밑바닥에 잔잔히 깔려 있는 허무의 서글픈 반주에 맞춰 나는 생의 환희를 노래한다.
페이지 :  60쪽, 61쪽

동안 술을 입에도 대지 않기도 하지만, 작품을 잠시 곁에 물리고 사람을 만날 때는 주당의 진면목을 보여주는데, 참으로 친근한 모습이었다. 

책의 중간과 여백에 그려진 이 분의 그림을 보면 소박하고 단순한 맛이 느껴진다. 어찌보면 초등학생의 그림 같기도 하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여유로운 전원에 아틀리에를 짓고 작품에 몰두하기도 하고 사람을 사귀기도 하는 장화백의 모습과 그걸 담은 글이 복잡하고 빨리 스쳐가는 현대인의 생활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듯 하다.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등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미래학 관련 책을 써온 제러미 리프킨의 또 다른 종말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고민이 절도 된다. 과연 나 스스로는 육식에 종말을 고할 의지가 있는가?, 라고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곡물, 목초 가축사료 시스템(곡물사료와 자연 목초를 같이 먹이는 방식)으로 매년 17억톤의 생산곡물 중 1/3을 가축이 먹어 치운다. 그리고 이를 목초 가축사료 시스템으로 전환하면 10억명의 인간을 더 먹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리카를 비롯한 빈곤국가에서는 먹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데, 지구의 생산곡물의 3분의 1 이상을 사람이 아닌 동물이 먹어치운다고 한다!! 

저자는 육식문화의 폐해를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환경적 해악

1) 열대우림 파괴 - 목초지 개간을 위해 아메리카 대륙은 남벌되고 있다.

2) 사막화 - 반건조지역과 건조지역은 과잉목축으로 사막화되고 있다.

3) 지하수 오염 - 대규모 축산단지에서 흘러나온 축산폐기물은 불가피하게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4) 지구온난화 - 소가 뿜어내는 메탄가스

2. 인간적, 경제적 해악

1) 기아와 영양실조 - 국가간에 식량의 불평등한 재분배로 인한 정치적 분쟁과 국가간 적대감 초래.  

2) 육류 과잉섭취로 인한 질병과 사망 - ‘풍요의 질병’

3) 비위생적 도축, 포장시스템으로 인한 질병 - USDA(미 농무부)의 Streamlined Inspection System은 도축업자의 직원을 통한 표본검사방식으로 개개 소의 질병에 대처할 수 없다.

4) 육식의 심리적, 계급적, 인종적 영향 - 국가간 우열과 식민정책의 배경(라틴아메리카의 농부들은 농토를 잃고 북미로 대거 이주하고 있어 미국의 부분적 라틴화가 진행됨) / 계급서열에 따른 육류소비 / 인종이론 개발의 도구가 됨

저자는 말한다. 전 세계 곡물이 인간을 위한 식량에서 가축을 위한 사료로 전환된 것은 부의 재분배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극적인 변화 이며, 인간의 식단에서 육류를 제외시키는 것은 인간의식의 역사에서 인류학적 전환을 의미한다고.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은  <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에서 말했다. "육식은 부자연스럽다. 생각해보라. 길을 가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려 있으면 우리는 아무 죄의식 없이 그것을 따 베어물 수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닭의 다리를 쭉 찢어 뜯어먹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육식은 너무 잔인하다. 게다가 인간의 신체구조에 맞지 않는다. 인간의 장은 채식에 걸맞게 진화된 탓에 육식동물의 그것보다 길다. 따라서 육류는 장을 통과하는 동안에 부패해버린다." 
 

김영하의 소설 <빛의 제국>을 보면 니어링의 위와 같은 취지에 찬동한 남자가 육식을 끊고 나서 몸이 맑고 깨끗해 지는 걸 적으면서도, 여자들로부터 환대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남성다운 당당함 내지 공격성이 사라지면서 짧고 굵게 남자답게 살기보다는 경쟁을 포기한 나태한 남자라는 인상을 받았던 게 아닐까라고 묘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과연 실제 그러한지 궁금하다. 

<육식의 종말>, 이 책은 독자에게 쉽지 않은 도덕적 결단을 요구하며,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거의 매일 접하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과연 우리가 육식을 끊고서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어서 그대가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 않아 그대는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 폴 발레리(프랑스 시인)
페이지 :

<퀴즈쇼>의 작가, 김영하가 선보이는 남파간첩을 소재로 한 독특한 소설이다.

20여년간 남파 고정간첩 생활을 해오던 기영에게 어느 날 북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 때로부터 만 하루 동안 기영과 아내 마리, 딸 현미 등에게 생긴 일들을 시간 순으로 적어나간 소설이다.

80년대 중반 남파된 간첩의 입장에서 본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가 잘 드러나 있고, IMF 이후 변화된 남한 사회의 모습도 잘 그려져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과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의문이 절로 든다. 기영의 아내 마리는 15년 이상을 살 부비고 살아온 남편 기영의 실체를 듣고 절망한다. 그러나 기영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내 마리가 동생 같은 학생들과 변태적 성생활을 즐겨 왔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영화 <트루 라이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리는 현실을 망치지 않게 위해 기영에게 북으로의 귀환을 요구하고, 기영은 붙잡아주지 않는 마리를 섭섭해 한다. 그러나 기영은 결국 국정원에 체포되고 접선지에서 귀환을 시도하다 사살되는 것처럼 꾸며진 후 제2의 인생, 아니 새로운 제3의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과연 새로운 인격을 부여받은 기영은 과연 마리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