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인간을 읽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책을 받고서 두 번이나 놀랐습니다. 첫번째는 책이 생각보다 얇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전체가 170 페이지 남짓입니다. 제가 그 전까지 읽어온 뇌과학 책들이 300 페이지가 훌쩍 넘었기에 이 책의 첫인상은 조금은 부실해 보였습니다. 두 번째는 작가입니다. 작가 마이클 코벌리스 교수는 캐나다 태생으로현재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교 심리학과 명예 교수입니다.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이제는 교육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연구와 기고 및 저술 활동은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미국과 일본에 치우친 우리의 출판 현실 혹은 저의 편협한 독서 생활 때문인지 캐나다인 저자이자 뉴질랜드 출판 도서는 조금은 낯설고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뇌과학 책들이 두꺼운 까닭은 뇌과학이 비교적 최신의 학문이자, 생소한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뇌과학 책들은 대부분 동일한 형식을 취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외한인 일반인을 위해서 따분하지만 꼭 알아야 할 뇌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이 책의 앞부분이 위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뇌의 구조, 각 부분의 기능, 뇌신경에 관한 이야기가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부분을 최소화해서 읽는 이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습니다. 대신에 흥미로운 일상생활의 경험, 문학작품, 영화나 TV, 심리학 실험 등을 적절히 배치해서 독자들을 쉽고 재미있게 뇌과학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자의 말처럼 "가방이나 머릿속에 쏙 들어갈 분량"으로 두꺼운 다른 뇌과학 서적보다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20가지 뇌과학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20개의 작은 소주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같은 형식은 이 책이 뉴질랜드의 잡지에 연재된 저자의 칼럼들을 엮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동물과의 뇌 크기 비교해서 시작된 이야기는 직립 보행, 손의 사용, 언어의 기원, 다양한 감각, 기억과 시간 등 흥미롭고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언어 자체가 바로 우리에게 경험의 공유를 허락하기 위해 진화했다면, 다른 종에게 언어가 없음은 그들에게 정신적 시간여행도 없음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공유를 통해 남들의 기억과 계획으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단지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야기들이 사실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뒤에서 쑥덕거리고 비밀 나누기를 그토록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모닥불가의 이야기이건, 소설이건, 연극이나 텔레비전 드라마이건 상관없이 허구에 그토록 집착한다.
-뇌, 인간을 읽다 p.108에서
언어란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입니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의 기억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기억은 시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억이란 곧 과거의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언어 때문에 우리가 허구의 소문, 예술, 드라마에 빠져든다는 지적입니다. 언어와 기억, 기억과 시간의 연관성을 통해서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탁월한 식견과 넓은 세계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을 마치면 뇌과학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이들을 위한 참고문헌, 용어해설, 색인이 충실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음에 가볍고 낯설었던 책은 이제 알찬 내용과 저자 특유의 문장에 매혹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이렇습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너무나 짧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후속작을 애타게 기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