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기에 제시된 16편의 에세이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철학이라는 집을 안내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집을 돌아보는 데는 장비나 훈련, 더 나아가 학위나 졸업증 같은 것도 필요 없다. 깊이 파고들어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 집을 소개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
 |
|
| 페이지 : 8에서 |
|
저자는 서문에서 철학을 수천년 동안 지어진 거대한 집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집이라도 들어가는 현관이 있음을 주지시키며, 이 책이 바로 철학으로 가는 편안한 입문서로 여겨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저자의 간곡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여전히 철학은 수천년간 복잡해져가는 미로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어디가 입구인지, 어디가 출구인지 모르기에 들어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 철학 미로 앞에서 저는 늘 맴돌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제 앞에 어떤 미로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인디아나 존스같은 멋진 책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이번에 리뷰하게 될 로베르트 짐머의 『철학의 고전』입니다.
이 책은 철학사에서 큰 영향을 미친 16편의 작품과 그 저자를 다루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시작된 탐험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파스칼의 『팡세』,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을 두루 살피다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끝을 맺습니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고전을 누구나 말하지만 정작 누구도 읽지 않은 책이라 정의한 바 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 자신도 이 책이 소개한 작품들 중에서 겨우 한 두 작품을 읽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통해서 이름뿐이 아니라 그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고전에 대한 방법론이 대두됩니다. 원전을 중요시하느냐 해설서를 중요시하느냐는 것입니다. 원전을 중요시하는 입장에서는 제삼자가 개입하여 왜곡되기 쉬운 해설서보다는 직접 원전 읽기를 주장합니다. 이 책과 같이 해설서를 중요시하는 입장에서는 전문가도 읽기 어려운 고전을 처음부터 읽기보다는 해설서로 통해서 차근차근 접근하기를 권합니다. 저와 같은 초보 입장에서는 원전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 책과 같은 해설서를 통해서 고전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독서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해설서의 중요성은 어쩌면 원전만큼이나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르게 쓰여진 해설서를 읽을 때만이 고전의 미로에서 헤매지 않고, 올바른 길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철학의 고전은』 그야말로 탁월한 해설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선 저자의 탁월한 식견과 절제된 문장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철인왕의 꿈을 읽어내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권력 계산의 지침서임을 밝히며,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반기독교인의 성서로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깊은 내공 덕분입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난해하게 생각했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에 대한 해석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이제까지 이 책이 철학적 논리성의 극한을 이루어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 로베르트 짐머는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책이 신비주의의 영역을 짚어내고 있다는 탁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 책이 비록 편안하게 쓰여진 입문서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다루고 있는 책 한 권 한 권이 일평생의 연구주제가 될 만큼 깊이 있는 고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각 작품들이 가지는 의미와 한계, 시대적 배경과 철학자의 일생까지 간결하면서도 그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역자 후기에 담겨진 좋은 번역을 위한 번역자의 고민과 노력은 편안하게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따끔한 일침이 될 만큼 치열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늘 철학의 문 앞에서 뒤돌아가는 많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