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조상을 잊을 수 있으리오."
운 좋게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1"을 다 읽은 뒤, 내 머리 속에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구절은 저 구절이다.
책을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됐던 것은 사실이다. 유홍준 선생님의 답사기는 단순히 문화유산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지킨 사람들, 그 땅에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들에 대한 짙은 애정이 담겨져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을 상당히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러한 시각도 유홍준 선생님 책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맞았다.
도래인들이 만든 요시노가리 유적, 백제 멸망 이후 유민들이 만든 성과 마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끌려갔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어 일본 뿐 아니라 세계에 알린 조선 도공들과 그 후예들... 읽는 내내 탄성을 자아냈고, 눈물이 흘렀다.
요시노가리 유적이나 백제 유민 이야기에서는 일본에 대한 근거 없는 고대사적 우월감을 갖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생님 말씀처럼, 일본에 건너가게 된 계기야 어찌 되었든, 그 땅에서 정착하고 문화를 만든 이상 그것은 일본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작 내가 가장 큰 감동과 깨달음을 얻은 곳은 조선 도공, 특히 박평의 일가와 심수관 일가 이야기다. 사쓰마번주 가문에 의해 사무라이 계층과 같은 대우를 받았지만, 조상을 잊지 않고, 도자기를 만드는 삶을 이어가다가,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두 가문. 그러나 그 두 가문은 모두 해피엔딩이고, 그 해피엔딩의 끝에 나오는 말이 내가 이 리뷰 앞에 쓴 "어찌 조상을 잊을 수 있으리오"다. 고향난망이라는 말과 함께 일본에 끌려온 도공들의 삶과 노력, 그리고 그것을 지탱해 준 생각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유어예" 역시 마찬가지다. 1,000 년 넘게 마쓰리를 이어오는 남향촌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승되는 소중한 문화들을 제대로 지키고 전승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사도 저 마쓰리와 마찬가지로 후손인 우리들과 조상들이 만나는 자리가 아니던가? 허례허식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의 진수는 지켜 나가되, 번거로움은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
말이 사족으로 흘렀는데, 유홍준 선생님의 이번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은 기존의 허다한 일본 문화기, 일본 기행기와는 대비된다. 앞서 나왔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그랬듯이, 사람에 대한 사랑, 땅에 대한 애정, 문화유산에 대한 존중... 이런 것들이 녹아있는, "일본의 문화유산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고,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일본을 보는 눈, 일본 문화에 대한 생각이 책을 읽기 전 보다 한 단계가 아니라 두세 단계, 아니 그 이상으로 높아지고 넓어진 느낌이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와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