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애가 왜 그러니? 잘하는 게 어떻게 하나도 없어?"라는 말을 듣고 살아야 했다면 어떨까. 특별하게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애매한 사람은 평생 성공이나 승리의 기쁨은 누리지 못하고 산다는 말일까.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대사가 생각났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물론 웃자고 한 유행어지만, 그 말은 우리 사회 뿌리 깊은 1등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말이었다. 거들자면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나왔던 해설자의 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했다. "아.. 우리가 원했던 색깔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2등은 특히 메달권인 3등도 아닌 4등은 소외감은 물론 본인의 자괴감까지 들게 하는 숫자였다.
일류가 아닌 이류, 아니 삼류. 아니 어설픈 능력이 무기가 된다는 제목을 들으니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것은 물론 "부족한 나도 괜찮은 걸까?"라는 용기가 들었다. 물론 저자는 자신을 한껏 낮춰 지방대 경영학과를 나와 회사원이 되었지만 애매한 관심과 어설픈 재능으로 지금은 설치미술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윤상훈 씨다. 그는 자신은 직티스트(직장인 아티스트의 줄임말)라고 말하며 본캐는 회사원 부캐는 직티스트기에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지인과 대화하다가 슬럼프가 왔다고 고백했는데 이런 대답이 날아왔다. "님이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요" 그랬던 거다. 내가 너무 매사에 완벽을 가했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현타 온 것이다. 세상은 변했고 부모님의 부모님 세대처럼 열심히 묵묵히 일한다고 해서 정비례하는 결과로 화답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무거운 엉덩이 보다, 할 거 다 하고 잠도 다 자는데 매번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친구가 부러웠지만 머리 탓을 하며 미련하게 책상에 앉아만 있었다. 이제는 앉아만 있는 일을 때려 치우고 일어나서 넘어지더라도 걸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적당히 일하고 잘 놀고(휴식, 취미), 미래를 위해 혹시 모를 재능을 끊임없이 계발해야 한다. 한 우물 파기보다 문어발식으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봐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어느 정도 흥미와 재능이 있는 것을 계속해서 찾아 나서야만 한다. 참 피곤한 21세기 호모사피엔스는 완성을 향해 죽을 때까지 정신하고 갈고닦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슬픈 인류였다.
"나는 부족한 재능을 엄청난 노력으로 끌어올려 탁월한 재능으로 바꿔 성공하지 않았다. 설치 미술에 대한 어설픈 관심, 직장 생활이란 평범한 환경을 활용해 작가로서 필요한 조건을 충족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애매함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활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법, 그리고 애매한 재능을 기회로 만드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P38
저자는 예술과 전혀 상관없는 공고와 지방 사립대 경영학과를 나와 우연한 기회에 미술작품을 접했다. 그냥 막연하게 "나도 언젠가는 이런 설치 미술을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 씨가 된 경우다. 본인 스스로 내세울 스펙, 배경, 재능 하나 없다지만 이룬 일이 다소 드라마틱하다.
평범한 대학생이 개인 여행을 하겠다고 선언, 대기업이 천만 원을 지원해 주었다. 갑자기 삼성전자 부회장, 부산시장 등을 유명 인사, 셀럽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군 복무 중에는 대학 때 C+ 받은 과제로 특허 출원을 하게 되었다. 토익점수도 없는데 대기업 공채 입사해 현재도 직딩을 잘 다니고 있다. 결국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해외 전시를 한 경험까지 추가되었다.
열심히 한 만큼 잘 안 나오는 내가 계산해 봤을 때는 말이 안 되는 운이라 생각했다. "해보고 안 되면 말고"의 심정과 관점, 태도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고 삶을 바꾸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영화로 치면 모으고 조합한다는 뜻의 '몽타주'가 무대 위에 완벽하게 배치된 '미장센'보다 강점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데이터를 최대한 찾아 조합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을 많이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일단 애매한 재능을 유튜브에서 찾아보자. 요즘 대세는 뭐니 뭐니 해도 유튜브니까. 유튜브는 시청 기록, 구독, 좋아요를 토대로 통계치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산출한 통계로 채널명, 카테고리, 대표 키워드, 재미있게 본 영상을 표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자신만의 대주제를 정하고, 세부 주제를 뽑아 본다. 그리고 구성 방향(부사로)을 잡아간다. 마지막으로 콘셉트를 정하면 된다.
앞서 말한 완벽한 미장센보다 얼기설기 이어 붙인 몽타주가 좋아는 말처럼 평범한 것과 평범한 것을 연결하면 의외의 재미를 만들 수 있다는 특이점을 역설한다. 또한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에서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직장인과 설치예술가라는 낯선 조합처럼 그 사람 고유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 혼자만의 고민이나 창작이라기 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종합하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독창성이 생기는 점을 강조한다.
지금은 전문적인지 보다, 쉽고 대중적이며 독특하고 꼭 필요한 콘텐츠인가 중요하다. 따라서 애매한 재능, 어설픈 관심, 대충 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들려 작은 용기가 생긴다. "내가 이 나이에 되겠어? 늦었지.."라는 말 백 마디보다 한 번 해보는 시도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책에는 어떤 환경에서라도 애매함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활용법을 소개한다. 그럭저럭 쓸만한 재주를 발현하고, 1%로 재능으로 활용해 자신의 강점으로 만들 수 있는 사소한 무기.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능력의 핵심은 전문화가 아닌 최소화, 꾸준한 노력형보다 대충할 수 있는 시도가 아닐까를 생각해 봤다. 무기력 했던 주말 동안 이 책을 읽다 깨달은 내가 컴퓨터를 다시 열어 서평을 쓰게 된 이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