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책은 많이 접하고 읽는데 정작 자신을 위한 독서는 참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을 먹고 읽게 된 헤밍웨이 단편선 <여자 없는 남자들>이다.
이 책은 헤밍웨이가 1927년 출판할 때 원본 그대로 최초 완역한 작품이라고 한다.
원본, 완연 이런 수식어가 붙이면 더 마음이 끌리고 기대감이 든다.
단편집에 실린 순서대로 읽는 것은 작가가 출간할 때 갖고 있었던 하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이기에
읽으면서 그런 느낌마저 경험해 볼 수 있다면 의미 깊은 독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아이책 위주로 쉬운 책에 정말 길들여 있었는지 즐기겠다고 집어들었는데
그냥 술술 읽고 넘어가는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뭔가 미심쩍어서 놓치는 부분이 있는 듯 싶어 작품마다 자꾸 앞으로 돌아가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도가 더뎠다. 단편이 오히려 상징과 암시와 이런 것들이 많아서 더 분명하지 않고 모호한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헤밍웨이가 직접 구성했던 원본이라는 데서 단편을 배열하는 순서를 통해서 헤밍웨이의 생각의 변화라든가 하는 것을
느껴보고 싶었으나 스스로 읽어내는 것은 자신의 독서 수준을 감안할 때 어려운 일이었다.
전체를 이해하기 이전에 단편 한 편을 읽고서도 과연 결말이 어떻게 된 것인지,
죽음을 암시하는 것인지, 유혹에 넘어간 것인지, 결과에 대해서도 확실하지 않아서
다시 읽으면서 짐작하게 되니 궁금증이 남고, 여러 번 읽을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여럿이었다.
그만큼 적극적인 독서를 하게 하는 책이라서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짐작했던 것이 맞거나 아니면 부족했던 것을
발견하는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다시 관점을 가지고 새롭게 읽어야겠다는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켰다.
작품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소설이 <하얀 코끼리 같은 산>이었다. 역사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나누는 남자와 여자의 대화.
이야기는 서로 겉돌고 본 마음과 다른 말들을 쏟아내는 데, 둘이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아서, 궁금증이 점점 증폭된다. 거기에 더해 여자가 계속 관심을 갖고 말하는 '산들이 하얀 코끼리처럼 보인다는 표현'이 여자의 심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이것 역시도 궁금하기만 하다. 여자의 표현에 따르면 진짜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산의 피부가 하얀 코끼리 같은 색이 된다고 하고, 자신들이 처한 상항이 하얀 코끼리 같다고도 하는데,
좀 더 읽어봐야할 것 같다. 여자의 말에 건성으로 답하며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여자가 싫다면 억지로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본 마음을 그렇지 않은 남자의 말이나 상관없다고 말하면서 계속 신경 쓰는 여자의 말,
과연 여자가 앞둔 그 수술은 무엇인지 짐작만 하게 되는데, 결국 작품해설을 읽으면 아하!! 그것 였구나 짐작하던 것이
확인되는 순간에 제대로 읽었구나 싶어서 뿌듯하기도 했다. 남녀 사이의 겉도는 대화가 남녀 사이의 불통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
다 읽고 작품 해설을 읽다보니 개별적으로 읽은 작품들이었지만 같은 소재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여럿이고,
각기 다른 모습(단면)을 모습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 소설들을 다 읽고 나면 점차 본질에 더 가까워지고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자들의 심리, 아마도 당시 헤밍웨이의 심리가 투영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남녀의 관계도 진정한 사랑보다는 남자의 욕구 해결에 치우친 것 같고,
여자 없는 남자들이 지닌 결핍감이 느껴지고, 소설은 전체적으로 메마르고 건조한 느낌을 준다.
전쟁, 투우, 권투 그리고 성적 욕망의 분출 등 이런 소재들 자체가 남성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1927년의 헤밍웨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다시 작품을 보면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읽는 것 보다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