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의 계절 <청명지절>. 주인공 청명은 죽은 선황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며, 후사가 없는 현 황제의 유일한 양녀로
장차 연국의 여황제가 되리라는 야망을 갖고 있다. 유일한 적통의 황족이기에 황태녀로 봉해져야 마땅한데 십년 째 변함없이
그저 공주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황후가 뒤를 봐 주는 라이벌이 등장했다. 그것도 여자란 이유로 공주부에 들어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과 달리 변방에 나가 오랑캐들을 소탕한 큰 공적을 세우고 돌아온 황후가 뒤를 밀어주는 진왕 윤.
책 소개글을 보았을 때는 공주 청명에 대한 이미지는 반듯하고 강인한 여주일 것 같았다. 여자임에도 자신이 있을
자리가 황제의 자리라고 생각해서 도전하는 면에서는 냉혹한 면도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예상했던 청명이 진왕을 대하는 태도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품위를 저 멀리 던져버린 모습이다.
진왕과 함께 있을 때면 진왕 윤에게 하대하고 맘껏 욕하는 그야말로 욕쟁이 공주이다.
그리고 진왕 역시 그런 공주의 치기어린 모습을 그대로 받아서 역시 콕콕 마음을 뒤집으며 능글맞게 청명을 대하며 약을 올린다.
둘의 관계는 황제의 뒤를 잇는 동궁의 자리를 넘보는 라이벌인 듯 싶으면서도
공주를 대하는 진왕의 모습에는 그녀을 위하는 진심이 묻어났고, 라이벌로 생각하는 것은 공주 혼자만의 생각일 뿐
진왕의 마음은 다르다.
바보, 개망나니, 반편이 등등 공주가 하는 욕이 낯설고 적응이 안 되는 것은 아마도 공주 청명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강하고 반듯한 여주인공을 기대했는데 막 욕을 퍼붓는 공주라니. 그동안 궁에서 양모인 황후에게 핍박받으며 숨죽여 살아온 조신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공주는 진왕을 대하면서 자신의 어릴 적과 현재의 모습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십 년째 황태녀로 봉해지지 못한 데 오는 불안감, 자신의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존재인 황제이지만
온전히 신뢰할 수 없기에 살얼음판을 걷듯 영악하게 처신하려 의식적으로 노력해 왔기에
황제의 신뢰를 받고 황후가 관심을 보이는 진왕을 대할 때 의식적으로 마음을 주지 않으려 더 벽을 세우고
자신의 적이라고 스스로에게 되새기고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그런 강한 부정은 그만큼 그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증거였던 것.
그런 청명과 달리 청명을 마음에 품고 있음에도 청명을 위해 라이벌의 자리에 있으려고 한 진왕.
청명이 혈혈단신으로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쓸 때, 그는 아버지의 미움을 받으며 고통속에 살아 남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뒤를 이어 진왕의 작위를 계승하여 황성으로 부름받아 올라오면서 그는 비로소 삶의 목적을 갖게
되고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 깊은 마음을 숨기며 청명의 곁에서 잊혀지지 않기 위해 청명을 자극하는 모습은
청명이 어려움을 겪는 순간에는 청명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진심으로 나타난다.
선황이 죽은 후 세력을 잡아 형제를 죽이면서도 가장 적이 될 수 있는 청명을 양녀로 들이는 현 황제의 이야기.
청명을 마음에 품었음에도 청명과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진왕 윤의 탄생 이야기는 예상치 못했기에 반전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본래 있어야 할 자리, 황태녀가 되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던 청명이 단순히 자리를 찾는 데서 벗어나
장차 황제가 되어 연국을 개혁할 구체적인 꿈을 꾸며 성장해 가는 이야기는 한 때는 라이벌로 자극을 주었고,
나중에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는 진정한 반려를 찾았기에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었을 것 같다.
어려움을 딛고 자신의 꿈을 쟁취하는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라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