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에 살면서도 근처에 있는 홍제천의 역사는 알지 못했어요. <몸을 씻는 냇물>을 읽고 나서야 홍제천에 눈물 겨운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네요. 환향녀들이 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를 묻지 않겠다고 해서 수많은 환향녀들이 몸을 씻었다는데, 그렇게 했음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환향녀들은 그 주변에 터를 잡기 시작했고, 그곳은 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홍은동이라 불려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익숙한 지명들에 이렇게 아픈 역사에서 탄생했네요.   

병자호란을 수없이 듣고 배웠고, 환향녀들의 이야기도 알고는 있었는데, 그냥 알고 있던 것이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에 몰입해서 당시 역사를 느끼는 것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당시 50만여명을 포로와 인질로 끌고 갔다고 하는데, 짐승처럼 끌려가서 어떤 처지에 있었을지 생각하려니 마음이 콱 막힙니다. 나라가 지켜주지 못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을 따뜻하게 품지 못하고, 정절을 잃고 돌아왔다며 손가락질하고, 받아 들이지 않고, 죽음을 강요한 그 시대의 모습이 숨이 막힙니다.

몸을 씻는 냇물의 주인공 양반 댁 아씨 화홍은 그런 양반들의 위선에 대해 폭로합니다. 과연 당시에 손가락질 당하고,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하고 받아들여지지 않던 수치로 여겨지는 시대에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을 여인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소수라도 있었다고 믿고 싶어요.

"남의 눈이, 벼슬이 자식보다 더 중하대요? 그럼 됐어요. 나도 그런 아버지 필요 없어요. 그렇지만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예요.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 책임이에요? 임금님이 죄를 씻는 냇물을 정해 줬잖아요. 그 냇물에 몸을 씻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임금님의 어명을 거역하는 것 아니에요?

"모두들 이것으로 내가 목숨을 끊기를 바라겠지요? 그렇지요? 웃기지 말라고 하세요. 나는 안 죽어요. 절대로 죽을 수 없어요."

은장도를 들고 당차게 말하며, 은장도를 밖으로 멀리 던져 버린 화홍 아씨. 정말 이렇게 당시 위정자들에게 가문을 따졌다 양반들에게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당시 이렇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운명에 맞서는 여자들이 있었고, 이에 동조하는 집권자들이 있어 사회 분위기가 받아들이고 위로하고 품는 그런 사회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되돌릴 수 없지만, 오랑캐에 상처입고, 또 한 번 삶을 부인당한 조선 여인들의 삶이 너무도 마음이 아픕니다.

 화홍 아씨를 동생으로 받아 들이는 우직한 우마가 있어서 조금은 위로가 되었어요. 그래도 결말은 화홍 아씨와 함께 떠나니까요.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장 약한 자들임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실리보다 명분을 택하고, 가문의 이름 값만을 따지는 당시의 그 폐쇄적인 사회가 겪은 역사를 보고 배워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병자호란 때도 그렇게 아픔을 당했는데, 나라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더라구요.  그 뒤에 똑같이 겪고 있는 위안부 문제, 또다시 상처 입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생각나 마음이 아픕니다. 지나간 역사를 보고 깨닫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역사에서 배워야 하는데, 치욕의 역사 병자호란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주네요. 

작가가 그리는 중국의 농촌 풍경은 우리네 농촌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지만,

그 안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의 성장통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의 공통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이들과 강 또는 바다의 물이다.

그래서 마지막 옮긴이가  책을 소개하는 글의 제목을

 "물빛 세상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아름다운 성장기"라고 잡은 것이 공감된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중국의 생활 문화를 느끼게 한다. 나도 농촌에서 성장했는데,

우리네 농촌과는 다른 풍경에 머릿속은 주인공들의 행위를 주변 풍경 속에서 그려보느라 아주 분주했다.

빨간 호리병박으로 수영을 익히는 모습이나, 흙탕물소와 바다소를 비교하는 모습이나, 카라는 도구로 미꾸라지를 잡는 모습은 낯설었다. 특히 카의 사용 방법은 상상을 해 보려해도 잘 안 되는 것은 낚시나 족대 어항 같은 도구 밖에 모르기에 논에 카를 줄줄이 심고 다음날 건져내는 것도 신기했다.

4편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울림이 있었다.

<빨간 호리병박>의 뉴뉴라는 소녀와 완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는 소년 소녀의 성장 이야기라 소나기를 읽는 듯한 서정적인 느낌이 든다. 완의 아버지가 동네에 유명한 사기꾼이기에 동네 사람들이 그를 도외시하는데, 뉴뉴는 완과 친해지며 함께 여름을 나게 된다. 강을 사이에 두고 천천히 친해지는 그 우정이 금이 가는 것은 수영으로 강을 건널 수 있다고 말해 주는 완을 믿고 호리병박에 의지해서 도전했다가, 호리병박을 빼앗아 물에 허우적거리게 만든 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이었다. 뉴뉴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어른들이 보는 그 시선으로 완을 사기꾼으로 몰았다. 할머니 집에 갔다가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완의 행동의 의미를 깨닫게 된 뉴뉴는 급히 돌아와 완을 찾아가지만 완은 이사를 가 버렸다. 둘 사이의 오해, 그리고 그것을 되돌리고자 했지만 바꾸지 못한 채 끝나는 뒷 이야기는 여운이 남았다.

책 제목으로 뽑힌 <바다소>는 정말 가슴 뭉클했다.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성장한 열다섯 어린 소년은 할머니의 노쇠함을 발견하게 되고 일부러 시험을 망쳐가며 진학을 포기하고 할머니를 돌봐 여느 노인들처럼 노년을 보내게 하기로 결심한다. 학업을 위래 마련해 놓은 할머니의 돈으로 그는 바다소를 사 오기로 하고, 동네 어른께 부탁하라는 할머니의 말을 따르지 않고, 혼자서 바다소를 사 오기로 한다. 거센 바다소를 사 오는 길은 온갖 상처로 얼룩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집까지 돌아오면서 소년은 외양은 만신창이가 되어지만 내면은 강하게 성장한다. 끝까지 소년과 할머니에게 어떤 일을 생기지 않을까, 혹시라도 소년의 노력이 허망하게 끝나는 것은 아닌지 온갖 고생을 마주하며 인내하며 이겨내는 소년을 응원하면서도 조바심이 생겼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자신을 내버려두고 집을 떠난 어른 같지 않은 어머니와 다르게, 자신을 위해 버텨온 할머니를 바라보는 소년의 물기 어린 시선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할머니를

위해 자신의 어른 된 삶을 선택하는 소년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바다의 풀을 먹고 거칠게 자라 힘 세고 일 잘하는 바다소와 교감을 느끼고 바다소를 굴복시켰기에 앞으로 소년의 삶은 어려움이 닥치더라고 이겨낼 것 같다.

<미꾸라지>에서 사이가 좋지 않고, 맞지 않았던 두 소년이 겨우 마음을 터놓고 친해졌는데, 이사를 가게 되는 것도 여운이 남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고를 잃고 같은 사고에서 살아나 동네 어른의 무정한 말을 들으며 분을 품게 되고 삐닥해진 아추의 돌발 행동으로 마을에 온갖 사건이 끊이지 않는 마지막 이야기 '아추'는 앞의 세 이야기보다 더 여운이 깊었다. 아추 때문에 생명을 잃을 뻔 했음에도 아추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는 다거우의 모습은 그간 어른들의 삐닥한 시선이 아추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추를 보듬어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는 지나치게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고 상대가 받는  상처는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을 아추를 품지 못해 뒤늦게 아추를 찾아 헤매는 어른들의 부족함이 안타까웠다. 아추가 살아 있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처음 읽어본 "챠오원쉬엔"의 소설은 묘사가 뛰어나고 정서적 울림이 있었다. 

인물들의 겪는 행동이 이해가 되고, 응원하게 되는 마음이 차 오르는 이야기였다.

다른 작품들도 더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작가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