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우화인데 어쩜 이렇게 인생사를 날카롭게 잘 담아냈나 새삼 놀라게 됩니다.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는데 17세기와 다를 게 없는 인간의 본성이 느껴져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흑사병이 퍼져 수많은 생명이 죽고, 공포심으로 가득차 있을 때,
누군가는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하고, 군중의 공포심을 잠재울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과연 그 희생양은 누가 될까요?
지도자인 사자는 마치 지금의 대통령이나 시장과 같네요.
지도층의 우두머리. 먼저 분위기를 조장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하늘이 끔직한 재앙을 내렸으니,
우리 가운데 가장 큰 죄를 지은 자를 제물로 바쳐 하늘의 노여움을 잠재워야 우리 세상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큰 재앙이 닥치면 제물을 바쳐왔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꼭 그래야 한다면 자신이 제물이 되겠으나,
모두 자기처럼 자기 잘못을 고백하고 그 중 가장 큰 죄를 지은 자가 죽어야한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그 죄의 경중을 누가 판단할까요? 사법부? 법관?
우리는 그렇게 법이 정의로운 심판을 내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정치 권력에 영합하여 지도자의 눈치를 보고, 지도자의 비위를 마추며 권력의 시녀 역할을
자청하는 법. 여우는 마치 알아서 정치 지도자의 뜻을 파악하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그런 법관을 보는 듯 합니다. 최근에 사법 농단 사태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조차 드네요.
모든 법관이 이렇지는 않지만, 힘에 눌리거나, 이권이 개입할 때는 이렇게 알아서
시녀 역할을 하는 사법부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참 날카롭게 비판적으로 담아내고 있구나 싶어요.
영악한 여우에 빗댄 모습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구요.
우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그림이 잘 받쳐 주고 있어요. 프랑스 현대 미술을 이끄는 올리비에 모렐
그림이 큼직큼직해서 더 강렬하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힘 있는 자들은 모두 다 큰 죄에서 피해 갑니다. 사자처럼 그들도 용서 받지 못할 큰 죄는
지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역시도 힘 있는 자들이지요.
누군가는 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데, 과연 남은 자는 누가 될까요?
죄의 경중은 이미 의미가 없어지고, 여론을 몰아 마녀 사냥하듯 가장 큰 죄를 지었다는
자가 법정에 섭니다. 그리고 유죄 판결을 받는다는 이야기.
법정은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는 걸.
법정은 권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 편이냐 다른 편이냐에 따라....... 우화인데 씁쓸한 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힘의 논리가 계속 벌어지지 않게, 우린 정말 깨어 있어야겠어요.
정의로운 내부 고발자가 되고, 진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고, 힘을 하나로 모아
더 이상 권력이 왕 노릇하지 않도록 말이지요.
법관의 양심이, 정의가 지켜지는 사회가 되도록.
우화가 이렇게 마음에 와 닿기도 처음인 것 같아요.
아이들 보다도 세상을 경험한 어른들이 더 공감하고 경각심을 갖게 되는
어른이 볼 책이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