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옥수수를 먹다가 엄마에게
"예전에 할머니랑 옥수수 따러 가고 그랬는데.. 더워서 얼굴은 홍당무되고.."
그랬더니 엄마가
"언제?"
무심하게 물었지....
나도 무심하게
"초등학생때....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살때....종종 동네 친구들이랑 놀기도 했지만 할머니랑 옥수수 따러 가고, 할머니 따라 시냇가에 가서 노는 게 좋았어."
그랬더니 엄마는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한참후에 머웃거리며 입을 열었지..
"할머니랑 살때? 네가 왜 할머니랑 살았어?"
그 순간, 난 몽둥이로 머리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어. 그런 기분인 동시에 웃음도 나왔구....
"나참..엄마..기억 안나? 예전에 아빠 되게 아파서 오래 입원해 있을때 엄만 병원에서 살고 나는 외갓집에 살고, 은지는 친할머니집에 살고 그랬잖아. 난 그때가 아홉살이었는데도 기억하는 구만..엄마도 참...엄마 기억력이 참...."
하며 말을 끝맺었지...아마 엄마의 기억은 엄마가 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 모양이었어.
어쩌면 엄마는 그 힘들었던 기억을 지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 나도 이제 컸으니 그런 생각이 들어.
그때 나는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거든.
엄마는 밖에서도 종종 봤지만 아빠 얼굴은 병원에 가서만 병원 침대에 누워만 있는 아빠를 보는 아홉살짜리 어린 여자아이었던 나는 혼자 많이 울었어.
아빠가 그렇게 있는 것도 슬펐고, 엄마를 못 보는 것도 동생과 떨어져 있는 것도,,,
그 나이때는 햄이나 뭐 그런 거 좋아하는데 할머니께서는 그런 거 건강에 안 좋다고 반찬도 햄 같은 거 잘 안 싸주셨거든...그럼 다른 아이들 반찬과 비교돼 왠지 주눅이 들었어. 혼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많이 힘들었어. 어떨때는 버스 타기 싫어서 한 시간을 넘게 걸어간 적도 있었지. 한번은 버스 안타고 내가 걸어서 집까지 왔다는 사실을 안 할머니께 혼나기도 했었어. 위험하다고...말이지..
친할아버지를 만나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은지와 함께 병원을 간 기억도 생생해...까마득한 옛날이지만 왜 그런 기억이 남아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
어떤 날은 엄마가 나를 보러 학교로 찾아와 밖에 나가 점심을 먹었던 기억도 아직 생생해...
점심을 먹고 헤어질때 난 정말 많이 슬펐어. 엄마와 헤어지고 화장실에 가서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몰라.
학교 문을 두고 엄마는 학교 밖에, 나는 학교 운동장에 서서 손을 흔들던 그때, 난 이런 생각이 들었어,
엄마를 다시는 못 보면 어쩌지? 뭐 이런 생각...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될 거라는 웃긴 생각을 했지...
우리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산 시간은 길다면 길수도 짧으면 짧을수도 있는 일년이라는 시간이었지만 난 그때 훌쩍 컸던 것 같아. 엄마. 아빠에 대한 그리움..지금은 많이 티격태격하지만 그래도 귀여운 은지까지 많이들 그리워 하던 나날이었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내가 왜 그렇게 외로움을 탔는지...
그 시간들 때문이었을까?
할아버지께서 사고로 돌아가셨을때 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 건강하고 활동적이셨던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비보에 난 정말 죄스러웠지...시간이 지나 커가면서 왠지 할아버지께 애교를 부리거나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좀더 자주 찾아뵙고, 잘 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나는 죄책감이 들었어. 외갓집에서 살던 기억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때문인지 난 친가보다 외가를 더 좋아했지..
그동네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고, 지금은 누가 누구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일년이라는 시간이 내가 가장 자유롭고 자연과 어우러지면 살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 풀밭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낮 시간을 다 보내고, 흙을 만지고, 그렇게....
그래서 난 우리 가족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엄마도 걱정을 하잖아. 아빠가 아플까봐.
대단히 건강한 아빠이지만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정말 심하게 아픈 아빠라...
내가 대학교 1학년일때도, 엄마가 얘기를 안해서 몰랐지만 그때 아빤 또 큰 병원에 입원을 했었지..
얘기를 안해서 몰랐다가 집에 와서야 알았어. 집이 텅텅 비어 있었거든....
걱정할까봐 말 안하고, 입원해서 수술하고...
그때 대문에서 삼촌이 아빠와 엄마와 함께 오는 것을..
타이밍이 정말 기가 막혔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내가 하루라도 늦게 집에 갔다면 아마 그 일도 모르고 지나갔었겠지...
그때도 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원래 눈물이 많은 나지만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단 한번도 엄마. 아빠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지. 난 원래 되게 여린데 엄마와 아빠는 그 사실을 모르지^^ 독하다고 해 엄마는,,,,엄마는 나를 잘 몰라^^
내가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보니, 난 이제 시간이 흐르는게 조금은 무서워...
엄마, 아빠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는 게 무서워, 염색을 해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느새 흰머리가 또 생기고 또 생기고
그런 모습을 볼때 마다 난 두렵고 무서워, 엄마와 아빠는 두려운 내 이 맘을 알까?
엄마가 소화가 안돼 소화제를 달고 사는 것도 무섭고 아빠가 자꾸 작아지는 것 같아 그것도 무서워.
엄마, 아빠 잔소리를 들으면 그때는 나도 울컥해서 말대꾸하고 그러기도 하지만 그 뒤에는 얼마나 금방 또 후회하는지 아마 모르겠지? 날 독하디 독한 딸이라고 하니까...
생각해보면 지금 내 나이때 엄마는 벌써 나의 엄마였고, 아빠도 나의 아빠였어.
난 아직도 어린 아이 같은데, 엄마 아빠는 내 나이때 나의 부모님이 되었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지.
엄마와 아빠는 그렇게 위대한 부모님이신데 난 조금은 두려워,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다는게...
무언가에 얽매여 산다는게 아직은 두려운 마음이 들고, 공연히 어깨가 무거워 지는 것 같아.
엄마의 얼굴에 생긴 주름살과 엄마와 아빠의 키가 줄어드는게 시간 탓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동생들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그래서 너무 죄스러워!
빨리 내가 결혼해서 손자, 손녀 보고 싶어하는 아빠에게도 너무 미안해. 근데 곧 그렇게 해줄게...얼른..
난 아빠가 그렇게 아이들을 좋아하는지 몰랐어.
어느날 어떤 아저씨 손자를 안고 돌아다니는 아빠를 보고는 정말 많이 놀랐어.
그때 생각했지..얼른 손자를 안겨 드려야겠다고.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아.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건강하게만 그냥 이자리에 내 곁에 계속 있어줘요. 엄마. 아빠...
엄마,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못 살 것 같아요.
그러니 나도 할머니가 되고 손자가 생기고 내 손자가 장가를 가고 그때까지 내 곁에 나의 엄마로 아빠로 있어줘요.
어쩌면 이 부탁이 엄마, 아빠에게는 피곤한 일인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계속 쭈욱 이렇게 싸우기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여행도 많이 다니면서 행복하게 살기로 약속해...
제발 아프지마. 엄마,아빠..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될때까지 나의 엄마, 아빠로 있어줘. 나는 영원히 엄마 아빠의 딸로 있을게..
지금은 철부지 딸이지만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어쩌면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때 구미가 당기지???ㅎㅎ
그러니 나의 곁에 계속 있어줘요. 부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