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되면 어머니는 동지가 지나기 전 다음 해의 운세를 봅니다. 아마도 어머니에겐 내년을 준비하는 과정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가끔 저에게 해주시는 내년도 운세 말씀을 반신반의하며 듣긴 하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습니다. 그럴때 마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운세라는 건 비 올 날씨를 대비해서 우산을 가져가는 것과 같단다. 비를 안 맞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조금은 피할 수 있게 대비하는 것이지."

      

이 책 ‘사주 혁명' 역시 같은 기대로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저자는 첫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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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운명은 없다. 지금 내가 어떤 생각과 행동,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서 미래가 결정된다."

 

무조건적인 운명론자들만 사주에 관심을 갖는것은 아니겠죠. 물론 재미만을 위해서 찾아보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저자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강조합니다. 특히나 요즘 같은 과정보화 시대에 너무나 많은 선택지들 중에 무엇을 택할것이냐는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선택이라는 하나하나는 사소한것에서부터 삶을 좌지우지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경중이 천차만별이거든요. 게다가 선택이란 우연적 요소을 절대적으로 배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의 너무나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결정해 버리곤 하죠. 그래서 사주의 목적은 나를 먼저 이해하고 나에게 가장 알맞은 선택을, 적절한 순간에 해 낼 수 있도록 선택에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사실 '사주 혁명'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초보자도 쉽게 사주풀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긴 했습니다만 역시나 세상에 쉽게 가는 지름길이란 없나 봅니다. 사주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초보자가 읽기에는 조금 버겹습니다만 조금이라도 자신의 운명과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는 되지 않나 싶습니다.

 

최근 들어 퀴어 문학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많아졌습니다. 2019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의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을 읽으면서는 어쩌면 이제는 퀴어 문학이라는 단어로 소설의 주제를 한정 짓는 것을 그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딸에 대하여'를 읽으면서는 관계라는 것이 늘 그렇듯, 두 사람 만의 문제를 벗어나 파트너와의 관계가 그 주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번 책 '괴물 장미'를 읽으면서는 그동안 억눌려 왔던 성역할과 폭력에 관한 역사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괴물 장미' 속의 세계는 중세의 어디 즈음을 우리들 세상 속에 끌어다 놓은 것 같습니다. 신비한 마법과 마녀사냥, 사회의 계급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기술과 과학은 발전된 조금은 기술과 사상의 발전의 불균형이 심한 사회입니다.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여자들의 모습은 다양하게 그려집니다. 폭력과 차별, 억압 속에서 고통 받는 메리제인과 이 고통을 선체험했기에 이를 구원하고픈 바네사와 리사. 하지만 문제는 메리제인의 구원이 방법이 바네사와 리사간의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대에 있어 정공법이 늘 옳은 것만은 아니듯이 효율성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겟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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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가 아빠한테 맞고 있는 걸 봤어요.' 라고 말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아버지로부터 물리적 폭력을 당한 적은 없었지만 어머니가 폭행당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보아오면서 심리적 정서적으로 폭행 당한 것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그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의 괴물장미는 무었이었을지 계속 생각했습니다. 

 

뱀파이어와 마술, 판타지 속 요소들로 가득한 괴물 장미 속의 여성들은 초자연적인 힘을 빌렸을 수는 있으나 어쨋건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단죄를 시작합니다. 조금은 폭력적이면서도 통쾌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복수가 책을 다 읽고 놓는 그 순간까지도 저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폭력의 강도 때문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속에서만 가능한 현실의 벽이 느껴졌기 때문일까요.

 

현실은 늘 녹록하지 않습니다. 명쾌하지도 않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에게 문학이라는 것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력적인 중세풍의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여자들만의 끈끈하지만 처절하도록 비극적인 이야기로 대리만족을 해보는 것도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괴물장미퀴어문학

책을 고를 때 '10대들을 위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혹시 망설이시나요? 그런 책은 어린이나 혹은 청소년들이 읽는 거라고 성급하게 판단하지는 않나요? 물론 그런 수식어가 붙은 책은 삽화나 사진도 많고, 활자도 크고, 책의 두께도 훨씬 얇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읽기에 편하다고 나쁜 책이거나, 읽기에 쉽다고 내용도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초반 1,2권 정도와 최근의 '산사순레편'을 읽어보았습니다. 이제는 해외로까지 진출하여 중국과 일본편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라 전권을 다 읽어보겠다고 시작하는 것이 꽤나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는 완독해야지 싶은데 워낙 분량이 많다보니 쉽게 손이 가지 않는군요.

 

하지만 최근의 신작 '10대들을 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조금은 덜 부담스럽게 시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본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한 책에서 한 지역을 모두 다루지 않습니다. 좀 분산되어 있는 편이랄까요. 저자의 이야기처럼 처음에는 이렇게 장편으로 쓸 계획이 아니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 그러다보니 장점이라면 저자와 함께 길을 따라가며 여행하는 것처럼 느끼는 맛이 있긴 합니다만 저같은 한국지리 초보자, 여행 초보자들은 같은 책에서 같은 지역을 한번에 다루어 주면 좋겠다라는 볼멘 소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책 '10대들을 위한 문화유산 답사기'는 한 지역을 아우르며 정리한 것이라 오히려 저같은 초보자들이 읽기에 훨씬 편합니다. 게다가 첫번째 장소가 수학여행지로 유명하며, 누구든 한번쯤은 가봤을 경주로 시작하므로 훰씬 친근합니다. 게다가 저같은 문화 초보자들을 위한 중간 코너도 있습니다. 불상의 종류나 한국, 중국, 일본의 종 모양 비교 등 문화 지식도 담겨 읽기에 초보자들에게 매우 적합합니다.

 

단순히 청소년용 도서라고 넘겨짚지 마시기 바랍니다. 독해력과 지식이 부족하다면 언제든 청소년 도서를 집어 들 수 있는 마음의 자세, 그런 자세야 말로 진짜 책 읽는 태도가 아닐까요. 

 

 

10대들을위한나의문화유산답사기, 경주, 유흥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