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이중국적을 가지고 태어난다. 건강한 나라와 병의 나라에 동시에 속한 시민으로서의 이중국적이다”

수전 손택의 말입니다. 건강한 몸과 아픈 몸이라는 이중국적을 모두 획득한 경험으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미비하나마 어림짐작 정도는 해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 어림짐작이라는 것이 고작해야 고통받은 사람들의 경험을 읽으며 공감하는 정도라고 해도 말입니다.

'희망이 삶이 될 때'는 희귀병에 걸린 예비 의사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 나갔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때는 미식축구팀의 쿼터벡으로 활동할 만큼 왕성한 육체적 에너지를 보이던 한 사람이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투병생활을 어떻게 견디고 또한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 담당하게 이야기해줍니다.

이 글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파젠바움은 뇌종양으로 어머니를 잃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의학으로 진로를 변경했으나 이번엔 희귀병이 자신을 공격하고야 맙니다. 그의 투병기를 읽으며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은 헤어졌던 애인하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있을 즈음에 발병했던 네 번째 투병기입니다. 왠지 영화라면, 그리고 소설이라면 이제 그만 발병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때도 되었건만 현실이라는 건 소설 속 보다도 더 잔인하게 흘러갑니다. 절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고 다섯 번째까지 발병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도 이겨냅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저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살아나갈 뿐이죠.

이 책의 저자가 놀라운 이유는 자신의 병을 극복하려는 의지보다도, 삶에 대한 끝없는 도전보다도, 자신을 강타하고 있는 희귀병인 캐슬만병에 대해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연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해 '나의 비극적 상황'을 '우리를 구원해 줄 희망'으로 전환시켰다는 것이지요. 단순히 개인적인 역경 극복의 통속적 이야기에서 벗어나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질병의 통제와 해결 방안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한 그의 노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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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은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미술이 어떻게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를 거쳐 모더니즘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정리한 책입니다. 제리코에서부터 호지킨에 이르기까지 17명의 화가를 중심으로 미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펼쳐 나갑니다. 어떤 챕터는 작품을 중심으로 '1장 제리코 : 재난을 미술로'처럼 이야기를 펼치고 어떤 챕터는 화가를 중심으로 ' 3장 : 쿠르베 : 그렇다기보다는 이렇다' 처럼 이야기를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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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읽기에 편한 책도 아닙니다. 미술적인 기법이나 미술 지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회화의 구도가 주는 느낌이나 그림에 얽힌 이야기, 혹은 화가가 지닌 세상을 보는 눈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 내어 주기에 전문 서적 느낌은 아니죠. 게다가 미술작품이나 화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특별히 현학적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줄리언 반스 특유의 건조하면서도 분석적인 문체를 따라가기가 수월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미술작품과 각 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깊고 다양한 측면에서 정리했다는 것에서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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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책을 빨리 읽는 속독, 여러 책을 많이 읽는 다독, 한가지 계통의 책만 읽는 계독, 소리내어 읽는 음독, 필요한 부분만 가려 읽는 발췌독, 그리고 단어와 낱말의 뜻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자세히 읽는 정독. 독서방법에 비유하자면 줄리언 반스가 그림을 보는 방법은 정독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줄리언 반스가 그림을 보듯이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은 다시 한번 정독해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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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를 읽고 있던 저를 발견한 동료가 놀란 눈으로 ‘어머, 무슨 책 제목이...’ 하고는 저랑 눈이 맞추쳤습니다. 그리고는 둘이 동시에 빵 터져서 웃어버렸습니다. 차마 하지 못한 뒷말을 우린 둘다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 무슨 책 제목이, 나 아는 사람이 썼니?’ 혹은 ‘어머, 무슨 책 제목이, 내 얘기랑 똑같니?’였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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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만 읽었을 때는 작년에 특히 뜨거웠던 가벼운 자기계발서 에세이 느낌이었다랄까요. 예를 들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든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혹은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와 동류라고 성급히 판단해 버렸습니다. 읽고 나면 고개는 끄덕여지지만 그다지 삶의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 읽기 쉽지만 잊기에도 쉬운 류 책이라고 예상을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제 독서모임 지인들 중에는 '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같은 경우, 아직 사회 생활을 해보지 않은, 혹은 사회초년생, 청소년, 특히 여학생들은 '무척이나 유용했으며 속이 다 시원하다'라는 좋은 평을 들었던 책이라는 말씀을 반드시 말해 둡니다.

점심시간에 밥도 안먹고 간식으로 때우면서 책을 펼쳐 들고 읽던 저는 혼자서 킥킥 대다가 동료들에게 또다시 발견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책을 읽길래 그렇게 재미있어 하느냐'는 호기심을 유발시켰고, 본의 아니게 이 책을 사무실에 전파하는 선구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직장 동료들을 이 책에 더욱 열광시킨 ' 다정도 체력'이라는 첫 챕터 덕입니다. 얼마 전 타부서의 부장님이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병가를 냈습니다. 워낙 교류가 뜸한 분이기도 했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분이라 정확히 왜 병가를 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늘 조심스러운 성품에 예민한 분이셨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지만 남에게 선의도 베풀지 않는 그런 류 말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병가를 내면서 병가 기간 동안의 후임이나 대리자를 지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문제가 발생되었습니다. 자신의 직위와 권리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해당 업무들은 부서의 부원들에게 n/1로 분담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만 부서원들이 과외로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편향된 판단 때문에 권리와 책임이 같이 가지 못하면서 모두가 어려운 처지에 빠진지라 해당 부서원들의 부담은 매우 커졌습니다. 게다가 처음에는 병가를 낸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원망으로 변해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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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도 체력이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인성 파탄 날까봐 운동 하는 거다.'

'체력이 인성을 만든다.'

등의 인생 문장이 포함된 첫 챕터 '다정도 체력'을 읽은 몇몇 동료들은 '나 이거 적어놔야 겠다' 라는 등의 거센 리액션에서 시작하여 사무실내에 같이 읽자 열풍이 불었습니다.

이 운동에서 저 운동으로 방황하는 운동 노마드부터, 회원님 중 어디에서 존재하는 인싸와의 적당하고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까지. 또한 운동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생리의 불편함. 딸의 체중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엄마(대학만 가면 너의 체중 앞자리를 바꿔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저를 반성했습니다). 여자들의 운동이란 체력향상이 아니라 다이어트와 동의어가 되는 우리 사회. 학교에서 운동장이 남학생들의 전유물이 되는 상황. 마르지 않은 여자는 관리하지 않는 여자라는 편견에 찬 의식.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라보는 나에 구속되는 헬스장의 나. 다이어트를 하는 한 어느 쪽이든 나의 몸을 망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다이어트 상황.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한 운동과 연관 지으면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에 웃으면서도 깊이 공감했습니다.

물론 이와 비슷한 류의 에세이들은 많이 접해봤을 수 있습니다만 이 책의 저자에게서 친근감을 느껴지는 것은 운동 6년차의 비슷한 경험을 해본 '대한민국의 운동 좀 해본 여성'으로서 느낄 수 밖에 없는 진정성과 동질감입니다. '이분 진짜로 대한민국에서 운동 좀 해보셨구나', '그저 운동만 한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운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 보면서 해봤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알 수 있는 것은 '진정성'입니다. 진정성이란 직접 해보지 않으면, 내가 겪은 일이 아니면, 아주 미묘한 차이로 절대 표현할 수 없고, 절대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니까요. 진짜는 진짜를 알아보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 책 최고의 매력은 저자의 진정성도,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페니미즘적 주제도 아닙니다. 제가 뽑은 매력은 바로 저자의 문체! 어찌나 촌철살인 표현과 유머코드가 저와 꼭 들어맞는지 읽는 내내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끝나가는 점심시간에도 책을 놓지 못해 전전긍긍해 할 수 밖에 없었죠.

운동과 여자 라는 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유쾌한 운동 에세이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는 단연 올해 읽은 최고의 에세이집입니다. 아,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지난번 글에서도 알려드렸지만 에세이는 제가 제일 마지막에 선택하는 종류의 책입니다만.

오늘은 책 제목을 보고 저와 함께 눈맞추고 웃음 터뜨리던 동료에게 책을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그분, 제가 다이어트 댄스에 입문시켜 드렸거든요. 한동안 저처럼 운동 노마드셨는데 이제 드디어 저와 함께 정착하셨습니다. 그분이 책을 다 읽고 어떤 평을 내 놓으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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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같이 운동하러 꼭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