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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말하자면 ‘불편함’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치부를 샅샅이 알고 있고 그것을 나에게 꼬치꼬치 지적해 준다면 느꼈을 그런 감정 말이다. 22살의 한국 개신교 미혼여성인 나는 지금껏 살면서 ‘결혼’이란 제도를 믿지 못했고, 따라서 내 인생에 결혼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었다. 그것은 나 역시 ‘엄마’가 된다면 ‘나의 나 됨’과 ‘나의 여자 됨, 또는 엄마 됨’ 속에서 미치거나 아파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재의 문화적 당연들 속에서 ‘나의 나 됨’을 포기하게 만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부하고 도망가고 있는 나에게 더 이상 도망가지 말고 맞서 싸우고 그 속에서 무언가, 작더라도 희망의 실마리를 찾아보라고 얘기하고 있다.

책은 총 4부로 이뤄져 있는데, 먼저 1부에서는 한국 개신교 여성으로써 자신의 꿈을 접고 세 명의 자제를 길러내면서 무한히 아파했던 저자의 어머니와, 직업과 육아 사이 양자택일의 선택권을 부여 받았지만 ‘택 1’이 아닌 ‘합 1’을 하기 위해 미쳐가고(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혼란의 현 시대에서 여성들에게 요구 하는 이중적 문화적 당연, 즉 탈성화된 전문적 개인 이면서 동시에 가족에게 안식을 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요구하는 현재의 문화적 전제들로 인하여 저자를 포함한 많은 현대 여성들이 겪고 있는 뒤틀리고 엉킨 모성 경험에 대해 얘기하며 앞으로 나아갈 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부에서는 한국 여성들의 다양한 모성 경험을 6가지 부류로 나누어 각 유형에서 저자가 만난 여성들을 예시로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 중 에는 ‘엄마 됨’, 또는 ‘모성’을 신이 내린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무한한 사랑과 모성으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여성들도 있었고 반대로 ‘엄마 됨’, 또는 ‘모성’의 감정에 억눌려 있던 ‘나의 나 됨’을 문득문득 발견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자신의 모성이 부족하거나 결여되었다고 보는 여성들도 있었다. 물론 여기에서는 유형을 나누어 설명했지만 이 모든 유형의 엄마들이 느끼는 감정들, 또는 경험을 저자가 모두 느끼고 겪었다고 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들 모두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나 역시 ‘엄마 됨’과 ‘나 됨’을 동시에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로 인해 결혼과 출산에 회의적인 감정을 가지면서도 우연히 발견하는 나의 모성에 놀라는 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3부에서는 2부에서 다루었던 뒤엉킨 모성 경험의 실타래를 ‘엉키게 만든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단순히 실타래를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매듭이 지어지고 엉켜진 이유를 살펴 ‘풀어’보기 위해서이다. 작가는 유교적 전제와 기독교적 신념(그 중에서도 청교도적 결혼관) 그리고 현대적 제도장치가 뒤엉켜 이러한 실타래를 형성했다고 본다. 현모양처, 즉 삼종지도를 따르는 ‘전형적인 전업주부’를 당연시 여기는 유교적 전제 (그것도 기껏해야 조선시대 이후에 생긴 문화적 당연이다.)와 천하디 천한 여성을 고귀한 아내로 맞아주는 ‘척’은 했지만 여전히 남녀를 기능적으로 구분 짓고 여성에게 모든 사적 영역에서의 책임을 떠넘겨 버린 청교도적 전제들, 마지막으로 ‘선택’과 ‘자유경쟁’의 이름으로 여성에게도 ‘탈성화된 전문적 개인’이 되기를 요구한 현대 사회의 전제들,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집에서는 따뜻한 국과 밥을 해놓는 ‘여성, 또는 엄마’로써 해야 할 모든 일을 하면서 사회(또는 직장)에서는 완벽한 직업인(남자와 전혀 다르지 않은)으로 행동하며 ‘나의 나 됨’을 추구하기를 원하는 이중고를 여성에게 가하고 있다.

4부에서는 이 모든 엉킨 실타래들을 풀기 위해서는 ‘다수’에 의해 문화적 전제들, 즉 지금 받아들여지면서 여자를 미치거나 아프게 만드는 현재의 taken-for-granted가 바뀌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비로소 ‘모성’이 엄마만의 전유물이자 구속물이 아니라 아빠를 포함, 성인들이 함께 공유하는 의무이자 책임이 되는 것이다. 즉, 바로 지금 저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여성이든 남성이든, 미혼이든 기혼이든, 또는 기독교 신자이건 그렇지 않건)가 이렇게 뒤엉켜 짜인 실타래 대신 새로운 문화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여성이 더 이상 선택에 기로에 서지 않게 하는) 실타래를 짜야할 필요를 말하는 동시에 그러한 사회가 온다면 그때야 정말 ‘하나님 나라’가 열릴 것 이라는 소망과 바람을 담아 글을 마무리 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 아니 거의 전부를 기독교인으로 살아오면서 저자처럼 나는 많이 궁금했다. 과연 하나님이 여자는 이렇게 살고 남자는 저렇게 살라고 만들어 놓으신 걸까? 그래서 엄마는 항상 일하고 들어오셔서도 빨래와 청소를 하시고 아빠는 커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봐도 그것 때문에 부부싸움이 난 적은 없었던 걸까? 교회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설교를 들을 때도 왜 ‘남편은 아내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주제로는 얘기를 하시지 않으시는 건지 목사님한테 묻고 싶을 때가 많았다.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속에 생기는 궁금증을 따라 들어가면 내가 거룩한 주님의 말씀을 다 부인하는 것처럼 되는 것이 무서워서 깊게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함께 나는 이상하다고 여겨지면서도 파보지 못했던 그 의문들을 파내려 갔다. 처음에 말했던 그 ‘불편한’ 감정으로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내가 얻은 감정은 ‘떳떳함’이다. 뒤엉킨 문화적 전제를 의심하는 것이 너무나도 죄스러웠던 것이 나의 잘못된 신앙관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문화적 전제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던 그 모든 문화적 당연들에 나는 이제 저자의 말처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울 것이다. 다음 세대(빠르다면 내 세대)의 나와 같은 여성들이 더 이상 나와 같은 이유(뒤엉킨 문화적 전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죄스러워 했던 것, 현재의 잘못된 문화적 전제들 속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를 포기하는 것)로 아파하거나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