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알라딘 중고서점을 서성이다가 표지가 황금색으로 번쩍번쩍한 것이 내 눈에 띠여서 냉큼 집었다. 내가 좋아하는 성장 소설이다. 작가 소개를 보니 인천 부평에서

태어난 주한미군과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이 대목에서 묘한 끌림을 느끼고 구매했다. 책의 시작은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 된다. 하인즈 인수 펜클이란 이름에서 ‘인수’가 한국 이름으로, 한국에서 사는 내내 그는 ‘인수’로 불린다. 열 셋? 거의 사춘기 무렵까지 한국에서 살았으므로 지금도 한국어가 무척 유창할 듯하다.

 

  인수의 가족은 패전 후 자살한 일본 군인의 집을 싸게 구해서 세 가족이 살게 된다. 인수의 이모가족과 인수네, 그리고 시골에서 올라온 간난이 누나까지. 이 간난이 누나가 미군의 애를 가졌다가 버림받고 인수네 집 마당에서 목매달고 자살하는데 마음이 아프더라. 열 살도 안된 어린 인수가 그 나쁜 미군 죽여 버리고 싶다고 분노하는 대목이 오히려 더 안쓰러웠다. 사리분별도 못하는 애도 미군이 나빴다고 인식하는데, 간난이 누나가 죽고나서야 집 밖에 기웃대다가 간난이 죽음에 마음 아프다고 거짓 눈물 흘리는데 참 가증스러웠다. 여자로서 느끼는 수치심과 함께 당시 미군들의 한국인을 얼마나 우습게 봤는지 알겠더라. 사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까지 나는 ‘아, 간난이가 미군이랑 결국 결혼하기로 한건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대목.

 

‘이 다음에 크면 너는 누구에게나 동정심을 가져야 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어. 하지만 이 말 꼭 기억해야 한다, 응? 사람은 인정이 있어야 하는 거야.’ ‘착한 사람이 돼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거야. 인정이라는 말 기억해, 응? 동정하는 거말야.’ (p.36)

 

인정, 정. 한국인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인 ‘정’. 초코파이 광고할 때 그 '정' 말이다.

 

  소설 속에서 외삼촌은 인수에게 여러 한국의 전통 설화들을 얘기해준다. 가끔 좀 뜬금없이 이 내용이 이렇게 길게 다뤄질 만한가 싶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건 ‘영문’소설이고, 또 우리내 정서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이 주 독자니까 라고 생각하니까 이해가 됬다. 다 아는 내용을 소설 속에서 또 읽자니 조금 지루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수가 다양한 사건들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성장해나가는 부분. 성당학교에 다니면서 처음으로 혼혈이라는 이유로 놀림을 받고 학교를 뛰쳐나온다. 그전까지는 미군들과 결혼한 여자들이 사는 마을에 살았기에 차별이란 것을 딱히 받아본 적이 없었기에 더욱 그 상황이 이해가 안됐던 것이다. 자신을 놀리던 한국인 남자아이를 때려눕혔지만 오히려 수녀님께 혼나는 건 자기 혼자만이고, 아이들도 모두 범인으로 자신을 지목한다. 결국 학교를 나와 논두렁에서 혼자 서럽게 우는 대목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지만, 자신의 모국에서 단지 ‘외모’만으로 차별받아야했던 당시의 많은 미군 2세 혼혈들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혼혈아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어려운데, 1960년대는 얼마나 더했을지 가히 상상도 안된다.

 

  미군과 재혼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아줌마. 인수는 자신의 어릴 적 친한 친구인 흑인 혼혈아 제임스를 그렇게 잃는다. 또 지금의 흑인 남편과 애가 생기지 않자 클럽에 가서 남편과 닮은 흑인과 관계를 맺어 애를 가지려는 여자. 용산 미군기지에 있는 학교 내에서 한국어를 쓰다가 맞는 제임스와 인수. 우물에 빠져 죽은 아이를 찾는다고 그 우물에서 자살한 여자. 아이스크림 값을 지불 안했다가 아이스께끼 소년 패거리한테 쫓겨 다니던 일. 판문점. 통금사이렌. 한쪽 팔이나 다리를 잃고 구걸하러 다니는 상이군인들. 당시 어려웠던 격동의 시대 속에서 어쩌면 비극도 점철된 그 속에서 평범한(?) 한국인 소년이 바라본 우리내 일상이자 삶이다. 단지 배경이 부평 미군기지, 그리고 용산 미군기지 일 뿐. 언제 이렇게 생동감 있게 미군들에 대해서 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까. 아무튼 성장 소설은 너무 좋다. 내가 물을 준 식물이 발아해서 쑥쑥 크는 느낌이랄까. 제임스가 저렇게 죽었다고 했을 때는 좀 충격이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저렇게 까지 담담하게 잔인해질 수 있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식의 죽음은 아무렇지 않게 선택할 수 있는 건가? 그 과정에서 괴로워하고 번민했을지도 모르지만 과연 합리화 될 수 있는 지. 저건 범죄다.

 

  이렇게 한국 문화를 잘 아는 외국인이 쓴 소설은 이전에는 읽어본 적이 없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헤밍웨이 문학상을 타지는 못했어도 최종 후보까지 들었던 작품이니만큼 작품성도 있다. 제목이 고스트 브라더인 이유는 작가의 위에는 사실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엄마의 또 다른 아들이 있었는데, 작가의 아버지가 결혼하면서 씨 다른 아이를 싫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아원에 보내져 결국은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이 또한 시대가 낳은 비극이리. 당시 고아수출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 마지막에 소설은 새로운 세계 ‘미국’으로 날아가며 끝이 난다. 자신의 고스트 브라더, 즉 미국에 있을 형의 영혼과 작별 인사를 하며 한국에서의 추억을 뒤로 한 채 새로운 세상으로 발돋움 하는 것이다! 끝이자 시작이다. 이제 겨우 일막이 끝났을 뿐이지. 그 뒤의 삶이 궁금하지만 후속작은 없다. 이 책도 절판됬구나.

매주 토요일 학원 끝나고 강남 알라딘에 가서 여느 때처럼 영미문학쪽을 서성였다.

 책 편식은 고쳐야 되는데 그래도 전공이 영문학이니까!라고 나름 합리화.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써있는데 가격도 상,하 두 권해서 삼 천원이라 괜찮겠네 하고 샀다.

내용을 슬쩍 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자전적 소설. 특히 성장소설이 가장 좋다. 소설 속 인물들이 성장하는 내용을 보면 내 자식인 것 같아서 막 뿌듯하고ㅋㅋㅋㅋ

  

  내용은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아일랜드인 부부 밑에서 태어난 소설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프랭키’. 경제력 없고 무능력하고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와

어떻게든 아이들을 먹여보려 구걸도 마다않는 어머니 안젤라. 속도위반으로 사고쳐서 낳은 아이가 프랭키이다. 미국에서 먹고 살 길이 없자 그 길로 아일랜드로 돌아가지만 고국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사실 엄마인 안젤라도 계속 후회하지만 아일랜드보다는 미국에서 사는 게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어린 프랭키의 눈에도 자신의 집은 가난하기만 하고, 다 찢어진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갔다가 놀림받는다. 비만 오면 일층 집은 물에 잠겨서 2층 (이탈리아라고 부른다. 아이의 순수함ㅎㅎ)으로 가족들은 대피하고, 열 네번째 계단의 천사가 아이를 가져다준다는 아빠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무용학원에 가기싫어서 엄마한테 거짓말하고. 나는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너무 진솔하고 재미있고 또 귀여웠는데, 다른 사람들 리뷰 찾아보니까 이런 내용이 썩 기분 좋지는 않았나보다. 초반부에 한심하고 가정은 하나도 생각안하는 정말 진짜 이렇게 무책임한 가장이 있어도 되나 싶을 때는 나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집이 없어 혼자사는 남자 집에 얹혀살면서 엄마가 몸을 내주거나 하는 걸 아들인 프랭키는 어땠을까. 작가도 인생의 황혼기이기에 그래도 이렇게 어떤이들은 ‘치부’라고 할 수 도 있는 것을 이렇게 담담하게 아이의 시선에서 고백했겠지. 남의 집 전전하고 외할머니와 친척들에게 괄시받고. ‘안젤라의 재’ 마지막에 프랭키는 결국 돈을 모아 힘든 시절을 보낸 아일랜드를 뒤로하고 희망의 땅 '미국‘으로 간다.

  

‘안젤라의 재’에서 ash는 뭘 의미하는 걸까! 다 타버리고 남은 재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힘든 삶으로 다 타버린 그녀의 시간과 젊음을 의미하는 거려나?

가족들을 위해 그녀의 인생 내내 타오르기만 하다 남은 재?

가족들을 위해서만 살다 결국 자신은 재밖에 안남은 걸까.

  

최근 읽은 소설들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시대적 배경도 배경이니만큼 우리나라 전후에 이랬을라나 하는 생각에 공감도 되고, 또 아이의 시선이기에

너무 순수해서 상상해보면 기분 좋아진다. 작가는 미국으로 이민간 뒤에 30년 넘게 작문 교사로 일하다가 은퇴와 동시에 낸 책이 ‘안젤라의 재’라고 한다.

이 책이 발간 직후에 이렇게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퓰리쳐상’ 수상이라는 명예까지 얻을 줄 누가 알았을까. 예순 여섯살에 은퇴한 선생이 낸 책이 미국의 문학상은 다 휩쓸고, 작가 본인도 이러한 성공이 놀랍기만 하다며 자신은 두 번의 인생을 살았다며, 너무 늦었다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더라. 작가가 얼마나 어렵게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건지 책을 읽은 나는 알기에 그저 대단하다고 밖에. 2009년에 타계하셨고, 이 책의 후속인 ‘그렇군요’ 와 교육관련 책이 있다고 알고 있다. 더 많은 좋은 작품이 나오지 못해 아쉽다. 그렇군요’도 소장하고 봐야겠다. 한동안은 아일랜드 '리머릭'이 머리 속에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놈의 리머릭 리머릭 리머릭. 폐병에 걸려서 죽게하는 그 빌어먹을 놈의 습기가 올라오는 강이 있는 그 리머릭! 언젠가 꼭 가보고싶다

'비는 코를 콧물샘으로 만들었고, 폐를 박테리아 빨아들이는 해면체로 만들었다.'

이번 방학에 내 목표는 헤밍웨이 책 다 읽기다. 지금까지 읽은 건 이제 세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거라’.

그 중 제일 재밌게 읽은 건 ‘무기여 잘 있거라’이려나. 헤밍웨이의 소설은 문체가 짤막짤막해서 읽기 편하고 대화가 많아서 좋다. 나는 내용을 알고 보면 재미없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간략한 줄거리도 보지 않고 바로 책을 읽는다. 이 책 역시 그렇게 읽었는데, 중간 중간에 이해가 안 되서 조금 애먹었다. 스페인 내전이 배경인지라, 파시스트니 공화당이니 누가 어느 편이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후 맥락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헤밍웨이가 원래 이 전까지는 자신의 소설에 정치적인 내용을 담지 않았는데 이 소설을 기점으로 해서 다루기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스페인에서 내전이 났는데 작가가 가만있을 수 있었을까. 헤밍웨이 소설에서는 스페인이 빠지지를 않는데 도대체 스페인을 왜그렇게 좋아했던 건지 궁금하다. 검색하면 나오려나.

 

  책의 내용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인 ‘로버트 조던’이 산 속 게릴라원?들에게 다리폭파 협조를 구하게 된다. ‘다리 폭파’라는 한 가지 목표를 갖고 힘을 모은 이들의 단 72시간의 기록인데도 헤밍웨이는 무려 장편소설로 책 한권분량을 냈다. 단지 4일 동안의 기록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실 소설 중반까지는 지루했다. 사건 전개도 지지부진하고. 중후반부에 말을 탄 군인이 정찰을 와서 조던이 쏴죽이게 되는데 이때부터 사건은 급류를 타고 흘러간다. 특히 다리 폭파하는 챕터에서는 꼼짝도 않고 허리 숙이고 앉아서 읽었다. 인물들이 조금 많이 나오는데, 주인공 로버트를 중심으로 게릴라원들이다. 소설 속 중반까지 다른 인물들과 의견을 달리하며 홀로 반대하던 ‘파블로’는 협력하는 가 싶더니 결국 배신한다. 로버트의 폭파장치의 기폭제?를 가져다가 버리고 결국 몇시간 뒤에 캠프로 돌아온다.

 

‘난 혼자가 되는 것은 싫어 알겠나? 어제 종일 나는 모두를 위해서 혼자서 일했지만 조금도 쓸쓸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젯밤에는 말이야, 아아, 난 어찌나 비참해졌는지....’

 

다른 멤버들을 버리고, 옳다고만 여긴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지만 조금도 후련하지 않고 오히려 비참함을 느낀 것이다. 그 전까지 다른 구성원들을 위해 자신의 ‘할 일’을 위험한 줄 알면서도 행했을 때는 쓸쓸하지도, 비참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결국 파블로 자신의 행위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캠프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 표석 뒤에 철사 고리를 쥐고 또 하나의 고리를 손목에 감고 쭈그리고 앉아 길바닥의 자갈을 무릎 밑에 깔고 있으니까 쓸쓸하다든다, 외롭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는 철사와 다리와 조던이 장치한 폭약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지금 그는 다리 밑에서 일하고 있는 조던과도 한 몸이며 모든 전투와 공화국과도 한 몸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흥분은 없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종요했고 햇빛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의 목과 어깨에 내리쬐고 있었다. 고개를 들고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강 저 쪽에 솟아 있는 산의 경사면이 보였다. 행복하지는 않았으나 쓸쓸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위험한 일인 줄 알면서도 이 일이 나라를 위한 일인 것을 알기에, 또 자신의 역할이 다른 모두를 위해 중대함을 알았기에 안셀모 영감은 전혀 쓸쓸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던 것이다.

 

  내가 볼 때 조던은 누구보다 합리주의자인 '척‘ 자신의 내면을 위장하려 하지만, 본심은 누구보다 감성적인 사람이다. 되도록 이면 살생을 하지않으려 하며, 파블로와의 갈등이 극에 치달아 그를 죽이려고 결심했을 때도 결국 그는 파블로를 죽이지 않는다. 그 전까지도 누군가 파블로를 ’대신하여‘ 죽여줬으면 하고 바라는 대목에서 확실히 느껴졌다. 또한 안셀모가 죽었을 때도 누구보다 슬퍼하고 분노했던 인물도 ’조던‘이다. 안셀모의 시체를 보며 조던은 회의감에 휩싸이고 내면 갈등도 고조된다.

 

‘시체가 된 노인이 왜 이렇게 작아 보일까, 하고 조던은 생각했다. 이렇게 작은 백발 노인이 어떻게 그런 무거운 짐을 질 수 있었는지 이상했다.’

‘다리를 폭파하고, 얼굴을 파묻고 있다가 문득 얼굴을 들고 안셀모가 죽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의 실망감과 솟구쳐 오르는 분노와 증오가 아직도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그의 내부엔 그들이 계속 군인이기 위해 군인들이 증오로 변질시켜 버리는 그 슬픔에서 오는 절망도 있었다. 모든 일이 끝나자 그는 쓸쓸하고 고립감에 사로잡히고 침울한 기분이 되어 눈앞에 보이는 인간이 미워졌다.’

 

‘조던’은 안셀모의 죽음에 분노하고 그를 죽음으로 내몬 이 현실에 대해 분노한다. 하지만 소설 후반 결말에서 ‘조던’ 본인 또한 모두를 위해 희생하며 결국 안셀모의 각오와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지 않았을까. 직접적으로 언급은 되어 있지 않으나, (전적으로 내 추측) 죽어가는 조던은 독백을 통해 삶에 미련이 없음을 시사하며 모두가 무사히 도망갈 수 있음에 안도하고 기뻐한다. 안셀모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그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자신의 앞으로 상황을 쓸쓸함도 또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으니까 말이다. 뭐 단순히 안셀모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신념’ 하나로 바라온 임무, 목적, 목표 즉 ‘다리폭파’가 미션클리어 됬기 때문에 일 수도 있겠지.

 

  '세상은 아름답기에 투쟁할 가치가 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슬프다'는 로버트. 비참하게 죽어가는 상황이지만 지난 4일 간 자신은 누구보다 빛났다며, 자신을 ‘행운아’라 지칭하는 주인공. 인물들의 연이은 죽음과 권위주의적인 사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과 같은 비참한 현실 속에서 조던은 모두를 위해 희생하고 죽어가며 한 줄기 ‘빛’을 본건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에서 작가인 헤밍웨이는 계속해서 인물들의 ‘입’을 빌려 전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또 보여준다. 여러번 전쟁에 몸소 참전했던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작가가 한 자루의 ‘펜’만으로 어떻게 전쟁에 맞설 수 있는지 선봉에 서서 보여준 것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주인공 프레드릭 헨리가 사랑을 위해 단순히 전쟁에서 도망쳐 스위스로 망명간 것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이다. 파시스트들에게 희롱당하고 온갖 욕을 본 마리아. 중간에 파시스트군 중위의 손에 죽은 귀머거리 영감 패거리들. 하지만 중위는 전투 후에 오는 ‘공허감’을 느끼며 자신의 승리가 자랑스럽지도 기쁘지도 않다. 결국 아군이나 적군이나 지금 이 전쟁이, 서로를 죽이고 또 죽이는 지금 이 혈육의 장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것이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정찰나왔다가 조던의 총에 죽은 말 없는 병사 한 명도 누구의 오라비이고 애인이고 아들이었기에 그의 편지를 보면서 씁쓸함만이 밀려 온다.

 

   책 한권으로 이런게 반전 소설이란 것을 제대로 보여준 헤밍웨이. 이 책을 저술할 때 수개월 간 집에서 나오지를 않았다고 한다. 이런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모두를 위해 희생한 조던의 죽음을 낙관적으로 묘사한 헤밍웨이. 작가 본인의 죽음과는 대비되는 아이러니다. 참고로 이 작품 출간한 뒤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