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피 creepy>. ‘공포로 인해 온몸의 털이 곤두설 만큼 오싹한, 섬뜩할 정도로 기이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라고 한다. 표지가 굉장히 무서운데 자꾸 시선을 끌어서 읽고 싶었다. 이 책은 마에카와 유타카라는 일본 작가의 데뷔작이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이 있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 작가의 책은 <크리피>가 처음인 것 같다.
주인공은 다카쿠라. 나이는 마흔 여섯이고, 현재 도라쿠 대학 문학부 교수이다. 전공은 범죄심리학. 특수한 사건이 발생하면 TV나 라디오에 출연해서 사건을 분석하기도 해서 얼굴은 좀 알려진 편이다. 아내와 둘이 한적한 주택가에 살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고교 동창인 노가미라는 형사가 연락을 해온다. 8년 전에 일어난 히노 시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에 대해 그에게 의견을 묻고 싶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학창 시절 그렇게 친했던 사이는 아니라 의아했지만 자신의 직업 특성상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노가미를 만났고, 그 뒤부터 다카쿠라의 주변에서 이상한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한다.
일단, 노가미 형사가 실종되고, 자신에게 졸업 논문 지도를 받고 있었던 여학생이 스토킹을 당하기도 한다. 게다가 다카쿠라의 앞집에 큰 불이 나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이 죽기도 한다. 그런데 의문인 건 다카쿠라의 앞집에는 고령의 모녀 두 분이 살고 계셨는데 발견된 시체는 3구라는 것이다. 후에 나머지 1구의 시체는 노가미인 것으로 밝혀진다. 무엇보다 가장 이상한 건 옆집의 니시노라는 남자이다. 화재 현장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평소의 싹싹하고 붙임성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뒤이어 도움을 청하러 온 옆집 소녀가 내뱉은 놀라운 한 마디.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에요.” 다카쿠라는 예전에 노가미 형사가 자신의 집에 찾아왔을 때 했던 말이 생각한다. “비슷하지 않나? 이런 생활환경이 말이야.” 8년 전 히노 시 일가족 행방불명 사건의 생활환경이 다카쿠라 교수의 집 생활환경과 비슷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때 노가미는 왠지 니시노와 우리 집 주변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돼가고 있는 것인가. 옆집 남자는 도대체 뭐지?
이 의문투성이의 모든 사건이 한 인물과 연결되어 있었다. 니시노라는 옆집 남자. 아니, 니시노인 척 하는 남자.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는 사실 위장살인마였다. 현대사회에서 이웃 간의 교류가 적은 점, 옆집에 누가 사는지, 얼굴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 그 집에 살아왔던 것처럼, 그 집의 한 가장인 것처럼 주변을 속이며 살아왔고, 사기행각을 벌이기도 하며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다.
이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 6장이 될 때까지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6장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의 일을 그리고 있었다. 10년 동안이나 어떻게 숨어서 살았던 거지? 당시에는 잇달아 일어난 엄청난 사건들에 정신이 없었지만 다카쿠라 교수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고, 한 가지 의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반전도 괜찮았다.
책장을 덮으며 소름 돋았다.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더 무섭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정말 나는 이웃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얼굴을 정확히 알고 있을까? 가끔 만나면 인사하지만 비슷한 나이대의 비슷한 체격으로 바뀌어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을까? 평범한 이웃으로 보였던 인물이 사실은 살인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소름 돋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전혀 모르는 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집에 들어와 가족 구성원인 척 사는 일이 가능할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아닌가? 읽기 전엔 이런 생각이 들긴 했는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그들을 지배하는 야지마의 모습을 보니 불가능한 일은 또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재밌었다. 일본에서 영화로 개봉된다던데 영화로 보면 더 무서울 것 같다.